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층 자녀들 편한 군대 보직 받는 것으로 알려져

 
경제성장과 안보에 국정운영의 중심축을 둔 현 정권의 고위층 관료 자녀들이 상당수가 군 복무와 관련 상대적으로 편한 군 보직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선진국 사례에서 자주 거론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즉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 수행이 실종된 듯한 모습이다. 이 소식을 접한 상당수 시민들은 “아버지가 고위직이면 아들도 고위직이냐”며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사회 지도층과 서민이 함께 공생하는 건전한 선진사회의 척도 중 한가지로 자주 거론되는 것이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으로, 이는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거나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것을 뜻한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이어져온 이 정신에 따라 서구 선진 국가에서는 다수의 고위층 자제들이 자진해 전장으로 나가거나 위험한 군보직을 수행해 왔다. 최근 영국의 해리 왕자 역시 아프간 전쟁에 헬기 조종수로 근무한 바 있는데 이는 서구 사회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몸소 실천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이 강조돼 왔다. 특히 경제성장과 함께 안보에 큰 비중을 둔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가 더욱 중요시 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지난 6일자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실상은 이와 상당히 다른 것으로 조사됐다. 행정부 고위 관료들의 자제 중 병역의무가 있는 상당수 젊은이들이 소위 군대 내 ‘꽃보직’이라 불리는 편한 보직에서 주로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고위층 자제 절반은 편한 보직

최근 <경향신문>에서는 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지난 8월 5일 국방부로부터 받은 ‘정부고위층 자녀 병역이행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보도했다.

지난 8월 11일자까지 반영된 해당 자료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현 정부의 대통령실과 행정부 장차관급 인사의 직계비속 70명 중 28명이 행정·보급·정보·정훈·산업특례 등 비교적 편한 병과에 복무를 마쳤거나 아직 복무 중이다. 더욱이 이들 고위층 자제들은 상당수가 경기도 북부나 강원도 등 군사시설 밀접지역이 아닌 서울과 서울근교(경기 과천·안양·의정부·고양) 등에서 복무 중인 것으로도 드러났다.

청와대 수석 12명의 경우 병역의무가 있는 아들 11명 중 9명이 행정·보급·정보·정훈·산업특례 등의 병과에 복무 중이었다. 행정부의 장차관급 고위직 74명의 아들 59명 중에서는 군대를 다녀오거나 복무 중인 직계비속이 37명이었는데, 이들 중 앞서 밝힌 편한 보직에 근무 중인 젊은이가 조사대상의 40.5%에 해당하는 15명에 이르렀다. 또한 이들 중 서울과 서울 근교 근무자 수도 15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울 내지 서울 근교의 근무지에 편한 보직을 받은 경우는 청와대 수석급에서는 3명, 장차관급에서는 12명이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례를 살펴보면 우선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의 장남이 경기 고양시에 위치한 육군 56사단에서 지난 2009년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행정병으로 근무했다. 김대기 청와대 경제수석의 장남 역시 현 정권 출범 후인 2008년 7월부터 2010년 5월까지 서울의 한 인터넷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인종 경호처장의 차남도 경기 파주의 기갑여단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했다. 이 뿐 아니라 권재진 법무장관의 경우 장남은 경기의 한 섬유제품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차남은 서울의 한 육군사단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실종

고위층 자제들의 편한 군보직 배경소식을 접한 일부 시민들은 “이전에는 고위관료 자제라면 상당수가 아버지의 배경을 등에 업고 군대를 아예 가지 않는 경우도 흔했으니 그나마 나은 경우”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군대 내에서 편한 보직이나 근무지란 없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나름의 고충이 있다”며 이번 사안에 대해 이해하는 분위기를 내비쳤다.

그러나 대다수 시민 반응은 다르다. “고위층 자제라는 이유로 군에서도 편의를 봐주는 인상을 받아 깊은 상실감을 느끼고 있다”며 “행정 등 해당보직이 다른 병과에 비해 육체적 고충이 덜해 군에 간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호할 만한 편한 보직인 것은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안규백 의원 역시 “현재 병과 배정과 부대 배치는 무작위로 선출하는 시스템인 점을 감안하면 우연히 발생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는 노블레스 오블리제 차원에서라도 고위공직자 자녀들의 병역 근무를 엄정히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일반인들의 경우도 행정병 등 편한 보직을 수행할 수는 있지만, 고위층 자제들이 특히 이런 보직에 밀집해 있는 것은 제대로 된 군 시스템이라면 허용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편 국방부에서는 군보직의 형평성을 위해 현재 ‘군별 병과 특기별 편제 내부기준’을 세워두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육군 일반 사병의 경우 보병 37.7%, 포병 13.2%, 통신 7.4%, 공병 5.7%, 기갑 3.8% 순으로 배정되도록 내부적으로 규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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