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국은 지난 50여년 동안 참으로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룩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던 나라가 세계 10위권의 무역 거래량을 가진 나라가 된 것이다.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에게 한강의 기적이라고 찬사를 보낼 정도이다. 우리 한국의 해방 후 세대는 뼈저린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고, 아끼고 절약하여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일을 삶의 최고 목표로 살아왔다.

이러한 우리 한국인의 투철한 근면과 절약의 정신은 참으로 소중하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여 재산을 모으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재산을 아름답고 가치있게 사용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이제 아름답고 멋있는 경제인, 존경받는 기업가의 모습을 절실하게 요청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중 대표적인 인물은 유한양행을 설립하신 유일한 박사이다. 유일한 박사는 기업가이면서 35년 동안 조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셨던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유일한 박사는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일제강점기 1926년 귀국하여 국민의 건강을 위한 목적으로 유한양행을 설립하였다. '가장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게 도움을 주자.' 기업의 목표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1960년대 기생충이 어린이들의 건강을 가장 크게 위협하던 시절, 나는 학교에서 해마다 무상으로 제공하는 기생충 약을 받았던 것을 기억한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의 추구에 있다. 기업은 그 이윤을 다시 투자하여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여 국민을 위한 공적인 재정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무리 털어도 먼지가 안 나는 경우가 있구나." 유한양행에 대한 강도 높은 세무조사 후 국세청 조사원의 고백이라고 한다. 유한양행은 오히려 196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모범납세 법인회사로 선정되어 동탄산업 훈장을 받았다.

1971년 3월 유일한 박사가 세상을 떠난 후 유언장이 공개되었다. '나의 손녀 유일링에게는 대학 졸업까지 학자금 1만 달러를 준다', '나의 딸 유재라에게는 유한공고 내 묘소와 주변 땅 5000평을 물려준다. 단 학생들이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라', '나의 소유 주식 14만 941주 전부 사회 및 교육원조 신탁기금에 기증한다', '아들 유일선은 대학 졸업까지 시켰으니 자립해서 살아가라'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유일한 박사는 한국에서 '모범적인 기업인'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광복 이전에는 재미 한인사회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기업 운영에 있어서는 투명한 경영과 성실한 납세를 하면서 국민 보건을 위해 힘썼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로는 전문 경영인을 후임 사장으로 지명하고, 인재 육성을 위해 유한공고와 유한대학교를 설립했다. 그리고 개인 소유 주식을 공익재단에 기증하고, 세상을 떠날 때 전 재산을 사회와 교육 재단에 헌납하였다.

코로나19 전염병의 재난 속에서 우리는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절박한 과제인지 깨닫는다. 코로나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온갖 범죄와 부정부패를 추방하고 아름답고 건강한 나라를 세우는 일이 우리 국민의 간절한 소망이다. 유교의 오랜 전통이 아직 뿌리 깊게 남아있던 1970년대에 유일한 박사는 장남 유일선 씨에게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자립해서 살아가라."는 참으로 멋진 유산을 남겼다. 유일한 박사는 일제강점기 그 어둡던 시대에 국민건강이라는 아름다운 목표로 기업을 설립하여 윤리적인 경영과 성실한 납세, 그리고 재산의 사회 환원을 몸소 실천하였다. 이러한 기업가 정신이 바로 유일한 박사가 우리에게 남긴 무엇보다 아름답고 소중한 유산이다. / 유원열 목사·전 백석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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