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민ㆍ관 합동 석유가격 태스크포스(TF)를 차리는 등 정유사 압박이 심화되자 SK에너지를 시작으로 GS칼텍스, S-Oil, 현대오일뱅크 등 4개 정유사가 잇따라 가격할인 정책을 밝혔지만, 정작 주유소들이 이를 바로 적용하지 않고 있어 소비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주유소업계는 인하시기와 방법에서 주유소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즉각적인 가격조정이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유사들이 지난 3월 말 일선 주유소에 재고를 가득 채우라고 종용한 지 불과 1주일만에 주유소와 협의 없이 전격 가격 인하를 발표해, 이전의 재고분을 처리하기 전까지는 가격을 낮출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1월 13일 이명박 대통령이 '기름값이 묘하다'며 정유사의 가격정책을 겨냥하자 지식경제부와 기획재정부는 석유가격 태스크포스(TF) 팀을 꾸려 3개월여 동안 가격비대칭성과 결정구조 등을 조사했다.

 
최중경 지경부 장관은 자신이 회계사 출신임을 거론하며 "기름값 원가를 직접 계산해보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최근 한 포럼에서는 "이익 나는 정유사들이 성의 표시라도 해야 한다"고 노골적인 표현을 내놓기도 했다.

 
이러한 전방위적 압박에 못이겨 SK에너지가 먼저 지난 3일, 4월 7일부터 3개월간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리터(ℓ)당 100원씩 인하하겠다고 밝혔고, 이어 4일과 5일 GS칼텍스, S-Oil 등도 가격 인하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이들 정유사가 휘발유 및 석유 가격을 내리기로 한 첫 날, 할인된 가격에 주유를 하러 주유소로 몰린 소비자들은 정유소의 정책 발표와는 다른 가격에 혼란을 겪으며 불만을 터뜨렸다. SK에너지 등은 100원 인하를 발표했지만, 직영점을 제외한 많은 주유소에서는 이보다 적은 가격을 내리거나 아예 내리지 않은 곳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유사-주유소 공방전

 

주유소들은 소비자들의 비난에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정유업계가 사전 조율 없이 일방적으로 100원 인하 사실을 발표해 주유소들이 정유사와 소비자 사이에 껴서 고통을 받고 있다며, 책임을 정유사들에 돌리고 있다.

 
한국주유소협회는 7일 "서민고통 경감을 위한 정유사 기름값 인하 조치는 환영이지만, 주유소와의 사전 조율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된 데 대해서는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인하시기와 방법에서 주유소 입장이 반영되지 않아 즉각적인 가격조정이 어렵다는 것이다.

 
주요소들의 주장은 정유사의 가격 할인 전 들여온 재고가 아직 많이 남아 있어 이를 다 처리하기 전까지는 정유사 발표대로 100원 할인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유소협회는 "주유소 매출이익이 5%에 불과한 상황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재고분에 대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리터(ℓ)당 100원을 인하해 판매할 수는 없다"며 "재고소진과 정유사의 공급가격을 고려해 향후 1~2주 정도 시차를 두고 판매가격이 인하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유소들은 보통 한 달에 2번 정도 기름 저장고를 채우는데, 판매가 활발해 빠른 곳은 1주일만에 저장고가 비워지고, 대부분이 2주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때문에 기름값이 내린 7일 당시 주유소들이 확보하고 있던 기름은 할인 전 가격의 것이어서 전날까지 정유사에서 받은 기름이 다 팔려야, 할인 된 가격으로 들여온 기름을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유협회의 한 관계자는 "주유소들은 재고분이 쌓여있어 즉각적인 가격할인이 어려운데 소비자들은 가격 할인을 요구하고 있어 마치 주유소가 정유사와 소비자 사이에서 지나친 마진(이윤)을 챙기는 듯한 오해를 받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정유사들은 공급가격 인하가 3개월이기 때문에 가격이 정상화되는 7월초부터는 반대로 주유소들이 싸게 구입한 재고량으로 리터당 100원의 차익을 보고 팔 수 있다면서 "결과적으로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반박하고 있다. 1차 고객인 주유소들의 반발이 크다보니 정유사들로서는 곤혹스러울 따름이다.

 
또 정유사들은 일반 소비자들을 위해 정유값을 내리면서 업체별로 1000억~3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감내해야 해 나름대로 속을 끓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주유소업계와 정유업계의 '네 탓' 공방 속에서 가장 큰 불만이 쌓이는 것은 바로 소비자들이다. 기름값이 내려올 것만 기다리며 주유소 방문을 미뤄왔던 소비자들은, 할인 소식에 반가워하며 주유소를 찾았지만 정유사와 주유소 간의 불협화음 속에 "속았다"는 기분만 가득 안게 됐다.

 

 

영업직원들의 실수

 

주유소들은 정유사 판매직원들이 기름값 인하 직전에 재고를 가득 채우라고 종용했었다며, 그랬던 정유사가 1주일만에 전격 가격 인하를 발표함에 따라 재고분 만큼의 손실을 주유소 측에 떠넘겼다고 이에 대한 불만도 제기하고 나섰다.

 
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정유사들은 지난 3월 말 일선 주유소에 유가 인상이 예상됨에 따라 재고를 가득 채우라며 구매를 종용했고, 이에 따라 대부분의 주유소가 재고를 4월 3주 판매분까지 확보해 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1주일만에 가격인하가 발표됐으니 주유소들은 황당해 할 수밖에 없다.

 
흔히 정유사 판매직원들은 일선 주유소에 정보제공 차원에서 1~2주 뒤 유가전망과 그에 따른 재고 운영방안을 조언해준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 경우에 정유사 직원들이 이번 기름값 인하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고, 그저 국제 유가 흐름을 반영했을 때 4월 유가 인상이 예상되는 상황이라 재고를 채울 것을 제안했던 것이다. 이에 주유소들은 정유사 측 조언 때문에 재고를 쌓았는데, 정유사의 할인 정책에 뒷통수를 맞았다며 불만을 표하고 있는 것.

 
정유사들은 판매 직원들의 실수였음을 인정하면서도,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을 내비치며 "정유사는 정보제공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문자를 발송하고 있다. 급작스레 기름값 깜짝 할인이 발표돼 마치 구매를 종용한 것처럼 오해를 산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실제 주유소들에 따르면 지난 3월말 정유사로부터 "내일 공장도 가격 인상예정입니다. 전 유종을 4월 22일 재고까지 필요합니다. 4월 3주차까지는 반드시 확보필요"라는 내용의 문자를 휴대폰으로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기름값 할인이 시작된 곳들에서는 신용카드 결제 차감이 법인카드에는 적용되지 않거나, 정유사마다 할인 방식에 차이가 있는 등 신용카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알려져,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혼란이 더욱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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