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현학술원 이사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6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린 '2021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SK
최종현학술원 이사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6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린 '2021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SK

인수합병의 귀재부터 ESG 전도사, 민간 외교관 그리고 경제계 수장까지. 모두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수식하는 단어다. 최근에는 '대기업 총수로는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근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한 경영인을 꼽으라면 단연 최태원 회장이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그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 최 회장은 본인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직접 나서 해명하는가 하면, 기업 대표로 총대를 메고 정부를 향한 소신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활동 무대는 국내에 국한되지 않는다. 해외 출장길에 올라 글로벌 사업장의 현지 상황을 점검하는 동시에 해외 주요 인사와의 네트워크를 강화해 미래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는 것. 그룹 차원의 탄소감축, 일자리 창출, 사회공헌 등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강화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 'SK실트론 사익편취 의혹'에 정면 돌파…결과 다음주 발표 예정

최태원 회장은 지난 15일 'SK실트론 사익편취 의혹 사건'과 관련해 위법성이 없음을 해명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에 참석했다. 대기업 총수가 직접 출석하는 건 이례적인 일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 8월 최 회장이 SK실트론 지분 29.4%를 사들인 과정이 위법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최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는 내용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격)를 SK에 보냈다.

핵심 쟁점은 최 회장의 지분 인수가 공정거래법상 금지된 사업기회에 해당되는지에 대한 여부다. 공정위는 SK㈜가 경영권 프리미엄이 빠진 실트론 잔여 지분을 전량 싸게 살 수 있었음에도, 총수의 사익을 위해 29.4%의 지분 취득 기회를 넘겼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이 12시간가량 소명한 가운데 최종 결론은 이르면 다음주 발표될 전망이다.

이번 사건은 SK가 2017년 반도체 웨이퍼 생산 기업인 LG실트론(현 SK실트론)을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SK그룹의 지주사인 SK㈜는 당시 LG실트론 지분 51%를 LG로부터 주당 1만8138원에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했다. 이후 잔여지분 49% 중 KTB PE가 보유하고 있던 19.6%는 SK㈜가 주당 1만2871원에 추가 확보했고, 나머지 29.4%는 최 회장이 개인 자격으로 매입했다.

2017년 11월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는 최 회장의 지분 인수 과정이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에 해당한다고 지적하며 공정위에 조사를 요청했다. 당시 경제개혁연대는 "SK㈜가 49% 잔여지분을 취득할 때 당초 매입가에서 경영권 프리미엄이 제외돼 30%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는데도 잔여 지분을 전부 취득하지 않고 이 중 19.6%만 취득했다"며 "나머지 29.4%는 최 회장이 취득했는데, 이는 상법과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한 회사 기회 유용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SK 측은 주총 특별 결의 요건인 3분의 2 이상을 확보해 최 회장이 인수한 지분(29.4%)을 추가로 매입할 필요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당시 채권단 주관 아래 공개 경쟁입찰이라는 적법한 인수 절차를 밟았고, 중국 기업 등 외국 자본의 유입 가능성을 우려해 최 회장이 나머지 지분을 개인적으로 산 것이라는 설명.

'회사 기회 유용'과 관련해서는 당시 LG실트론은 웨이퍼 시장 5위 업체로 이익 여부가 불투명했던 만큼 최 회장이 지분 인수로 큰 수익을 얻었다는 주장은 결과론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전원회의에는 9명의 위원 중 4명이 제척·기피 사유로 빠지면서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을 포함한 5명의 위원만 참석했다. 전원회의는 최소 의결 정족수가 5명이기 때문에 5명의 위원 중 단 한 명이라도 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오른쪽)이 16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오른쪽)이 16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윤석열 만나 미래산업 인프라 투자 요청…"낡은 법 제도 개선 시급"

16일에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 회장은 이날 오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만나 차기 정부 정책과 관련한 기업들의 의견을 대표로 전달했다. 경제계 수장으로서 미래산업 투자와 법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

그는 이 자리에서 "앞으로는 민간이 좀 더 활력을 갖고 정부와 같이 보조 맞춰 돕겠다. 또한 정부도 민간을 도와주는 경제생태계 복원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래산업 인프라 투자 ▲낡은 법 제도 대대적 개혁 ▲경제 안보력 강화 등 경제계 의견을 담은 건의집을 전달했다.

최 회장은 "우선 미래산업을 위한 인프라 투자를 강화해달라"며 "개별기업이 하기 어려운 기초기술 연구나 인재 양성, 미래 인프라 등을 국가가 선제적으로 투자해주면 기업이 미래 먹거리를 만드는 데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 인프라와 관련해서는 사물인터넷(IoT)과 관련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나 정보통신기술(ICT), 인공지능(AI) 개발을 위한 소프트웨어 인력 확충 등을 예로 들었다.

두 번째로는 낡은 법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혁해달라고 했다. 최 회장은 "현행법 제도는 할 수 있는 것을 규정하는 포지티브형 규제 방식"이라며 "시장에서 창조적인 사업을 전개할 수 있도록 규제의 틀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지금은 경제안보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경제안보를 잘할 수 있도록 제도나 글로벌 협력을 어떻게 해야 높일 수 있을까 하는 걸 생각해달라"고 덧붙였다. 특히 최 회장은 "경제계에도 이번 대선 과정에서 국가가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미래 발전에 대한 미래 여건을 잘 점검하고 구성원 모두가 희망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좋은 해법이 잘 나와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SK, 글로벌 ESG 투자 보폭 확대…민간 경제외교 광폭 행보

최근 그룹 내 경영 전반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모양새다. 최 회장은 미국 출장 일정을 마치고 지난 9일 귀국한 이후 사흘만에 베트남 정부와 만나 친환경 사업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최 회장은 지난 1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브엉 딘 후에(Vuong Dinh Hue) 국회의장 등 베트남 정·관계 주요 인사와 만나 친환경 사업 영역에서 포괄적 협력을 추진하기로 하고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국내 대기업이 다른 나라 정부와 탄소감축 협력을 위한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베트남 정부의 탄소감축 노력을 지지하며 다양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그는 "베트남 정부의 정책적 지원 아래 수소 중심의 신재생에너지와 가스전 탄소포집·저장(CCS) 등 탄소감축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베트남 공기업도 연계된 친환경 사업 펀드를 만드는 것을 제안했다.

SK그룹 관계자는 "SK가 진출한 해외 국가에서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탄소감축, 일자리 등과 같은 사회적 가치를 함께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 최 회장이 강조하는 '글로벌 스토리'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이달 초 ESG를 기반으로 민간 부문과 공공 부문이 협력해야만 글로벌 공급망 문제나 환경문제 등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SK그룹은 글로벌 탄소중립 목표 시점인 2050년보다 앞서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수소생태계 조성, 최첨단 친환경 솔루션 개발 등 ESG 중심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한편 SK그룹은 올해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공표한 ESG 경영 등급 평가에서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 등 전 부문에서 'A+' 등급을 받으며 통합등급 'A+'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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