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조규상 편집국장] "배움을 좋아함은 지(知)에 가깝고, 힘써 행함은 인(仁)에 가깝고, 부끄러움을 앎은 용(勇)에 가까우니라"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저작이며 사서(四書)의 하나인 중용(中庸)에는 위기의 순간에 지도자들이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가 담겨 있다.

이 가운데 중용 20장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인 지치근용(知恥近勇)을 주목해 본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은 용기에 가깝다는 말로, 자신의 실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이를 인정하고 책임지는 것을 중용에서는 용기라고 표현한다.

이처럼 지도자는 무릇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책임을 지고 떠나는 모습이 결코 미화될 필요도 없다.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를 비춰볼 때 최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행보는 용기 있는 수장의 모습이라고 볼 수 없다.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그에게서 책임이라는 말만 나올 뿐, 책임 있는 행동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조직법 제34조(행정안전부) 1항을 보면 행정안전부 장관은 안전 및 재난에 관한 정책의 수립·총괄·조정, 비상대비, 민방위 및 방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안전에 대한 책임은 곧 이 장관에게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장관은 지난 16일 경찰청은 별도의 청(외청)이라며 "남의 살림까지 챙길 수는 없다"고 밝혔다. 경찰 조직과 선을 그어 참사 책임을 피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아울러 이 장관은 "정무직은 한쪽 주머니에 항상 사표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다.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서 그는 기자에게 보낸 "누군들 폼 나게 사표 안 던지고 싶겠나"라는 문자메시지가 공개돼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언젠가 책임을 지고 떠날 때 자신에 대한 미화를 이미 염두에 두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끝으로 이 장관은 "책임지는 형태는 여러 가지가 있다"면서 "저는 누누이 말했지만 현 상태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더욱더 열심히 하겠다"고 덧붙였다.

물론 끝까지 이태원 참사 수습과 재발 방지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도 책임을 지는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신뢰를 잃었다. 신뢰를 잃은 자가 다시 재난 대책을 세운다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뿐이다.

새삼 세월호 참사 당시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의 용기가 떠오른다. 그는 일찌감치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만류로 사고 수습을 끝마치고 조용히 직을 내려놨다. 정부·여당에 대한 질타 속에서도 이 전 장관만이 유일하게 비난의 화살을 피한 것은 결국 그의 용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장관은 이미 참사 대응에 실기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용기를 보여야 그나마 혼란스러운 정국도 일단락될 것이다.

법적 책임을 따질 것이 아니라, 이 장관은 이제라도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스스로 지는 게 맞다. 그것이 윤석열 정부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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