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을 만드느니 아예 철거해라”

[월요신문 김보배 기자] 서울시가 노후화된 서울역 고가를 녹지공원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해 지역 주민과 남대문시장 상인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서울의 동서를 잇는 간선도로 역할을 하는 이 고가도로가 없어질 경우 지역경기침체·교통대란·안전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시가 충분한 주민 의견 수렴 절차도 없이 사업을 일방적으로 추진해 문제를 키웠다. 그럼에도 불구 서울시가 고가 공원을 서울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어 진통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서울역 고가 공원화를 ‘교통대란·상권악화·공원의 우범지대화’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서울시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파크 같은 ‘공중 공원’ 조성할 것”
남대문시장 상인 “우리와 한마디 상의 없어…교통대란 우려돼”

서울시가 서울역 고가(폭 10.3m, 총연장 938m)를 오는 2016년까지 공원화하는 계획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12일 낮 12시부터 4시간 동안 남대문시장 입구 회현역 5번 출입구부터 약 1㎞에 해당하는 서울역 고가 구간을 시민에 개방했다. 지난 1970년 준공 행사 당시 박정희 대통령 부부가 테이프 커팅을 위해 올라갔을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보행공간으로 개방된 적이 없던 곳이다.

이날 행사는 ‘서울역 고가, 첫 만남: 꽃길 거닐다’라는 주제로 치러졌다. 고가도로 한쪽에는 꽃밭정원과 카페가 들어섰고, 플로리스트들이 곳곳에서 시민들과 함께 꽃 장식을 만들었다. 동원된 서울시 공무원만 140여명. 자원봉사자까지 합하면 약 300명이다.

서울역 고가 개방 행사를 찾은 시민은 서울시 추산 1만3000여명에 이른다. 낮 12시30분부터 30분간 3개 퍼레이드팀과 7개 거리공연팀이 펼친 꽃길 퍼레이드와 공연이 시민들을 맞이했다. 5층 건물 옥상과 비슷한 17m 높이의 개방 구간을 걷는 시민들은 도심 속 전망을 마음껏 감상했다.

서울역 고가 위가 축제분위기로 한창이던 이 시각, 한쪽에선 생존권을 주장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대문시장 상인들과 주민들은 고가가 시작되는 남대문시장 SK텔레콤 건물 앞에서 ‘서울역 고가 공원화 추진 반대’ 집회를 열었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서울역 고가 일대에 경찰 5개 중대 350여 명이 배치됐다.

집회 참가자들은 공원화 사업이 세계적 쇼핑센터인 남대문지역 상권을 고사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재룡 남대문시장상인회 회장은 “서울의 동·서를 연결하는 고가가 막혀 교통체증이 불을 보듯 훤한데도 아무런 대책 없이 공원을 만들겠다는 것은 시장 상권을 죽이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인회에는 남대문시장 상인 1만2000여 명이 가입돼 있다.

남대문시장에서 40여년간 옷 가게를 운영해온 윤모씨는 “먹고 사는 생존권의 문제”라면서 “서민들을 위한 길을 내어주지는 못할망정 협의도 없이 수백억원의 세금을 멋대로 쓰려한다”고 성토했다.

회현동에 거주하는 주민 이모씨는 “접근성이 떨어지는 높은 지형에 공원을 조성한들 이용자가 몇이나 되겠느냐”며 “고가 위가 서울역 일대 노숙자들의 놀이터가 돼 오히려 관광사업에 해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서울 중구 서울역 인근에서 지난 12일 열린 ‘서울역 고가도로 시민개방’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이 44년만에 개방된 고가도로를 자유롭게 걷고 있다. <사진 제공=제휴사 뉴시스>

시장은 북적, 상인은 울상

서울시가 서울역 고가를 시민들에게 개방한 이후인 지난 15일 남대문시장을 찾았다.

이른 시각이었지만 남대문시장은 손님과 관광객, 상인들로 북적이는 모습이었다. 찬바람에 쌀쌀한 날씨에도 상인들은 가게 앞에 나와 한국어·중국어·일본어를 섞어가며 호객행위에 여념이 없었다.

남대문시장은 아동·남성·여성의류를 비롯한 각종 섬유제품과 액세서리, 일용잡화, 주방용품, 공산품, 민속공예와 토산품 및 장신구, 그리고 수입상품, 식품, 농수산물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상품이 구비된 국내 최대의 종합시장이다.

총 2만여평의 대지면적에 약 1만172개의 점포가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다. 취급품목만 해도 1700여종에 이르며 시장에 종사하는 인력은 5만명에 육박한다.

서울시는 남대문시장의 1일 출입고객수가 적게는 30만명에서 많게는 4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중 외국인 관광객이 7000명에서 1만명이다. 새벽 2시에는 전국의 소매상과 중간도매상으로 북적일 만큼 소위 말하는 ‘시장냄새’가 가득한 장소로 손꼽힌다.

지난 1414년 정부임대시전으로 시작해 올해로 600주년을 맞이한 남대문시장은 명실상부 서울의 관광명소로도 거듭나고 있다.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적게는 1년에서 많게는 4~50년째 이곳을 생활터전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현재 이들은 서울역 고가의 공원화를 앞두고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남대문시장에서 서울역 고가가 시작되는 곳 한편에서 40년간 일 해온 한 천막사 상인은 “서울시가 우리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고가를 공원으로 만든다고 하니 기가 막힌 심정”이라며 “원래 11개였던 버스노선이 절반 이상 줄어들어 매출에 타격을 받고 있는데, 고가도로에 차량이 통제되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 상인은 “매출이 떨어지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교통대란은 어떻게 할 것이냐”며 “이 지역이 차량으로 북새통을 이룰 텐데 서울시는 대책도 내놓지 않고 무작정 공원을 만든다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맞은편에서 3년째 토스트를 팔아온 상인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고가다리를 보완해서 교통을 원활하게 할 생각은 고사하고 공원을 만든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고가다리가 공원이 되면 서울역 노숙자들이 죄다 와서 쉴 것이고, 날이 어둑해지면 우범지대가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시장 중심가에서 10년 넘게 그릇가게를 운영해온 상인도 “공원이 되면 서울역 고가로 다니던 차들은 시청 앞을 지나 남대문시장으로 와야 한다는 것인데, 주차공간도 없는 남대문시장에 누가 그 수고스러움을 감수하고 찾아오겠느냐”며 “서민을 위한다는 박원순 시장에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 올해로 6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남대문시장은 약 1만172개의 점포, 종사 인력 5만명에 육박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이다. 이곳 상인들은 서울역 고가 공원화를 ‘교통대란·상권악화·공원의 우범지대화’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뉴욕 ‘하이라인파크’ 기대?

서울역 고가는 지난 1970년 준공, 노후화로 인해 철거가 유력했다. 지난 2006년 한국시설공단에서 실시한 안전점검에서 ‘D등급’을 받았다. 이 등급은 시설을 긴급 보수하고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고 판단되는 시설에 내려진다. ‘E등급’을 받게 되면 사용이 통제된다.

지난 2009년부터는 서울역 고가에 버스 통행이 전면 금지됐다. 때문에 남대문시장을 통과하던 퇴계로 일대 버스노선이 줄면서 퇴계로 쪽 상가 공실률이 30%에 달할 만큼 상인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원순 서울 시장은 민선 6기 도시재생 핵심 사업의 하나로 2016년까지 서울역 고가를 보행자 중심의 녹지공원(가칭 서울역 하늘뜰)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만리동 고개에서 남대문시장까지 1㎞가량 이어진 서울역 고가가 공원이 되면 지상 4층 높이에서 서울 도심을 한눈에 바라보며 걸을 수 있게 된다. 고가 한가운데 자리 잡은 서울역 광장에서도 고가 공원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연결할 계획이다.

박원순 서울 시장은 지난달 23일 미국 뉴욕 ‘하이라인파크’를 현장 시찰했다. 하이라인파크는 맨해튼의 서쪽에서 지상 9m 높이에 설치돼 있던 폐철로에 꽃과 나무를 심고 벤치를 설치해 만든 2.5㎞의 공원이다. 철거될 위기였던 이 폐철로를 시민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해 공원으로 만들자고 주장하면서 지난 2009년 조성돼 뉴욕의 랜드마크로 떠올랐다.

박 시장은 ‘하이라인파크’를 방문한 자리에서 준공한지 44년이 지난 서울역 고가를 철거하지 않고 녹지공원으로 재생하겠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서울역 고가는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갖는 산업화 시대의 유산”이라며 “원형을 보존하면서 안전과 편의, 경관을 고려한 사람 중심의 녹색공간으로 시민에게 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이어 “서울역 고가가 관광명소화되면 침체에 빠진 남대문시장을 비롯해 지역 경제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근처 서울성곽과 숭례문, 한양도성, 남산공원, 남대문시장, 약현성당, 서소문 역사공원 등 역사문화공간이 많아 걸어서 즐기는 도심 속 쉼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다음 달 국제 현상 공모를 통해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한 뒤 내년 설계에 들어가 2016년 말 완공할 계획이다. 비용은 360억원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 서울역 고가는 심각한 노후화로 철거가 유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서울 중구청이 조사한 ‘서울역 고가 교통량 조사결과’에 따르면 회현동에서 중림동으로 넘어가는 차량 중 80% 이상은 서울역 고가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나 대체 도로가 시급한 실정이다.

하이라인파크와 다른 것

서울시 예상과는 달리 서울역 고가 공원화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우선 서울역 일대는 노숙자들의 주요 근거지로 치안 및 안전문제가 대두된다. 특히 서울역 고가의 높이가 17m에 달하는 만큼 추락사고나 투신사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밖에 재정난을 겪고 있는 서울시가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지도 관심사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서울시가 벤치마킹한 하이라인파크는 20년간 방치된 철로였으나 서울역 고가는 현재 도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윤영석 새누리당 의원이 서울 중구청으로부터 제출받아 지난 14일 공개한 ‘서울역 고가 교통량 조사결과’에 따르면 회현동에서 중림동으로 넘어가는 차량 중 80% 이상은 서울역 고가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구청이 지난달 23일부터 25일까지 총 2회에 걸쳐 서울역 고가의 차량통행을 조사한 결과, 퇴근 시간인 오후 6시부터 7시 사이 회현동에서 중림동 방향으로 진행하는 차량 총 1896대 중 82.1%인 1556대가 고가도로를 이용했다. 이 구간을 오가는 차량 등을 포함, 방향별 차량의 시간당 통행량은 1000대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윤 의원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모델로 삼고 있는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는 폐철로를 활용한 재생사업으로 통행량이 많은 서울역 고가도로와는 다르다”며 “대체도로 등 교통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사업을 진행하면 교통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시장은 7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교통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며 “지역주민, 전문가들과 함께 해결방법을 찾아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서울시는 서울역 주변 교차로 구조개선 및 신호운영 최적화, 통행제한으로 우회한 버스노선의 원상회복 방안 등을 추진해 교통불편을 최소화하겠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또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비판받아 마땅하다”면서 “앞으로 의견 수렴을 위한 설명회 등을 수시로 열겠다”고 말했다.

이에 남대문시장상인회 관계자는 “일방적으로 사업을 발표해 놓고 뒤늦게 주민에게 와서 협조해달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서울시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끝까지 반대하고 나설 것”이라고 못 박았다.

   
▲ 서울역 고가 공원조성 후 조감도. 서울시는 서울역 고가를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파크’처럼 공원화해 서울의 랜드마크로 재탄생시킨다는 계획이다. <자료 제공=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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