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의 화두와 관련해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입을 열었다. 박 전 대표는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으로 촉발된, 과학 벨트 논란에 대해 ‘국민과의 약속’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책임론을 부각하는 한편, 개헌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드러내 정국에 파장을 던졌다. 박 전 대표가 현행 정치지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발언의 여파는 적지 않아 보인다는 평가다.

 

그런데 오랜 침묵을 깨고 박 전 대표가 갑자기 입을 연 배경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관측이다. 올해부터 가속화될 대권 경쟁과 직결된다는 것. 거대 이슈로 인해 판세가 흔들리는 것과 아울러, 자칫 잃을지 모를 충청 표심에 대한 이 대통령과의 선긋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박 전 대표의 발언을 중심으로, 배경과 파장을 살펴본다.

 

 

입이 열렸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메가톤급 파장이 정가를 강타했다. 특유의 단촐 하지만 의미가 담긴 말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과학(비즈니스) 벨트 발언’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박 전 대표는 최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간 정가를 뒤덮어온 이슈들에 대해 그로선 비교적 ‘소상히(?)’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MB와 차별화, 대권 플랜 일환

 

박 전 대표가 이날 기자들에 건넨 말은 대부분 기자회견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간략한, 단답에 가까운 짧은 말들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위상과 아울러, 정국의 화두들에 관한, 그것도 오랜만의 언급이라는 점에서 발언의 파괴력은 결코 작아 보이지 않는다.

 

특히 박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의 첫 언급으로 정치권에서도 화두가 됐던 ‘과학 벨트 논란’에 비교적 직설적 화법을 동원해 원칙을 강조하는 입장을 밝혔다. 박 전 대표는 과학 벨트를 대통령의 공약이라고 강조하는 한편, “원점에서 다시 검토를 하겠다고 그러신 거 아니냐”며 “그럼 그에 따른 책임도 대통령이 당연히 지는 것 아니겠나?”고 말했다.

 

얼핏 듣기에 이 말은 박 전 대표의 입장이 이 대통령의 생각과 상당부분 다르다는 것으로 해석되면서 파장의 수위를 키웠다. 더욱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주류가, 중점적으로 추진 중인 개헌에 대해서도 입장을 드러냈는데 “지금 있는 제도를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박 전 대표는 이에 앞선 모 회동에서도 같은 입장을 드러내 적어도 개헌에 대해서만큼은 반대 의사가 분명하다는 분석이다.

 

한편, 박 전 대표가 이처럼 기존 정치권의 이슈에 대해 입을 연 것에 대해 전문가들의 시각은 분분하다. 특히, 올해로 대권 경쟁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정설로 굳어지면서 이번 그의 발언을 향후 대권 경쟁과 연관짓는 분석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친박계의 입장은 오히려 담담하다. 박 전 대표가 현행 이슈들에 대해 ‘원칙적’ 입장을 강조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가에서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위치와 지형을 감안할 때, 단지 원칙만을 말하기 위해 오랜 침묵을 깼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판세 흔들자, 반격 나서

 

실제 지난해 정국을 뜨겁게 달궜던 ‘세종시 논란’의 여파는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정치권에는 하나의 공식처럼 돼 있다. 박 전 대표의 입장에 따라 거대 이슈의 향배가 송두리째 바뀐다는 사실이다. 박 전 대표가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다는 점에서 정가의 눈과 귀가 모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우선, 박 전 대표가 이번 발언을 하게된 배경이 무엇이냐로 모아진다. 이는 향후 논란의 결과와도 직결될 수 있는 만큼, 초미의 관심사다. 그러나 이에 앞서 박 전 대표의 발언 요지를 조목조목 살펴보면, 일말의 해답도 보인다.

 

박 전 대표는 발언에서 무엇보다 ‘대통령의 약속’을 강도 높게 강조했다. 이것은 그가 추구해온 ‘원칙’과 ‘신뢰의 정치’를 재차 드러내기 위한, 시도로 엿보인다. 세종시 논란 당시, 박 전 대표는 “정치인이 약속을 어긴다면, 이후에 누가 정치인을 믿겠느냐”며 다소 하소연에 가까운,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이는 6월 지방선거로 곧장 이어지면서 이 대통령엔 민심 이반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박 전 대표의 작심 발언 배경은 이 뿐 아니다. 쉽게 말해, 맞불 작전의 방편으로 풀이된다. 이는 그간 과학 벨트 논란의 과정을 살피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대통령의 과학 벨트 언급으로 정치권엔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현행 충청권은 물론이고, 영남, 심지어 호남에 이르기까지 과학 벨트 유치의 가능성을 점친 바 있다.

 

이렇게 이 대통령이 과학 벨트를 정국의 화두로 던진데는 다소 정치적 노림수가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정국의 판도를 크게 흔든다’는 것이다. 이 말처럼, 정치권은 잠시나마 정치적 현안이 가라앉으면서 소강 상태를 보이기도 했다. 정국의 주도권인 셈이다.

 

이에 대해 충청권에 지역구를 둔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은 “(이 대통령이 과학 벨트 쟁점을) 충청과 영남, 호남의 지역갈등을 증폭하고 박근혜 흔들기, 민주당 내분 촉발용 용도로 하지 않았나 추론한다”고 말해 정치적 의혹을 드러냈다.

 

따라서 박 전 대표의 이번 발언은 이러한 이 대통령과 여권 핵심부의 노림수를 정면으로 활용한 사례라는 분석이다. 이슈의 발원지로 이슈를 되돌리는 셈이다. 이는 또 다른 정국 주도권과 직결되는데 바로, 대권 경쟁이다. 실제 박 전 대표는 새해를 전후해 자체 싱크 탱크를 구성, 본격 대권 행보에 오를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제동을 걸고 나온 것이 여권의 주류 핵심부. 이들은 새해 벽두를 과학 벨트를 시작으로 개헌이라는 커다란 이슈를 연달아 내놓았다.

 

가뜩이나, 대권 가도에서 표적이 될 수 있는 유력 주자 중 하나라는 점에서 정국의 판세가 요동치는 것이 달가울 리 없다는 것. 이슈를 잠재우는 동시에 핵심 쟁점에 대해서는 대권 주자의 입장에서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세종시 학습효과, 정국 긴장감

 

박 전 대표가 갑작스레 자신의 입장을 밝힌 배경은 이것말고도 더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 역시, 대권과 관련이 있다. 한마디로 ‘이 대통령과의 차별화 전략’이라는 것. 정부의 핵심 쟁점에 따라 정당, 정파들의 입장이 큰 변화를 보이는 만큼, 자칫 대권 가도가 흐트러질 수 있는 것에 더해, 영남과 더불어, 박 전 대표의 주요 거점이라 할 수 있는 충청권의 민심 이반이 가시화될 수도 있다는 계산이다.

 

이것은 현재로선 차기 대권에 근접한 유력 주자의 입장에서 그리 달가운 것은 분명 아니다. 만의 하나,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 주류가 쟁점을 변화 추진할 경우를 대비해 분명한 ‘선을 그은 것 아니냐’는 말이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한발 더 나가,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과 ‘대립각’을 그었다”고 평가하며, “대권 플랜이 궤도에 올랐다”는 다소 성급한 분석을 내놓을 정도다.

 

그렇다고는 해도, 박 전 대표가 향후 대권을 위한 독자행보에 나설 것이라는 데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의견을 같이 한다.

 

따라서 정가의 촉각은 이번 박 전 대표의 발언으로 촉발된 파장이 얼마나, 또 어디로 튈 것이냐로 모아진다.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넓게는 여권의 지분을 양분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은 또 한번 긴장감에 휩싸였다. 이는 그간 당내 친이계 주류가 주도해온 개헌 정국의 주도권이 자칫 박 전 대표의 한마디로 크게 뒤집어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대목.

 

발언을 접한 친이계의 입장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친이계 한 핵심 관계자는 “(미래) 권력을 향해 발걸음을 떼야 하는 박 전 대표 입장에선 이 대통령이 충청 표심에 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며 그의 발언을 ‘정치적’이라고 평가했다.

 

충청민심 잡기, 노림수도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당 밖의 정치 전문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중 신율 명지대 교수는 <헤럴드 경제>에 기고한 글을 통해, 개헌을 언급하며 친이계와의 주도권전이라는 시각을 드러냈다. 신 교수는 글을 통해, “(박 전 대표의 발언이)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내 친이계의 개헌 주장과 관계가 있을 수 있다”면서 “친이계가 권력분산형 개헌을 주장하며, 연방제 개헌을 주장하는 선진당과 연대할 가능성이 있고, 선진당은 국민중심연합과 재결합을 시도하고 있어 4년 중임제 개헌을 주장하는 박 전 대표 측은 고립될 가능성이 있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신 교수는 “(박 전 대표가) 과학 벨트 문제를 거론해 이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시하는 것과, 충청권 여론을 이용해 선진당과 친이계의 연대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라고 분석했다.

 

신 교수의 분석처럼, 박 전 대표의 이번 발언은 충청권엔 새로운 화두가 된 듯 보인다, 특히나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나라당과 보수 색채를 같이해온 자유선진당은 박 전 대표의 발언 배경과 과학 벨트에 대한 입장을 따져 묻는 등 예상 밖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선진당은 박 전 대표의 발언이 알려진 직후, 여러 통로를 통해 박 전 대표가 과학 벨트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는데 이상민 의원은 충청권 지역지와 가진 기자회견에서 “박 전 대표는 한국정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과 영향력 있는 큰 정치 지도자로 뜨거운 쟁점에 대해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한나라당 정권에서 누가 약속을 했던 간에 그 당에 소속된 정치 지도자로서 입장을 밝히고 정리 할 책무가 있다”고 말해 파장에 촉각을 세웠다.

 

오랜 침묵에 이은 한마디 정치로 대표되는 박근혜 전 대표가 입을 열었다. 그것도 정국에 최대 화두가 돼온 이슈를 들고 말이다.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은 자명해 보인다. 대권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발언의 향배에 귀추가 모아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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