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다가오면서 그동안 고마웠던 이에게 선물할 것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명절 최고의 선물로 손꼽히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상품권. 하지만 이 상품권이 발행처인 백화점 뿐 아니라 백화점과 거래하는 협력업체들까지 괴롭히고 있어 오랫동안 문제가 되어 왔다. 백화점들은 매출 증진을 위해 상품권 판매를 촉진하면서도, 소매상과 도매상들을 오가는 회전으로 인해 회수되는 기간이 늘어나고 있어 속앓이를 하는가 하면, 협력업체들은 백화점으로부터 상품권을 강매 당하거나 물품 대금을 상품권으로 지급받는 경우가 많아 이를 처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현금화가 쉽다는 이유로 시장 내에서 전전매매되면서, 이른바 '상품권 깡'이 빈번하고 이를 악용하는 이들도 많다. 상품권 매매 시장의 그 실상을 들여다봤다.

 



상품권은 가장 흔한 백화점 상품권부터 구두 상품권, 마트 상품권 등 그 종류도 다양한데, 백화점과 같은 상품권 발행처 뿐 아니라, 소위 '2부 시장'과 같이 많은 개인과 소매 업체들을 통해 매매가 이뤄지고 있어, 상품권 시장 전체를 들여다보면 엄청난 유통 관계가 얽혀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온라인시장까지 확대되고 있어 그 규모가 매우 광범위한 상태이다.

 

물건 사기 위한 용도?
다른 용도로 종종 이용

 

상품권 구입 경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이라면 대형 백화점 근처에서 충분히 할인된 가격으로 상품권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 근처의 구둣방들도 겉으로는 일반 구둣방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백화점 상품권 매매를 함께 하고 있으며 주객이 전도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이곳에서는 상품권을 여러 장 가져 온 고객과 가격 실랑이를 하는 것을 심심치않게 볼 수가 있다.

 
부산 롯데백화점 서면점 근처에서도 상품권 매매가 활발했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백화점 근처 골목에서 작은 트럭이나 소매점 등에서 상품권을 사고 파는 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부산에 사는 사람들은 "상품권이 필요하거나 팔아야 하면 백화점 옆 골목으로 가봐라"라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개인신용카드로 상품권을 구입하는 것이 제한되어 시장으로 들어오는 물량이 줄고 도매상이 등장함에 따라 업계 전체 마진율도 떨어져, 이전의 소매상 수가 많이 줄어든 상황이지만, 여전히 그 명맥은 유지되고 있으며 아직까지 많은 소매상들이 상품권 매매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소매상들이 활개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상품권을 팔려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가능했다. 개인 소비자들은 선물이나 회사 보너스 등을 통해 받은 상품권을 현금화하기 위해 소매상을 이용하고,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중소 업체들은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상품권을 팔러 오는 것이다.

 
중소업체들이 파는 상품권은 급전 마련을 위해 법인카드로 백화점 등 주요 유통처에서 상품권을 대량 구매한 뒤, 이를 현금화하기 위해 소매점에 다시 되파는 것으로, 이른바 '카드 깡'과도 같은 대규모 '상품권 깡'인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현금이 급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카드로 상품권을 구입한 후 다시 할인 판매를 해 현금을 받아 사용하고, 결국 카드결제일에 결제대금을 갚지 못해 연체가 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러한 상품권 악용을 막기 위해 2002년부터는 주요 카드사와 발행처에서 개인신용카드로 상품권을 구입하는 것을 제한해 법인카드의 경우에만 구입이 가능하게 됐다.

 
상품권 시장 최대 호황기였던 2000년대 초반에는 소매점들에 상품권을 팔거나 사러오는 개인들이 넘쳐날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는 도매수준의 거래가 필요 없을 정도로 소매시장의 매매수요가 많아 업소들이 현재의 2배 수준에 가까운 높은 마진에 상품권을 사고 팔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수는 줄어들었으나 상품권 매매는 여전히 자유롭다.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 도모를 목적으로 상품권 발행과 유통을 규제하던 상품권법이 1999년에 폐지되면서 자유업종으로 전환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전에 음성적으로 거래되던 상품권은 누구나 판매할 수 있게 됐으며, 그 만큼 판매처들도 늘어났다.

 
어떤 법인이든 상품권을 찍어낼 수 있으나 세무서에 신고는 해야 한다. 그러나 사실상 구둣방 규모의 업소들은 이런 절차를 생략하고 상품권 매매업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알려진 상품권 시장의 규모는 500억원 대 이상이다.

 

 

얽히고 얽힌 유통관계

 

상품권 소매상들은 자신의 마진을 남길 수 있게 상품권에 명시된 가격보다 얼마 정도씩 싸게 개인들로부터 상품권을 구입한다. 그리고 대규모로 상품권을 사고 파는 도매업자들은 이 소매업자들로부터 또 마진을 남기고 상품권 매매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소매상이 개인 소비자에게 상품권을 매매할 때, 상품권의 액면가를 기준으로 1%의 마진을 붙이고 있다. 그러면 중간상 이상의 도매상들이 소매상으로부터 모은 상품권을 매입하고 다시 이들에게 상품권 물량을 공급하면서 0.1~0.2% 정도의 마진을 적용하게 되는 것이다.

 

도매상들은 소매상의 수십 배 만큼의 많은 재고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대규모 물량 거래가 가능, 때문에 한꺼번에 더 큰 이윤을 챙기고 있다.

 
쉽게 말해 발권사인 백화점을 제외한 장외 상품권 시장에서의 유통은, 개인이나 업체들로부터 상품권을 사들인 구두방 등의 소매상이 다시 그것을 소비자들에게 되팔거나 상품권 장외거래소에 팔고, 또 장외거래소들은 마진을 남기며 소매상에 되팔거나 중소업체들에 상품권을 팔고, 이것이 이후 직원이나 거래처 등에 선물식으로 전해지면서 상품권 가맹점에서 쓰이거나 혹은 현금화를 위해 소매상에게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개인 소비자들은 상품권이 필요없거나 급전이 필요해서 쉽게 현금화가 가능한 소매점을 찾아 약 5%에서 10%까지도 가는 할인율을 적용해서라도 상품권을 판매하고 있지만, 소매점들은 여기서 마진을 남기고 누군가가 상품권을 사러 오면 조금 더 가격을 올려서 다시 팔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정식 유통처에서 사는 정가격보다는 싸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상품권이 필요할 때 소매상들을 찾고 있으며, 상품권을 팔고자 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기 때문에 소매상과 도매상들이 영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알고 보면 상품권은 단순히 상품 구입용이 아닌 다른 용도로써 소비자들과 소매상, 도매상 사이를 돌고 있기도 하다.

 
또 일부에서는 소매상 등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상품권을 사뒀다가 백화점 세일 기간 등에 물품 구입을 하면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다면서 새로운 절약 재테크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이들도 많다.

 

 

지나친 할인매매는
발행처든 소비자든 손해

 

한편 매장 매출 증진을 위해 상품권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 발권사인 백화점 측에서는 돌고 도는 상품권 유통시장에 대해 다소 불쾌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상품권이 백화점에서 나갔으면 그것이 구매로 이어지면서 돌아와야 하는데, 그러한 흐름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장외 시장에서 상품권이 많게는 4~5회전을 하며 '전전매매(轉轉賣買)' 되다 보니 상품권이 백화점으로 돌아오는 회수율이 적고 기간이 아주 길다고 한다.

 
백화점들이 밝히고 있는 상품권 평균 회수율은 명절 이후 2개월 내 70% 정도. 그러나 실제 회수 기간은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백화점 측에서는 상품권 유통시장을 두고 '블랙마켓'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또 백화점 상품권의 장외 거래가 늘어날수록 상품권이 갖는 희소가치가 떨어져 거래되는 가격이 하락하고, 이는 기존 상품권 고객들의 이탈과 매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자아낸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백화점만 억울한 소리를 낼 것은 아니다. 백화점 때문에 피해를 보는 이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형 백화점과 거래하는 협력업체들은 매년 백화점으로부터 상품권 대량 구매를 강매 당하다시피 하고 있다고 한다. 혹은 물품 대금을 상품권으로 지급받기도 한다고.

 

때문에 협력 중소업체들은 이 상품권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한 상품권들이 또 장외시장에 나오면서 전전매매가 이뤄지게 하고 자금사정이 급해 싼 가격에 환전되면서 상품권 가격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 시중에서 20~30%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거래되는 구두 상품권들은 구두 가격의 거품을 키우는 주범이 되고 있어 소비자들에게 간접적으로 손해를 입히고 있다. 구두 판매점들이 소비자 가격에 상품권 할인율을 미리 감안해 가격을 책정하기 때문이다.

 
금강제화나 엘칸토, 에스콰이어 같은 대표적 구두상품권 발행사들은 25% 이상까지도 할인된 가격대의 상품권을 거래하고 있어 업계가 시장구조 왜곡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소비자들은 구두가격에 이미 상품권 할인액이 반영돼 있어 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더욱 싼 상품권을 구입하려 하고, 결국 그렇게 구두판매처의 할인상품권으로 인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상품권 사기 판쳐

 

상품권 사기도 소비자들이 경계해야 할 사항이다. 명절 때만 되면 상품권을 대폭 할인해 판다는 사기광고가 스팸메일 등을 통해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지만, 선금을 받은 뒤 연락을 끊어버리거나 유효기간이 지난 상품권을 배송하는 경우가 있어 소비자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

 
구매하는 상품권을 여러 곳의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해 놓고, 실제로는 계약이 해지된 가맹점들이 많은 경우도 있다. 뒤늦게 고객들이 환불을 하려고 해도 거절당하거나 연락이 닿지 않기도 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제화 상품권을 제외한 백화점 상품권의 할인율이 7% 이하로 내려간다면 일단 의심해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판매자의 연락처가 휴대전화번호 밖에 없거나 메일주소가 미국의 AOL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것일 경우도 추적을 피하기 위함이 아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또 상품권 금액의 60% 이상을 구매했는데도 잔액의 현금 환급을 거부하거나 할인매장이라는 이유로, 혹은 사업자명이 바뀌었다며 상품권 수령을 거절하는 곳들도 있기 때문에 미리 상품권 이용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상품권 가맹점이 실상 몇 군데 되지 않고 사용할 만한 곳이 마땅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는 수도 있기 때문에 경품용 상품권 같은 부실 상품권도 소비자들이 주의해야 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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