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관리에 철저하고 오랜 정직경영, 윤리경영으로 유명한 이랜드 그룹이 때 아닌 자금비리 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서부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방봉혁)는 '매각 컨설팅 비용'을 핑계로 회삿돈 23억원을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랜드 그룹의 자금관리 간부 A씨와 그의 옆에서 부동산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B씨를 배임과 조세포탈 등의 혐의가 있는 것으로 판단, 지난 11월 10일 B씨를 구속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를 두고 단순한 직원 개인비리가 아닌 '윗선'과 연결된 횡령사건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는 것. 서울서부지검은 한화그룹, 태광그룹 등 굵직한 대기업 수사를 도맡아 왔다는 점에서 이번 이랜드 그룹 전 직원 조사에 더욱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때문에 이번 수사로 벌써부터 회사 이미지에 타격을 입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랜드 그룹은 패션·유통 전문기업으로 국내 외 36개 자회사를 통하여 한국, 중국, 미국 등에서 패션사업과 아울렛, 백화점, 슈퍼마켓의 유통사업을 주력 사업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미래성장사업으로 건설사업, 레저사업, 외식사업도 펼쳐나가고 있는 재계 50위권의 대기업이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후아유(W.A.U)'와 'EnC', 테디베어 인형을 캐릭터로 한 '티니위니' 등이 이랜드 그룹의 브랜드이며, 뉴코아 백화점과 킴스클럽 마트도 이랜드 그룹 계열사에 있다.

 

컨설팅 수수료 23억원의 정체

 

2009년 '존경받는 기업대상 윤리경영 대상'을 수상했던 이랜드 그룹은 창업초기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정직 경영'과 '윤리경영'을 강조하며 대외적으로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아름다운 정상'을 지향하는 이랜드가 되겠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이번 전 간부 수사로 그룹 자금비리 의혹까지 조심스럽게 나오면서, 올해로 창업 30주년만에 박성수 회장의 '윤리 경영'이 흔들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사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번 검찰 수사는 이랜드 그룹이 한창 유동성 위기를 겪던 시기에 자금본부 간부 A, B씨가 그룹의 가산동 사옥과 서초구 잠원동 뉴코아 건물의 매각 관련 컨설팅비라는 명목으로 23억원대의 금액을 빼돌렸다는 제보에 일단 초점을 맞추고 시작됐다.

 
지난 1월 이랜드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맞아 서울 가산동에 위치한 사옥과 서초구 뉴코아 건물을 매각하려고 했다. 이에 자금관리 담당 A씨와 그 옆에서 부동산 업무를 수행하던 B씨가 매각 관련 일을 맡게 됐고 이들은 다음 달인 2월, 부동산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M사와 거래를 맺고 총 세 차례에 걸쳐 23억 원 가량의 컨설팅 비용을 지불했다.

 
그런데 부동산 컨설팅을 해 준 M사가 알고 보니 법인 대표만 제 3자 일 뿐, 이랜드 그룹 간부 A씨가 지분 30%를 갖는 등 사실상 A, B씨 두 사람의 회사였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결국 두 사람이 가산동 사옥과 뉴코아 건물의 매각을 맡으면서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해 자신들이 차린 회사에 이익이 돌아가도록 한 것이다.

 
이랜드그룹은 결국 지난 해 6월 가산동 사옥을 490억원에, 8월에는 뉴코아 강남점을 2200억원에 매각했고, 이후 M사는 컨설팅 수수료 명목으로 받을 돈을 모두 챙긴 뒤 올해 3월 폐업했다. 비슷한 시기에 B씨도 회사를 그만 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한탕'은 그렇게 조용히 마무리되는 지 알았지만 이들의 상황을 의심한 주변인들이 검찰에 제보를 하여 수개월간 내사가 진행됐고, 결국 관련인을 구속하는 데 이르렀다. 이랜드 측에서도 두 사람이 이미 회사를 그만 뒀음을 확인해줬다.

 
검찰은 A씨와 B씨에 대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담당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회사에 재산상의 손해를 주었다고 보고 배임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 또 M사를 운영하면서 회사 비용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법인세 4억 원대를 포탈한 혐의도 받고 있다.

 

단순 개인비리에서 그칠까?

 

사건을 표면적으로 보면 다른 기업에서도 있을 법한 직원 개인 횡령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랜드 그룹은 재계 안팎으로 자금관리가 철저하고 헛된 곳에 돈을 쓰지 않기로 유명한 기업이다.


그런 곳에서 23억원대의 적지 않은 돈이 부동산 컨설팅비로 결제된 것에 많은 의문의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A씨와 B씨가 컨설팅비 명목으로 돈을 빼돌리기 위해 차린 것으로 알려진 부동산 컨설팅 회사 M사의 정체에 대해, 회사 측이 몰랐다 하더라도, 컨설팅 수수료 23억원 가량의 결제는 윗선에서 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또 돈이 이랜드(주)와 이랜드 리테일 등 계열사를 통해서 나뉘어 지급된 것도 의심을 받는 부분이다.
일각에서는 단순한 개인비리가 아닌, '윗선'과 연결된 횡령사건이 아니냐며 이랜드 그룹의 경영 윤리에 제동을 걸고 있다. 직접 박성수 회장을 거론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번에 조사대상이 된 두 전 간부가 횡령이 아닌 배임 혐의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사건을 주도한 또 다른 인물이 있을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는 한 검찰 관계자의 전언도 있다.


이러한 의혹과 관련해 이랜드 그룹 관계자는 전혀 '사실무근'이라면서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비리 사건이고 그룹과 관련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 조사가 확실히 나오지 않는 한 이랜드 그룹을 둘러싼 자금비리 의혹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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