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9일 손민서 씨로부터 다큐멘터리 영화 <녹턴> 시사회에 초대를 받았다. 나는 손 씨를 오래 전에 악기 연습실에서 발달 장애인 아들 은성호 씨와 함께 처음 만났다. 손 씨는 그 동안 성함도 모르는 채 내 핸드폰에 '은성호맘 클라'로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는 분이다. 설리반 선생이 헬렌 켈러와 항상 동행하며 평생 그의 눈과 귀가 되어 주었듯이, 당시 손 씨가 클라리넷을 전공하는 아들 은성호 씨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모습이 참으로 애처로웠다.

은성호씨는 자폐성 장애(2급)를 가진 중증장애인이다. 초등학교 1학년 음악 시간에 선생님의 오르간 연주를 듣고 바로 따라 친 것이 계기가 되어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다. 이제 그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이나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월광'도 즐겨 연주하는 음악인이 되었다. 그는 현재 발달장애인 연주자들의 사회적 협동조합인 '드림위드앙상블'의 멤버로서 피아노와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있다.

영화 <녹턴>은 은성호 씨와 그의 가족 이야기를 11년간 카메라에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영화는 2020년 제42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은성호 씨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도 불구하고 피아노와 클라리넷, 두 악기를 능숙하게 연주하여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연주회도 열었다. 이번 달에는 '드림위드앙상블'이 만델라 재단의 초청을 받아서 한·남아공 수교 30주년 기념 남아프리카공화국 순회 연주를 떠난다.

그런데 은성호 씨에겐 음악 외에는 '사람 친구'가 없다. 그는 혼자 머리를 감거나 면도를 하는 것조차 어렵다. 재킷의 단추를 잠그는 것도 서툴다. 지하철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거나 큰 소리를 내서 어머니를 난처하게 하기도 한다. 그런 성호 씨와 동생 건기 씨 형제가 2017년 12월, 러시아 상트페테스부르크에서 함께 공연을 하게 된다. 성호 씨와 늘 붙어 다니던 어머니가 없이 형제만 출국하는 특별한 여정이다. 건기 씨는 어머니처럼 형의 수염을 직접 깎아주진 않지만, 혼자 면도를 하라고 하면서 턱을 좀 들라는 등 코치를 해 주고, 형의 공연 준비를 도우면서 매니저 역할을 한다. 성호 씨가 클라리넷, 건기 씨가 피아노를 이중주로 연주하면서 건기 씨는 드디어 형과 대화가 통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음악을 통해서 형제가 비로소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다.

영화 <녹턴>은 자폐 장애인 은성호 씨의 성공, 그리고 어머니 손 씨의 희생과 사랑을 다루는 단순한 접근을 넘어서 성호 씨의 가족이 경험하는 현실을 담고 있다. 특히 비장애인 동생 은건기 씨가 느끼는 소외감과 아픔을 그리고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자신이 그 책임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건기 씨의 부담감이 강하게 드러난다. 어머니는 어떻게든 두 아들이 대화하도록 상황을 만들어 보려고 애쓰지만, 동생은 오히려 화를 내며 어머니와 끊임없이 다툰다.

형제가 조금씩 성장하고 가까워지는 동안 어머니는 점점 나이가 들어간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손민서 씨의 삶에 대한 태도도 바뀌었다. 어머니 손 씨에게는 자기 자신의 인생은 없고, 자신은 항상 절망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삶이 결국 자신의 인생이며, 아들 성호가 자신에게 축복이라는 태도로 바뀌었다. 어머니로서 성호 씨의 음악을 선물로 받지 않았는가?

'하루가 아니라 단 한 시간'만이라도 아들 성호 씨보다 오래 사는 것이 어머니 손씨의 마지막 소원이다. 그리고 작은아들 건기 씨에게 자기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형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동생 건기 씨가 자기 스스로 독립하여 살기도 힘겨운 현실인데, 어떻게 형을 위해 어머니와 같은 희생을 하며 살 수 있겠는가? 어머니의 당부를 단호하게 거절하는 작은아들에게 어머니 손 씨가 애절하게 호소한다. "형제는 너밖에 없는데 어디에 가서 찾니?" / 유원열 목사·전 백석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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