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사태의 발단이 됐던, 박연차 게이트의 진원지로 아려져 온,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최근 전격 귀국했다. 한 전 청장은 지난 2007년 전군표 전 청장을 대신해 국세청을 이끌었으며, 검찰의 박연차 게이트 사건 이전 박 전 회장의 태광실업에 대해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벌였었다. 이 일이 계기가 돼, 검찰은 박 전 회장의 로비 사건에 본격 착수했던 것으로 전해졌으며, 이 과정에서 박 전 회장과 정치권의 이른바 ‘돈 거래 사실’이 드러나 정국을 달군 바 있다.

 

특히 한 전 청장은 당시 세무조사와 관련, 지금까지와 달리 아직 드러나지 않은 파일이 더 있다는 의혹을 받아 왔는데, 이는 그가 정권 출범과 함께 일체의 입을 다문 채 약 3년여에 걸쳐 미국 외유로 모습을 감췄던 것. 전 정권 재임 기간, 청장에 올랐고 정권 초 임기 재임을 시도하고서도 돌연 외국행을 택했다는 그의 행적엔 의문이 제기 될 만하다. 여기에 더해, 박 전 회장 로비 사건 당시, 청와대 비서관이던 추부길 전 수석의 연루 사실 등이 밝혀지는가 하면, 정가에서도 정보통으로 이름 난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한 전 청장이 관여된 의혹에 현 정권 실세가 연루돼 있다는 말을 수차례 제기한 바 있다. 한상률 전 청장의 귀국으로 정국엔 때아닌 태풍 전야가 연출되고 있다.

 


 

지난 국회 원내교섭단체 연설을 통해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느닷없는 공세를 가했다. 박 원내대표는 연설에서 “영일대군, 만사형통으로 불리며 국정의 곳곳에서 대부역할을 하는 초법적 권한을 부여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정권이 성공하려면 아픔을 참고, 형님을 정계에서 은퇴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정보통의 실세 공격 ‘냄새 맡았나?’

 

박 원내대표가 지칭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 대통령의 친형으로 권력 실세의 반열에 있는 이상득 의원이다.

 

당시 박 원내대표는 이 의원에게도 “동생인 대통령과 나라의 성공을 위해 스스로 용퇴해 달라”고 요구하며 공격의 날을 세웠다. 지난해 예산안 강행 처리의 앙금과 개헌론 촉발로 가뜩이나 촉각이 서 있던 정치권에 가해진 이 느닷없는 발언에 정가의 시선은 집중 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왜 박 원내대표 발언의 배경이 무엇이냐를 두고 한바탕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일부에서는 이번 발언이 다소 예상 밖이라는 반응을 내놓으면서 “전래에 비춰, 정권의 실정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한편, 한나라당에서는 당의 내부 분열을 촉발하기 위한 반간계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하지만, 박 원내대표가 당의 분열과 정권의 실정을 부각하기 위해, 공개 석상을 빌어 한 개인에 대한 정치공세를 퍼부었느냐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오히려, 개헌의 난맥 상을 보다 상세히 전달하거나, 지난 감사원장 등의 인사 실패와 ‘민생 문제’를 거론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더욱 박 원내대표는 정치권에서도 알려진 정보통으로 그간, 정권의 폐부를 건드리는 일을 주로해온 만큼, 그의 발언에는 보다 예민한 구석이 있을 것이라는 게 정가의 시각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그의 발언 중 집권 연차를 조목조목 나열하며, 측근비리와 친인척 비리를 입에 올린 배경에 주목하며 이를 정권의 성패와 결부시킨, 논조를 강조하기도 했다.

 

한상률 귀국으로 정가 소용돌이 예고

 

이처럼 박 원내대표가 대표 연설을 통해 정권 핵심에 공세를 가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국엔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정권 초, 돌연 미국 외유를 통해 지난 3년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전격 귀국한 것. 우연이라고 보기엔 타이밍이 절묘하다는 게 그간 양측의 관계를 주시해온 일각의 말이다.

 

실제로 박지원 원내대표는 한 전 청장이 미국으로 외유를 떠난 이후, 줄곧 한 전 청장과 여권의 실세들, 이중 이상득 의원과의 연관성을 강조해 왔다. 지난 2009년 12월에도 당시 법사위 소속이던 박 원내대표는 상임위 공식회의를 통해, 한 전 청장의 외유 사실과 그림 로비 사실, 그리고 이상득 의원과의 거래설을 제기하며 의혹을 던져 온 바 있다.

 

때 박 원내대표가 제기한 한 전 청장과 이 의원의 관계에 대한 대략적 전말은 이렇다. 참여정부 말기에 임명된 한 청장이 정권이 바뀌면서 유임을 시도했고, 이를 위해 로비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 대상이 이상득 의원이라는 것.

 

그렇지 않아도 한 전 청장이 전대 전군표 전 청장에 이른바 ‘그림로비’로 말썽을 빚으면서 검찰의 수사망이 확대 기미를 보였다는 것이다. 그의 외유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라는 말이다.

이에 대해 박 원내대표는 “한상률 전 청장의 그림로비 의혹이 있을 때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등 특수관계”라고 전제하고 “이상득 의원에 대한 로비 의혹을 핵심부가 이 의원과 한 전청장의 (사건을) 개인문제로 정리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의혹을 두고 이 의원에 대한 의혹을 쟁점화 하거나 ‘권력형비리’라고 단정하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다. 함량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반면, 이는 한 전 청장이 현 정권 들어, 실세들이 개입된 여러 의혹 사건에 어김없이 이름을 올려 왔다는 점에서 관심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특히 한 전 청장은 지난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사태를 촉발한 진원지로 꼽혀 왔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막을 내린,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 사건’에 단초가 된 것은 2008년 9월 단행된 국세청의 태광실업 세무조사다.

 

이 조사는 한 전 청장의 지휘아래 진행됐고, 유래를 찾기 힘든 강도 높은 조사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얽힌 의혹 해소될까?

 

한편 당시 세무조사 결과는 청와대를 거쳐 검찰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고 이후 검찰은 박 회장으로부터 로비를 받은 정관계 인사들을 체포, 소환하는 등 사정 정국을 이끌었다. 그러던 이듬해 2월 한상률 청장이 돌연 사임하고 외유를 떠나게 된다. 그는 이후 줄곧 미국에 머물렀다.

 

그러나 한 전 청장이 미국에 머무는 동안 정치권에는 그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설이 나돌았다. 이중, 한 전 청장이 박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를 전격적으로 단행하게된 배경에 의문이 생겼다.

 

일부에서는 현정권의 실세급 유력 인사에 의한 지시였다는 말이 전해졌다. 더욱 박 회장의 세무 조사 결과에 대해 한 전청장이 청와대 민정수석을 거치지 않고 이 대통령에 직보를 했다는 설이 정설처럼 전해지면서 소위 '박연차 리스트'에는 현 정권과 관련된 인사들도 다수 포함돼 있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 일은 곧 추부길 청와대 전 비서관의 구속으로 이어져 신빙성을 더했다. 그러나 추 전 비서관의 구속에도 불구,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정권 실세급 몸통은 두고 꼬리만 잘랐다는 것이다. 한 전 청장이 이 대통령에 직보하면서 이 대통령이 명단을 검찰에 전달할 때 선별해서 전했거나, 그렇지 않다면 한 전 청장이 별도의 원본 파일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것은 이른바 ‘한상률 리스트’로 불리며 세간에 관심을 모았다.

 

박 원내대표의 발언과 한 전 청장의 귀국이 던지는 의문에는 이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의혹도 있다. 이는 이 대통령과 관련된 것으로 대선 당시 논란이 된 바 있는 도곡동 땅의 실소유자 의혹이다.

 

야권은 이 의혹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땅의 실소유주라고 주장했는데, 지난 2007년 포스코 세무조사 당시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이 이 대통령이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라는 자료를 발견했다는 것. 한 전 청장은 이를 무마시키고 오히려 안 전 국장에게 퇴임 압력을 가했다는 것이다. 더욱 그가 이 땅의 소유주를 확인할 수 있는 물증을 쥐고 있다는 말도 나와 의혹은 커졌다.

 

태풍의 입, 어디로 향할까?

 

하지만, 그의 귀국으로 기존 모든 의혹이 풀릴지는 미지수다. 특히 한 전 청장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사건이 사실상 마무리된 시점 귀국했다는 점은, 향후 검찰의 수사 향배를 가늠하는 주요 근거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미국 체류 중 검찰과 정치권의 귀국 요청을 거부해 오던 그가 갑작스럽게 귀국한 데 대한 억측과 설이 분분하다"며 “청와대와의 교감설이나 검찰의 기획입국설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말했다.

 

실제 민주당은 그의 입국 첩보가 이미 몇일전부터 돌았다고 술회하며, 정권과의 사전 교감설에 두게를 뒀다. 검찰의 수사에 따라서는 국회에서 특검 발동까지 고려하겠다는 것. 여기엔, 한 전 청장이 벌인 로비 의혹과 무마 행적 외에 현 정권 실세들과의 유착 의혹도 모두 포함된다.

 

집권 3년을 맞아 기대와 실망, 아울러 긴장감 마저 돌고 있는 정국에 또 하나의 핵탄두가 나타났다. 지난 정국을 소용돌이로 몰아갔지만, 정작 입은 굳게 다물었던 한 전 청장을 일러 일부에서는 ‘판도라의 상자’라는 말까지 나오면서 그의 입이 향하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정치권엔 커다란 파장이 예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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