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기사 40분내 1건 처리하고 이동시간이 곧 휴식?…악천후에도 작업해야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들가 아파트의 높은 곳에서 설치나 수리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LG헬로비젼 비정규직 지부 제공

 LG헬로비전(과거 CJ헬로) 하청업체 소속 수리기사 감도빈 가 지난해 12월 30일 야외작업을 하다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LG헬로비전 서부해운대고객센터에서 설치·수리기사로 일하던 김 모씨(45)가 부산 해운대구 재송2동의 한 건물 옥상에서 설치 작업을 하다  의식과 호흡을 잃은 채 숨졌다.

김씨는 LG헬로비전 케이블방송과 인터넷 설치·수리·철거 업무를 담당했다. 셋톱박스를 교체하는 단순 업무부터 건물 외벽, 가스관, 전봇대 등을 타고 광케이블을 연결하는 위험 업무까지 업무 종류는 다양했다.

하청업체 수리기사들이 격무, 중간착취에 시달리다 결국은 사망에 이른 케이스다. 희망연대노조는 사망 배경의 하나로 격무를 주장한다. ‘30분’ 간격으로 업무를 배정하는 고객센터 업무 체계 자체가 과로를 조장하는 데다 평소 김씨가 과한 업무량에 시달린 흔적도 발견됐다고 희망연대는 밝혔다.

LG헬로비전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이처럼 엄청난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통계상으로 입증됐다. 희망연대노동조합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지부와 노동건강연대가 21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발표한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작업환경‧노동안전 긴급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노동자들은 설치‧A/S 등의 업무 1건을 이동시간 포함 30분~40분 안에 끝내야 했다.타이트한 업무편성 간격 때문에 1일 평균 방문 건수가 10건을 넘기도 했다.

실태조사에 참여한 187명 중 157명(84%)이 업무 편성 시간이 40분 미만이라고 응답했다. 그중 30명(7%)는 30분 미만의 간격도 있었다고 답했다. 휴게시간을 제외한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8시간 초과, 10시간 이하라는 응답이 61.5%(115명)으로 가장 많았다.

평균 휴게시간은 1시간 미만이 73.3%(137명)이 가장 많았고, 30분 미만이라는 응답도 23%(43명)이었다. 휴게시설이 있는 노동자는 11.8%(22)명에 그쳤고 88.2%(165명)의 노동자는 휴게공간이 따로 없다고 답했다.

자연재해가 있을 때도 작업을 중지하지 않는 사례도 많았다. 지진, 폭설, 태풍, 우천, 강풍 등 산업재해가 우려되는 자연재해가 있을 때 작업을 중지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66.3%(124명)가 작업중지 없이 평상시처럼 작업한다고 응답했다.

2m이상 고소작업(전봇대, 옥상, 난간, 담벼락 등 높은 곳에서 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안전벨트를 걸 수 없을 경우 어떻게 하는지 묻는 질문에도 그냥 작업한다는 응답이 60.4%(113명)에 달했다. 또한 이렇게 안전벨트 없이 고소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냐는 질문에 매일같이 있다는 응답도 27.0%(38명)이었다.

설문에 참여한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 중 90.9%(170명)가 자신의 노동 환경이 안전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이들에게 자신의 노동 환경을 안전하게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이 무엇인지를 세 가지 꼽아달라고 요청했을 때, 정규직 전환(23.9%)이 가장 높은 비중으로 나타났고, 업무당 처리 시간 증가(21.3%)와 임금 인상(17.9%)이 그 뒤를 이었다.

과도한 작업량에 비해 임금은 너무 초라했다.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지부와 노동건강연대가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전국 34개 업체 중 17개 업체의 노동자 187명을 10일부터 14일까지 설문조사한 결과, 평균임금은 229.4만원으로 평균 연령 41세, 평균 경력 11년차였다.

이만재 희망연대노조 조직국장은  “2017년에 SK브로드밴드 고객센터를 운영하는 외주업체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면서 설립된 홈앤서비스의 경우, ‘서비스매니저 표준업무 가이드’를 통해 표준작업시간이 설치와 AS업무에 1시간(DPS의 경우 1시간15분)을 배정하도록 권고했다”며 “이에 따르면 설치 기사는 하루에 6개, AS 기사는 하루에 7개의 작업을 배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동종업계 다른 회사보다 2배 이상 빠르게 작업을 완료하도록 강요받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하고 이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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