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회장, 올해 미국 출장만 5번…신사업 직접 챙기며 '현장경영' 강화
정기 임원인사서 정몽구 가신 퇴진…정의선 친정체제 완성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사진=현대자동차그룹

국내 재계 서열 2위의 현대자동차그룹이 본격적인 '정의선 시대'를 맞이한다. 올해 취임 2년차를 맞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정몽구 명예회장의 측근들을 퇴진시키며 친정 체제를 구축했다. 과거 정몽구 시대와 과감히 결별한 현대차그룹이 새롭게 그려나갈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정 회장은 지금 그 누구보다 분주하다. '품질경영' 신화를 이룩한 아버지를 뛰어넘어 미래 혁신을 주도해야 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최근 언론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미국 실리콘밸리를 방문, 주력 사업 중 하나인 '도심항공교통(UAM)'을 직접 살핀 것은 선대의 '현장경영' 철학과 맞닿아 있다.

우리나라 10대 재벌 총수 중 두 번째로 젊은 그는 아버지의 배경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왕국을 건립하기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의 임원인사도 단행했다.

정 회장은 지난 2019년 사내 타운홀 미팅에서 "현대차그룹 미래 사업의 50%는 자동차, 30%는 UAM, 20%는 로보틱스가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빌리티 서비스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이 그의 목표다.

재계에 따르면 정 회장은 12월 초 미래 모빌리티 사업 방향을 구상하기 위해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올해만 무려 5번째 미국행이다. 정 회장은 지난 10월 회장 취임 1주년을 맞아 약 3주간 미국, 유럽, 인도네시아 출장을 다녀온 지 한 달 만에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로 향했다. 그는 현대차·기아 현지 법인을 방문해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을 방문해 신사업 구상도 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미국 워싱턴DC에 도심 항공 모빌리티 사업 관련 법인을 설립하고 지난달에는 법인명을 '슈퍼널(Supernal)'로 바꾸는 등 UAM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슈퍼널은 내년 캘리포니아주에 연구개발(R&D) 시설을 여는 것을 시작으로 2028년에는 뉴욕 등 주요 대도시에서 공항과 도심의 주요 거점을 오가는 도심 항공 모빌리티 서비스를 개시할 계획이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74억 달러(약 98조원)를 투자해 미국 내 전기차 2위 업체로 올라서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전기차 현지 생산과 생산 설비 확충을 비롯해 수소, UAM, 로보틱스, 자율주행 등 미래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특히 정 회장은 올해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향후 현대차그룹 미래 방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7일 역대 최대 규모인 203명의 신규 임원 승진자를 포함한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전기차, 수소차,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 등 미래차 관련 임원을 대거 발탁하면서 단순 세대교체뿐 아니라 내연기관차에서 미래차 시대로 전환하겠단 의지를 공고히 한 것.

이번 신규 임원 승진자 3명 중 1명은 40대로 연공서열이 아닌 '성과주의'에 방점이 찍혔다. 또 정 명예회장의 '마지막 가신'으로 불리는 윤여철 부회장을 비롯해 이원희 사장, 이광국 사장, 하언태 사장이 물러나면서 세대교체를 마무리했다는 평. 이로써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을 중심으로 의사결정 체계를 일원화했다.

앞서 정 회장은 수장에 오르기 전부터 과감한 외부 영입으로 조직 문화를 개혁해왔다. 정 명예회장 체제였던 2006년 아우디와 폭스바겐의 디자인을 총괄했던 피터 슈라이어 사장을 기아차 디자인 최고 책임자로 영입한 것이 대표적인 성과다.

자동차 디자인 분야 거장으로 꼽히는 슈라이어는 호랑이코 그릴과 K시리즈 등 히트작을 내며 세계 시장에서 기아의 위상을 단번에 끌어올렸다. 그는 현대차의 디자인 혁신을 이끌며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주역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슈라이어 사장은 이번 인사와 함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디자인 어드바이저 역할을 맡는다. 우수 디자이너 양성과 대외 홍보 대사 및 협업 지원의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처음으로 '글로벌 빅3' 진입을 눈앞에 두고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스텔란티스와 치열한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2014년 그룹을 '빅5'에 올려놓은 정 명예회장의 오랜 꿈으로, 아들 정 회장이 아버지의 과업을 이뤄낼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정 회장의 색채가 짙어진 현대차그룹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한편 정 회장은 올 초 신년사를 통해 "2021년은 '신성장동력으로의 대전환'이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며 "그룹 임직원 모두가 변함없이 지켜가야 할 사명은 '안전하고 자유로운 이동과 평화로운 삶'이라는 인류의 꿈을 함께 실현해 나간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