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지도자 선비들은 명분과 의리를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 그러나 우리는 명분과 의리를 그토록 존중하는 선비정신을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조선의 선비들이 청빈낙도를 이상적인 목표로 삼고, 노동과 산업의 가치를 부정한 탓에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 때문이다.

가족들이 당장 먹을 양식이 없는데도 노동을 천한 일이라고 여기며 허세를 부리는 사람, 당파싸움을 벌이며 권력에 눈이 먼 사람, 우리는 대부분 선비에 대하여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선비들이 공리공론과 당파싸움에 몰두하면서 국력이 극도로 쇠퇴하여 외세의 침입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국권을 상실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는가?

그래서 실학자 박지원은 선비가 도덕규범만 중시하고 생산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직접 생산에 참여하여 산업을 성장시키는 데서 그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재화의 생산이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데도 불구하고, 선비들이 의리만 내세우며 재화를 비천한 것으로 본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재화의 생산활동이 바르고 윤리적인 것이며, 생산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선비들의 행위가 오히려 비도덕적이라고 강조하였다.

해방 이후 우리는 경제의 발전과 정치의 민주화를 최상의 목표로 내세우면서 실용적인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실리를 추구하는 경제적인 관점이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우리 사회를 이런 물질 중심의 가치관이 지배하면서 이제 명분과 의리를 중시하는 윤리의식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청렴결백을 명예로운 삶으로 여기며 오히려 이를 즐기고자 노력하였다. 아무리 가난해도 세속적인 이익에 집착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대의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버리는 것이 선비정신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선비들은 절대권력을 가진 임금 앞에서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은 그 뜻을 굽히지 않는 강직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선비는 경제적인 이해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지도자들이었으며, 그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꺾이지 않는 용기를 지니고 있었다.

구약성경에는 쌍둥이 형제 에서와 야곱의 일화가 나온다. 형 에서는 사냥을 좋아하는 활달한 사냥꾼이며, 동생 야곱은 차분한 성격으로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야곱이 집에서 죽을 끓이고 있는데, 사냥을 하고 돌아와 배가 고픈 에서가 동생 야곱에게 그 죽을 좀 달라고 간청한다. 이때 야곱은 평소 자신의 가장 간절한 소원인 장자권을 형 에서에게 요구한다. 형이 가진 장자권을 죽 한 그릇에 팔라고 제안하는 것이었다.

에서는 지금 배가 고파 죽겠는데 그까짓 장자권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면서 동생 야곱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에서는 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파는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당장 눈앞의 현실적인 이익을 위해서 자신에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을 경솔하게 포기하다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보험금에 눈이 어두워 가족의 생명을 가볍게 여긴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금융기관의 직원이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신용과 명예를 저버린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공직자가 개인의 이익에 집착하여 공적인 책임을 소홀히 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조선의 선비들은 정의의 근본이 '수오지심'(羞惡之心)에 있다고 가르쳤다. '수오지심'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도덕적 능력으로서 이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통해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눈앞의 이익보다 명분과 의리, 그리고 명예를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선비정신이 다시 절실하게 요청되는 때이다. / 유원열 목사·전 백석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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