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업체들, 공정거래법상 ‘시장지위적 남용’으로 다스려야한다 주장
조직적 조사방해 처벌도 ‘솜방망이’ 에 그쳐 청와대에 직접 탄원서 제출

12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하도급 갑질에 대한 조선3사의 무대책 규탄 및 정부이 피해구제 적극 개입 촉구 기자회견'./사진=김기율 기자

[월요신문=김기율 기자] “한국조선해양의 불공정 하도급 행위로 피해 입은 하청업체 15곳의 피해액은 1038억 원에 이릅니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징계 결정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조선해양은 피해업체에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어요. 결과적으로 공정위의 직권조사는 조선3사에 ‘면죄부’를 준 꼴밖에 안된 겁니다”

현대중공업 하도급갑질 피해하청업체 대책위원회의 한익길 위원장은 12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하도급 갑질에 대한 조선3사의 무대책 규탄 및 정부의 피해구제 적극 개입 촉구 기자회견’ 직후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18년 대우조선해양의 하도급 갑질에 제재를 가한데 이어, 지난해 12월 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에는 시정명령 및 과징금 208억 원, 검찰고발 등의 중징계를 결정했다. 

그러나 공정위의 제재가 내려졌음에도 대우조선해양은 “하도급대금 지급에 문제가 없다”며 법원에 과징금 처분을 취소하는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한국조선해양은 아직까지 공정위의 의결서를 받지 않았지만, 당초 “법적 절차를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힌 만큼, 역시 행정소송에 돌입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에 대해 한 위원장은 “대우조선해양과 한국조선해양은 피해 하청업체들에 어떠한 사과나 피해구제에 대한 약속도 하지 않았다”며 “행정소송을 통해 시간을 끌면서 피해업체들에게 지속적으로 고통을 가하는 2차 피해를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도급 갑질에 대한 조선3사의 무대책 규탄 및 정부이 피해구제 적극 개입 촉구 기자회견'에서 김종훈 민중당 국회의원이 발언하고 있다../사진=김기율 기자

공정위의 제재 결정에도 조선사들이 행정소송을 벌이는 이유는 뭘까?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원청의 증거 은폐’와 ‘실효성 없는 공정위 조치’ 때문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법무법인 공존의 권태준 변호사는 지난해 12월 공정위의 조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한국조선해양 법인과 그 임직원들이 1억2500만 원(법인 1억 원, 임직원 2인 2500만 원)을 부과 받은 일례를 꼬집었다.

권 변호사는 “2016년부터 피해협력업체들과 불공정 행위를 추적하고 싸워왔지만 이분들이 만족할만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피해는 있는데 그것을 합리적으로 제3자에게 증명할 증거가 피해업체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피해업체들이 평소 업무에 바빠 소송준비를 못했고 개개인이 증명할 방법이 없었지만, 그 증거는 원청 서버와 직원 개인 PC에 남아있다. 그런데 한국조선해양의 조직적 조사방해 행위로 진실이 묻히게 됐다. 당시 회사에서는 ‘공정위 조사가 나올 것 같으니 서버와 PC를 교체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오갔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한국조선해양과 그 직원들은 지난 2018년 10월에 진행된 공정위 현장조사와 관련, 조직적으로 조사대상 부서의 273개 저장장치(HDD)와 101대 컴퓨터(PC)를 교체하고, 관련 중요 자료들을 사내망의 공유 폴더 및 외부저장장치(외장HDD)에 숨겼다.

공정위는 이 같은 행위가 조사를 방해할 목적이 있었다는 증거를 확보하고 한국조선해양에 교체된 저장장치 및 자료 은닉용으로 사용한 외부저장장치 제출을 요구했으나, 한국조선해양은 제출을 거부하고 은닉 또는 폐기했다.

권 변호사는 “만약 조사방해 행위에 수천억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형사처벌을 단행했다면 회사 차원에서 이렇게 지시를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며 “만약 그런 지시가 있었더라도 직원들이 처벌을 두려워해 다른 기록을 남길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변 공정경제팀 서치원 변호사는 “2018년 이 사건에 대해 신고서를 쓰는 과정에서 자료가 없어 신고할 수 없는 어이없는 상황이 계속 발생했다. 그나마 최근 공정위가 조선사들의 하도급 갑질을 인정해 제재를 가했지만 실효성이 전혀 없다”며 “공정위는 하도급법을 적용해 서면미발급 등의 이유로 과징금 부과 처분을 했지만, 수사방해 행위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을 적용하지 않아 과태료 처분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서 변호사는 “정부와 공정위가 진정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공정거래법 3조 2항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금지에 관한 법률’을 적용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며 “조선분야가 산업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별개의 특별법으로 보호받지도 못하고 하도급법으로 불충분한 보호를 받는다면 법원의 구제를 받기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마지막으로 한익길 위원장은 “지난 4년여 동안 은폐됐던 한국조선해양의 불공정 하도급 갑질이 공정위에 의해 이제야 밝혀졌으나 사측은 두 달이 지나도록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제 정부와 청와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조선해양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 기업결합 순서에 하도급 갑질 피해 하청업제의 피해구제를 전제조건으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결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하고 탄원서 제출을 위해 청와대로 향했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