롯데가 창립 44년 만에 2세 경영체제로 들어섰다. 롯데그룹은 2011년 정기 임원인사에서 신격호 회장의 둘째 아들인 신동빈 부회장(56)이 회장으로 승진했다고 10일 밝혀, 롯데에 새로운 시대가 개막했음을 알렸다. 신동빈 회장은 입사한 지 21년 만에, 부회장 직을 맡은 지는 14년 만에 회장 자리에 올랐다. 그동안 신격호 회장(89)이 오랜 세월 일본과 한국을 부지런히 오가며 총괄했던 롯데는, 이제 신동빈 회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롯데'를 향한 본격적인 발걸음을 시작했다. 묵묵히 아버지 곁을 지키면서도 거침없는 인수 합병 등 공격경영을 보여 온 신동빈 회장이 롯데에 어떤 대변혁을 가져올지 재계의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신동빈 회장의 승진에는 그동안 '부회장'이라는 직함 때문에 글로벌 협상 등에서 불이익을 겪어왔다는 지적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이 제시한 '2018년 매출 200조원을 달성, 아시아 톱 10 기업에 오른다'는 비전에 따라 그동안 다소 보수적이었던 롯데의 문화가 공격적이고 능동적으로 변하면서, 지난해 총 61조원의 사상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는 점 또한 이번 승진을 이끌어낸 중요 배경이다.

 

신동빈 회장의 나이가 56이고 입사 후 21년의 경력을 쌓았다는 점에서도 이제 회장으로 승진할 시점이 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버지 신격호 회장이 여든 아홉 나이에도 여전히 정정한 만큼 총괄회장으로 추대해 지금까지와 변함없이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를 격월로 오가며 전체 경영 현안을 돌보는 한편, 신동빈 회장은 일본을 제외한 한국 및 해외 사업을 도맡아 챙기게 된다.

 

 

한국 롯데에 입히는
신동빈의 색(色)

 

이번 롯데그룹의 2011년 정기 임원인사에서 일본 롯데를 책임지고 있는 신 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 일본롯데 부회장(57)과 장녀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69)은 자리 변화가 없었다. 때문에 신 회장이 롯데그룹의 후계자리를 공고히 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신격호 회장이 총괄회장으로 경영 전반을 살피기로 한 만큼 아직까지 신동빈 회장을 향한 시험은 끝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신동빈 회장이 한국 롯데를 책임지게 됨에 따라, 일본롯데와 다른 색깔의 롯데를 기대하는 시선들이 많아지고 있다. 신 회장은 그동안 언론 노출도 피할 만큼 늘 겸손하고 튀지 않는 행보를 보이면서도, 경영에서만큼은 매우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거침없는 기업 합병과 신사업 추진으로 보수적이고 안정 지향적이던 롯데의 체질을 바꿔놓았다는 평도 얻은 만큼, 아버지 신격호 회장의 '돌 다리도 두들겨 보고 지나는' 신중한 성격과는 또 다른 색을 한국 롯데에 입힐 것으로 예상된다.

 

신임 신 회장의 공격적인 경영 성향과 글로벌한 마인드는 그의 태생과 자라온 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 회장과 일본인 부인 하쓰코 여사 사이에서 태어나, 이후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 경제학부에서 학사학위를,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은 국제 통이다.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다양한 사회 경험을 먼저 쌓기 위해 1981년 일본 노무라 증권에 입사해 런던 지점에서 근무하면서 수년간 금융 실무와 글로벌 감각을 익힌 그는 1988년에야 일본 롯데에 합류, 한국 롯데그룹에 처음 발을 들인 것은 1990년 때의 일이다. 

 

이후 21년 동안 호남석유화학 상무이사, 코리아세븐 전무, 그룹기획조정실 부회장, 정책본부 본부장 등을 지내며 아버지의 곁에서 경영을 배워왔다.

 

2004년부터 그룹 정책본부장을 맡으면서부터는 그룹 매출이 급격히 늘어나 2004년 23조 3000억원이었던 매출이 지난 해 61조원(잠정)으로 3배를 기록할 뿐 아니라, 2006년 롯데쇼핑을 상장해 자금력을 키우고, 롯데손해보험(2007년)과 롯데주류BG(2009년) 등을 출범시키며 사업 다각화를 이루는 등 공격 경영을 통해 롯데를 재계 서열 5위로 올려놓았다는 평도 얻고 있는 만큼, 신 회장에게 거는 그룹 내의 기대가 크다.

 

 

신동빈의 사람들

 

롯데는 2세 경영자인 '신동빈 체제'로 들어서면서 대규모 임원 승진 인사를 통해 2세 경영체제의 지배력도 강화했다. 신 회장 본인이 이끌던 정책 본부 간부들을 대거 사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대대적인 인사가 단행됐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경영실적을 바탕으로 중장기 비전에 맞춰 글로벌 성장, 글로벌 롯데를 견인할 수 있는 인재를 대폭 배치시켰다"고 밝히는 한편 상무, 이사 등 실무 임원들 중 기존 승진연차보다 1년 이상 빠른 특진도 여러 명 나왔다고 밝혀 신 회장 체제에 맞춰 임원진이 보다 젊게 구성됐음을 시사했다.

 
롯데는 이번에 신 회장과 호흡을 맞춰온 정책본부 간부 등 8명을 부회장·사장으로 승진 발령하는 등 총 172명에 이르는 사상 최대 규모 승진 인사를 실시했다.

 

이인원 정책본부 부본부장(사장)은 롯데에서는 최초로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 출신의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신 회장의 뒤를 이어 정책본부장에 올랐다.

 

계열사 경영과 사업전략 수립을 총괄해온 이재혁 정책본부 운영실장은 사장 승진과 함께 롯데칠성음료·롯데주류BG·롯데아사히주류 의 겸직 대표이사를 맡았으며, 채정병 정책본부 지원실장과 황각규 정책본부 국제실장도 함께 '글로벌 롯데'를 일군 공로를 인정받아 사장으로 승진했다.

 

관심을 모았던 이철우 롯데쇼핑 대표, 노병용 롯데마트 대표, 소진세 롯데슈퍼 대표 등 유통 최고경영자(CEO) 3인방과 정범식 호남석유화학 대표 등 주요 계열사 경영진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유임됐다.

 

 

맥주사업 진출 의지

 

업계에서는 신동빈 회장이 승진 첫 작품으로 맥주 사업 진출을 추진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신 회장은 지난 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층에서 열린 '아사히맥주 100만 케이스 돌파' 기념행사에서 한 언론사 기자에게 "맥주 사업은 그룹의 숙원 사업"이라며 "연내에 맥주 사업에 반드시 진출하겠다"고 강조, 맥주 사업 진출 의지를 구체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한국 맥주는 워낙 맛이 없다"면서 "그래서 나는 맥주사업에 더 관심이 많다. 한 때는 오비맥주 인수를 검토했었다"고도 밝혔던 그다.

 

때문에 이를 두고 롯데그룹이 일본 아사히맥주(지분율 15%, 롯데그룹은 85%)와 공동 투자해 설립한 롯데아사히주류를 통해 아사히 맥주를 수입·판매하는 것을 넘어서, '롯데' 브랜드의 맥주를 만들어 팔 것으로 보는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


롯데아사히주류는 롯데그룹이 주류 제조 면허가 없기 때문에 일본 아사히맥주 기술로 중국에서 술을 병입해 수입하는 방식이다 보니, 판매 신장 속도는 훌륭하지만 연 매출은 국내 1위인 하이트맥주에 한없이 모자라 신 회장으로써는 아쉬움이 있어온 것으로 보인다.

 
2009년 5월, 당시 오비맥주 최대주주였던 AB인베브가 오비맥주를 매각했을 때, 미국계 사모펀드인 (콜버그 크라비츠 로버츠)KKR과 마지막까지 치열한 인수전을 벌이다 끝내 폐한 기억이 있는 롯데그룹.

 

신 회장은 KKR이 다시 오비맥주를 재매각할 경우 인수전에 다시 뛰어들 의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신 회장은 그룹 계열 주류기업인 롯데주류와 롯데칠성음료의 합병설에 대해 "합병한다면 규모의 경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룹 계열에 2개 이상 회사가 있다고 해서 이를 통합할 필요까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해 여러 추측들에 여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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