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구도가 요동을 시작했다. 잠룡들이 겨울잠을 깬 것은 아니다. 경쟁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해온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침묵을 깨고 광폭행보에 나선 것은 더더욱 아니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도 원내 지분이 전혀 없는 국민참여당이 유시민 신임대표를 맞아 당지도 체제를 바군 것 뿐. 그러나, 그의 대중적 인지도에 비춰, 그의 대표 입성은 현행 정치권의 판도를 크게 갈라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 인해 당장, 세력 균형에 촉각을 세워야 하는 쪽은 민주당이다. 야권에서도 거대 지분을 가졌지만, 대중적 지지도에서는 유 대표에 크게 못 미친다는 평가에 따른 것. 정치 성향과 기반에서 공통분모를 가진 양측의 경쟁과 화합이 예측되는 대목이다. 참여당의 지도체제 변화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이는 야권의 세력 판도를 살펴본다.

 


 

“유 대표가 국민참여당 대표로 본격 등장해 국민들 기대가 크다. 국민의 기대는 민주진보세력이 하나 되는 것이니 언론 접촉도 많이 해 국민에게 하나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희망을 줘라.", “그렇게 하겠다. 제1야당 대표로 큰 리더십으로 잘 이끌어달라. 다른 야당들도 잘 보듬어 주고 모든 어려운 문제를 잘 타개해 줄 것으로 믿는다.”

 

당력에서는 손학규 우위

 

전자는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국민참여당 유시민 신임대표에 한말이고, 후자는 유 신임대표가 손 대표에 건넨 말이다. 양측의 만남은 최근 참여당의 지도부 개편에 따라 민주당사를 찾은 유 신임대표의 방문으로 이뤄졌다.

 

야권 세력 지형의 공통분모를 가진 두 사람의 대화는 연신, 덕담과 ‘잘해보자’는 각오로 이어졌다. 특히, 두 사람은 현행 야권이 당면한 세력 ‘연대 내지는 통합’에 대해 함축적 의미로 의사를 주고받아 같은 시기 엇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도 분석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국민참여당의 지도부 개편이 야권에 긍정적 반향을 부를지,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올지에 촉각을 세우는 눈치다. 더욱,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종전 세력 지형과 노선에서 대부분 흡사한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對당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것. 여기에 양당의 대표간 정치력 경쟁도 향후 한층 가열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손 대표와 유 대표는 올해를 기점으로 본격화할 것으로 보이는 대권 경쟁에서 서로 유리한 고지를 점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이것은 그간 대권을 두고 차기논쟁을 벌여온 정치권 전체를 통틀어서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는 게 정가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양측이 인사를 겸해 민주당사에서 화기애애한 덕담을 주고받았다고는 하지만, 저변으로는 긴장감이 깔려있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양측은 대표간 대권 경쟁에 앞서, 오는 4월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에서 ‘후보단일화’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재보선이 향후 정국 주도권과 직결되는 현행 구도 탓에 신임 인사에서 주고받은 덕담과 달리 양측의 신경전은 그야말로 팽팽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잘 보여주기라도 하듯, 양대 대표단은 하루를 사이에 두고 김해(을)지역을 방문, 표심잡기에 전력을 다하는 형국이다. 민주당은 현재 김해지역에 지역 출신으로 부산지방국세청장을 지낸 곽진업 후보를 공천하고, 선거 본부를 가동하고 있다. 선거대책본부 역시,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 김영춘, 박주선 최고위원을 공동대책위원장으로 임명하는 등 부산경남 출신과 최고위원단의 거물급 라인업을 선보이며 기선 잡기에 나섰다.

 

대중성은 유시민 앞서

 

문제는 김해지역이 국민참여당의 입장에서도 놓쳐서는 안될 선거구라는 점이다. 참여당은 지난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이후, 창당했다. 물밑 작업은 그 이전부터 해왔다고 해도, 본격 창당의 깃발을 올린 것은 그 이후다. 더욱, 참여당은 당명에서도 드러나듯 지난 참여정부의 적통을 기반으로 지난 정부 인사들이 중심 돼 창당됐다.

 

김해지역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적지 않다는 말이다. 이뿐 아니다. 신임대표가 된 유시민 대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권을 이끈 창업공신으로 지난 정부 시절, ‘노무현의 복심’, ‘정치적 경호실장’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불과분의 관계다. 민주당으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참여당은 현재, 김해(을)구에 노 전 대통령의 농업특보를 지낸 바 있는 이봉수 도당위원장을 후보로 내놓고 표밭을 갈고 있다. 이 예비후보가 내놓은 선거 전략도 두말이 필요없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업을 이어가겠다”는 것. 한나라당이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를 후보로 내놓을 것이 분명한 마당에 ‘후보단일화’ 없이는 승산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국민참여당도 민주당 만큼이나, 속이 탈수밖에 없는 지형이다.

 

그렇다고 해서, 양측 모두 아무런 조건도 없이 후보를 내놓을 수도 없다. 전체 판세에 비춰, 단 1석도 아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는 4월 재보선에서 김해(을)구는 여야의 대결에 앞서 야야간 치열한 힘겨루기와 신경전이 먼저 치러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손학규對유시민’으로 불리며 향후 정가에 또 다른 흥행코드로 각광 받아온, 라이벌전에 제1라운드라는 말도 있다.

 

이번 김해(을)구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당장 지역구를 둘러싼, 주도권 양상 외에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으로선 놓칠 수 없는 카드가 또 있다. 바로, 두 당간 ‘노선 경쟁’이다. 이는 엄밀히 따져,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른바 ‘적통’과도 직결되는 것으로 향후, 양당의 정치색과 아울러, 지역적 토대가 될 수 있는 핵심 키워드다.

 

현 정국에서 ‘노무현 적통’은 사분오열 된 야권엔, 통합과 분열을 가르는 중요한 열쇠다. 그간 야권의 소위 ‘진보진영’은 호남 중심의 정치색으로 적지 않은 한계를 노출해 왔다. 특히 노 전 대통령에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사실상 지역기반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호남세에 이어 부산, 경남을 세력권에 둘 경우 지난해 지방선거의 전례에 비춰,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의 우위는 어렵지 않게 전망된다. 손학규의 민주당과 유시민의 국민참여당의 미묘한 신경전이 불가피한 이유다.

 

‘노무현 쟁탈전’ 가열될 듯

 

그러나, 손 대표와 유 대표가 향후 정국에서 야권의 패권을 두고 겨루야 할 과제는 이것 말고도 더 있다. 어찌보면, 정가의 눈이 두 사람으로 모아지는 긍극적인 이유도 이것이다. 바로 대권 경쟁이다.

 

손학규 대표와 유시민 대표는 올해부터 본격화할 대선 경쟁에서 줄곧 야권의 대표 선수로 불려왔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계파 분열에도 불구, 박근혜 전 대표라는 부동의 포워드를 갖추고 있는 것과 달리 현행 양측의 국민적 지지율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 대표와 유 대표의 라이벌전은 어느 대결구도 못지 않은 높은 흥행성을 가진 카드로 평가되고 있다.

 

이는 현행 대권구도에서 두 사람이 갖고 있는 국민지지율과도 괘를 같이한다. 최근까지 일부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유시민 대표가 손학규 대표를 비교적 크게 앞서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3월21일자로 발표한 차기대선후보지지율 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30.9%를 기록해 부동의 1위를 기록한 가운데, 그 뒤를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는 14.3%를 기록해 2위를 기록했다. 손학규 대표는 지지율 8.4%를 얻어 유 대표에 이어 3위를 마크했다.

 

유시민 대표의 대권행보는 이것말고도 진보계 유력주자군 선호도에서도 뚜렷한 리드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야권에는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여기서 유 대표는 전체 응답자의 18.5%를 얻어 1위를 기록했고, 손 대표는 12.8%를 기록해 2위를 달렸다.

 

당을 떠나, ‘손학규 對 유시민’이라는 인물간 경쟁에서는 다소나마 유 대표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 대표단이 민주당을 방문한 자리에서 손 대표가 던진 ‘국민의 기대’도 따지고 보면 유 대표의 높은 대중성을 염두에 둔 ‘뼈있는’ 덕담이라는 시각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유 대표의 리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대권 경쟁이 본격화한다면 인물간 경쟁 외에 당력이 지지지율 변화 추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이는 후보지지율에서 오랜 기간, 우위를 점해온 국민참여당과 유 대표가 풀어야할 당면 과제이기도 하다. 유 대표의 국민참여당은 높은 대중성에 비해, 아직 이렇다할 원내 인물을 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신임대표 수락연설에서 유 대표가 던진 말도 이러한 당의 현실적 문제에 기인하다. 그는 “차기 총선에서 과반수인 180석 중 20석을 책임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현행 정치지형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거대 양당 체제가 유권자의 우동성과 자율 경쟁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방문에서 손 대표에 “큰 리더십으로 다른 야당들도 잘 보듬어 달라”고 한 것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손학규와 유시민 양당 대표의 구도는 야권엔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과 함께 자칫 과열 경쟁과 세력 분열이라는 위험성도 내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야권이 대권경쟁에서 그간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중심의 구도를 허물 수 있는 ‘흥행 코드’를 찾았다는 말도 있어, 향후 ‘손학규 對 유시민’이라는 새로운 라이벌 구도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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