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이른바 ‘공약 폐기’ 후폭풍이 여간해선 식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특히, 지난 신공항 백지화 논란이후 불거진 과학비지니스벨트 사업이 당초 충청권에서 최소 3개 시도로 확대될 것으로 보이면서 본래의 사업 성격 마저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한나라당에서도 일부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반발 목소리를 내면서, 이 대통령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어 사태 추이는 걷잡을 수 없는 분열상을 낳고 있다.

 

이에 따라 집권 후반기 가뜩이나 레임덕(권력 누수)를 우려해온 여권 핵심부의 고민도 덩달아 깊어질 전망이다. ‘공약 폐기’에 따른 신뢰 추락이 원인. 실제 정치권에서는 현재, 과학벨트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정치의 근간이 되는 소위 ‘신뢰정치’에 대한 설전이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한나라당 박 전 대표가 강조해온 ‘원칙’ ‘신뢰’가 이번 논란의 핵심이라는 시각이다. 추이를 살펴보고 파장을 점거해 본다.

 


 

“한나라당이 정부 들어와서 중요한 국책사업을 여러 개 치렀다. 첨단의료복합단지도 하나만 하기로 했다가 나누었다. 과학벨트까지 서너 건의 일들이 그렇게 매끄럽게 처리됐다고 보지 않는다. 어찌 이런 일들이 자꾸 만들어지나?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책의 범위를 넘어 정치의 범위를 넘어 대통령의 인품에까지 번져나가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최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 도중, 박성효 최고위원이 던진 불만이다.

 

여권 내부부터 균열

 

박 최고위원의 돌출 발언이 나오자, 회의석상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이에 대해 안상수 대표는 “지역 얘기를 하는 것은 좋은데, 최고위원은 국가 전체의 업무를 보고해야지, 자기 지역 이야기를 한다면 최고위원 자리에 무엇 때문에 앉아 있나. 사퇴하든지 해야지”라고 받아치며 수습에 나서기도 했다.

 

과학비지니스 벨트와 관련해 여권 내부에서 터져 나온, 불만이다. 하지만, 이번 과학벨트에 대한 논란은 단순한 정파간 세력간 이해 관계 대립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사태가 지난 신공항 백지화 사태 이후, 도출됐다는 점에서 일부에서는 논란의 핵심에 이른바 ‘신뢰’라는 근본적인 패러다임이 깔려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실제로 정부가 신공항 건설을 전면 백지화하면서 해당 지역은 물론이고 정가 일각에서조차, “대선 공약을 경제성 이유로 폐기했다”고 평가하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바 있다. 신공항 논란의 여파가 정국에 미칠 파괴력을 미리 짐작한 관측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번 논란의 수위가 그리 낮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향후 정국에서 이 대통령의 입김이 적지 않게 약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는 논란의 범위가, 당을 넘어 정치권 전체로 급속히 파급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어렵지 않게 예상된다.

 

이런 분석이 나온데도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선 당초, 충청권을 중심으로 들어서기로 했던, 과학벨트 계획이 규모를 달리해 3개 시도에 건설될 수 있다는 이른바 ‘분산설’이 힘을 얻으면서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자유선진당이 결사항전의 의지를 불태우며 반발에 나선 것.

 

공약 남발에 뒤집기가 원인

 

선진당은 최근 논평을 통해 “(이 대통령이) 처음부터 분산을 위해 은하도시에서 과학비즈니스도시로 명칭을 바꿨다가 다시 ‘도시’를 ‘벨트’로 변경했다”며 “이는 대선공약으로 내세울 때부터 쪼개기로 작심하고 있었다는 말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선진당은 “대선에서 표를 얻기 위해 국민을 갖고 놀았다, 지킬 의지도 없이 공약을 남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둔 정치권의 반발은 여기서 끝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논란을 지켜보던 민주당이 불에 기름을 붓듯 결정타를 날린 것.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과학벨트가 이른바 형님벨트가 될 우려가 있다”며 특히 “대통령이 세종시와 동남권 신공항, 반값 등록금에 이어 과학벨트의 충청권 유치 공약까지 지키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괴는 땜질식 국정 운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정부가 신공항을 백지화하던 시점에도 소위 ‘신뢰 정치’를 내세워, 청와대를 비판한 바 있다.

 

이처럼 현행 정치권은 종전 추진이 예고된 과학비지니스 벨트 확대 조성 여부를 두고 적지 않은 몸살을 앓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정책적 대립인 것만은 분명하다”면서도 “저변으로는 전혀 다른 ‘신뢰’의 문제가 깔려 있다”는 진단을 내놓으면서 사태의 파장이 예상보다 클 수 있음을 시사했다.

 

따라서 향후 정국의 촉각은 자연히 이번 논란의 여파로 쏠린다. 당장의 과학벨트 건설이 여러 파열음에도 불구, 국가 정책으로 이미 여러 차례, 논의된 만큼, 지난 신공항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

그럼에도, 집권 후반기 강한 동력이 필요했던 이 대통령에게는 악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의 표현대로, 이 대통령은 이번 과학벨트를 지난 신공항의 후속 조치로 여긴 듯 보인다.

 

‘박근혜의 원칙론’ 파급효과?

 

시점이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있는데다, 민심의 동요가 얼마든지 예상된 만큼, 지역 안배를 통한 민심잡기의 일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 계획안에 호남권도 대상으로 포함되면서 그간, 고전을 면치 못해온 ‘호남 공략’에도 핵심 카드로 부상했다.

 

문제는 이러한 특단의 구상에도, 정가에 비춰진 정부의 계획 수정은 세종시 논란 당시 종종 사용된 바 있는 소위 ‘약속 위반’으로 여겨질 법하다는 시각이다.

 

시민사회 단체 한 관계자는 “선거과정에서 표를 얻기 위해 무책임한 개발공약을 남발한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다”고 말하며 개발공약에 대해 “모두가 피해를 입는 제로섬게임과 같다”고 밝혔다. 지역 사업의 경우, 제외 지역에서는 극한 반발이 불가피하다는 말이다.

 

이처럼 사태가 확대 일로로 접어드는 시점, 박성효 최고위원 등의 내부 반발은 이 대통령에 더 큰 부담을 안기기에 충분하다는 시각이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일각에서도 지난 세종시 논란 당시를 떠올리며 정부의 신뢰에 강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실제 지난 세종시 건설 사업이 정국의 화두가 된 시점,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이른바 ‘정치인의 신뢰’를 문제삼아 이 대통령에 강한 압박을 가한 바 있다. “공약을 어긴다면 누가 다음 선거에서 정치인을 믿겠느냐”는 게 박 전 대표의 항변이었다. 최근 일련의 사정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이 대통령이 집권 막판, 강한 추동력을 내세워 추진하려던 여러 국책사업이 동력을 잃고 표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재보선을 앞둔데다, 내년 총선과 대선도 남겨둔 시점, 대권 후보들의 행보까지 본격화하면서, 바야흐로 청와대의 레임덕도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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