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코드를 찾아라” 시청자들을 사로잡아야 하는 유명 연예인들에 떨어진 특명이 아니다. 연예계와는 전혀 상관없는 정치권에서 들리는 말이다. 더욱이 이 흥행코드는 올 초부터 정국을 뒤흔들며 갑론을박의 난타전을 치러온 여권의 일각에서 들려오는 소리. 그것도 줄곧 개헌론을 주창해온 주류 진영에서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여권 주류는 지난해부터 당 안팎으로 개헌을 이슈화하기 위한 군불 때기에 나선 바 있다. 급기야 올해를 기점으로 친이계는 개헌론을 전면에 내세워 정국 주도권을 노리기도 했다. 이 논란에는 이명박 대통령도 가세한 상황이다.

 

하지만, 당초 친이계가 노리던 개헌 쟁점화는 예상외로 커다란 힘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가까스로 피어오른 불마저 꺼질 위기에 놓이게 됐다. 정파의 이해를 내세운 친박계의 공개적 반대는 물론이고, 친이계 한 축에서도 개헌연기론을 펴며 날카로운 대립각을 보인 때문. 여기에 야권조차,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서 이슈 블랙홀로 여겨져 온 개헌론이 도리어 블랙홀로 빠져드는 현상을 보이게 됐다.

 

개헌을 정국 반전과 주도권의 핵심 키로 예측해온 친이계 주류로선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개헌카드를 이대로 접거나 혹은, 또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입장에 놓인 것. 친이계 주류로선 특단의 대안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자칫 무조차 썰지 못하고 칼을 칼집에 넣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불을 지폈지만, 시원치 않다. 이렇다할 흥행코드도 없이 공허한 메아리가 될 판국이다.”친이계가 새해 들어 제기한 개헌론을 두고 하는 말이다. 더욱, 당초 친이 주류가 예측한 ‘개헌 공감대로의 급속한 전환 전략’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개헌론은 바야흐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동력 상실? 특위에서 보자”

 

특히 친이계로선 이번 개헌론을 향후 정국 주도의 핵심 이슈로 설정, 강한 돌파력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으나 정치권은 고사하고 당내에서조차, 이견이 표출되면서 사실상 난맥상을 연출하고 있다. 더욱, 정치권의 이슈가 민심의 향배와 무관치 않다는 점에서, 개헌을 제기한 친이계는 민심 끌어안기, 소위 ‘흥행 코드 찾기’에 적지 않은 고심을 내비치고 있다.

 

실제로 한나라당은 최근 극심한 당내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난 개헌 의총 당시 의결했던 이른바 ‘개헌 특위’를 구성하고, 본격 항진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당 안팎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는 것. 분위기가 가라앉을 대로 앉은 마당에 논의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친이계 주류가 개헌 드라이브에 속도를 붙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헌을 정국의 이슈로 끌어올릴 만한 흥행코드를 찾는 것이 시급하다는 의견이다.

 

한나라당은 최근 3선에 법조인 출신인 최병국 의원을 위원장으로 개헌 특별기구를 구성했다. 하지만, 특위가 정상적으로 가동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지수다. 여당이 의원 총회를 통해, 공론화 했던데 비해 이견이 지도부에서부터 표출되면서 특위 구성이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각이 팽배한데 따른 분석이기도 하다.

 

여기에 당내에서 개헌 논의 자체를 반대해온 친박근혜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특위가 사실상의 성과를 낼 수 있느냐엔 의문마저 제기될 정도다. 친박계는 당내 개헌 특위 구성이 확정되는 시점에도 논의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종전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친박계, “해볼테면 해봐”

 

최근 최고위원회에 참석한 친박계 서병수 최고위원은 “개헌 논의가 맞지 않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 개헌 기구에 참여하지 않을 것다. 다른 (친박계) 의원들도 마찬가지다”고 선을 그었다.

 

특히, 이러한 입장은 얼마 전 박근혜 전 대표가 개헌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반신반의로 사태 추이를 살피던 친박계가 재차 결속력을 과시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주류진영에 위협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친박계가 대놓고, 개헌 논의에 반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개헌이 정치권은 물론이고 민심에도 일부,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개헌 특위를 통한 논의는 지켜보되 특위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한나라당의 반쪽 지분이라 할 수 있는 친박계의 반응이 이러하다 보니, 당내 개헌논의 분위기는 크게 힘을 받지 못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문제는 더 있다. 친이계가 세를 모아 추진해도 모자랄 판에 계파내에서 조차, 개헌론에 난색을 표해온 측도 상당수 있다는 것이다. 이중 정두언 최고위원은 주류의 개헌 드라이브에 여러 차례 쓴소리를 내뱉으며 특위 구성 자체를 못마땅해 했다. 그는 최근에도 “여당의 개헌 논의에 대해 민심은 부정적”이라고 말하며 “지도부가 민심과 거리간 먼 소리를 들으면 민심에 외면당할 것은 분명하다”고 반발했다.

 

지도부에서 개헌 논의에 나색을 표해온 이는 친박계를 제외하고도 정 최고위원 외에 홍준표 최고위원도, 적지 않은 반발에 앞장을 선 인물로 꼽힌다. 그 역시, 이번 특위 구성에 커다란 반발의 목소리를 더하면서도 어조는 다소나마 누그러든 상황이다. 홍 최고위원은 자신을 개헌론자라고 말하면서도 방법적으로 당내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크다는 점을 들어 “옳지 않다”고 말했다.

 

어렵사리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특별 기구가 구성됐지만, 이들이 가야할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 이는 기구가 위원장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하게 인적 구성이 마무리되지 않은 탓도 크다.

 

권력주조 논의될까? 촉가 여전

 

더욱, 친박계가 개헌 논의 자체를 보이콧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만큼, 향후 특위는 자칫 친이계 일색에 중립인사 몇몇이 추가돼 꾸려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문제는 특위가 구성돼 논의에 들어갈 경우, 기존 반발 세력이 이를 그대로 보아 넘기겠느냐는 것이다. 친이계가 수그러드는 개헌론에 일말의 희망을 갖는 이유도 어찌 보면 이것이다. 특위에서 논의된 개헌 내용이 일부 민심으로 흘러들 경우, 반향은 예측을 불허할 수밖에 없다는 것.

 

더욱, 이번 개헌론에는 기존 정체세력들이 모두 귀를 기울일 만한 ‘권력 구조 개편 문제’도 포함돼 있어, 논의에 따라서는 정치권에 또 다른 화두를 던질 공산이 다분하다. 개헌이 이슈 블랙홀이라는 말과 함께, 정가엔 시한폭탄으로 여겨져 온 것도 이런 이유다.

 

현행 개헌론이 권력구조에서 시작해 기본권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해 정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못한데 비해, 막상 일부 정치구조 등으로 논의가 구체화한다면, 파장은 적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에 대해 한 친이계 인사도 “개헌 기구에 참여하는 것은 주목받는 ‘이슈 메이커’가 되는 것”이라고 말해, 참여는 물론이고 기구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기구에서 무엇을 논의하느냐에 따라 이번 개헌론의 운명이 크게 갈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논란 끝에 여당엔 개헌 논의기구가 마련됐다. 하지만, 정가의 분위기는 커다란 기대를 접은 것처럼 보인다. 친이계가 정국에 던진 승부수치고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는 지적이다.

개헌 드라이브의 바통을 이어 받은 특위의 행보에 따라 개헌의 흥행 판도는 크게 요동치기 않겠느냐는 시각도 있다.

 

각 정파들이 한쪽 귀는 애써 닫으면서도 다른 한 귀로는 여전히 개헌 쪽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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