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이재용에겐 득(得), 이부진에게는 실(失)"

김재열 사장의 위상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7일 발표된 삼성그룹 사장단인사에서 김재열 사장은 제일모직에서 삼성엔지니어링 경영기획총괄사장으로 보직 이동했다. 삼성 오너일가 중에서는 유일하게 이번 인사에 포함됐다. ‘둘째 사위’라는 꼬리표를 떼고 그룹 경영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 이에 대해 재계 일각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의 경영 동반자로 사실상 김 사장을 낙점했다”는 분석이 흘러나오고 있다.

   
▲ 올 1월 9일 신라호텔서 열린 이건희 회장 칠순기념 만찬에 참석한 김재열 사장.(왼쪽부터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임우재 삼성전기 전무, 김재열 사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둘째 사위인 김재열 제일모직 사장이 삼성엔지니어링 경영기획총괄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삼성그룹 계열사 중 최근 가장 ‘잘 나가는’ 회사다. 다시 말해 ‘변방’에서 ‘중앙’으로 입성한 셈이다. 이 때문에 이번 인사의 배경을 놓고 갖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김재열 사장의 보직 이동은 사실 예상치 못한 결과다. 김재열 사장은 지난해 말 ‘2011년 사장단 및 임원 인사’에서 아내인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과 함께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부부 동반 승진했고, 3개월도 채 안 돼 다시 사장으로 파격 승진했다. 당시 삼성그룹은 김재열 사장이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 후보에 단독 입후보한 것을 거론하며 “재계 출신 다른 체육단체장들이 모두 사장급 이상으로 선임됐던 점을 감안, 후보로써의 격을 맞추고자 김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 인사했다”고 밝혔으나 재계에서는 “삼성그룹이 언제부터 체육단체의 눈치를 살폈나”면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부진 에버랜드 사장이 부사장을 거치지 않고 전무에서 바로 사장으로 두 단계 뛰어오른 것과 관련지어 “이부진 사장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이재용 사장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추락하자 김재열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의도”라는 추측까지 흘러나왔다.

이처럼 고속 승진으로 갖가지 해석을 낳게 한 김재열 사장이 이번에도 오너 일가 중 삼성 사장단 인사에 유일하게 포함되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더욱이 보직 이동한 삼성엔지니어링은 올해 해외 수주액만 56억2000만달러를 기록하는 등 국내 플랜트 업계 가운데 1위를 달리고 삼성그룹의 ‘알짜’ 계열사다. 최근 수년간 분기마다 최대 실적을 경신했고 지난 3·4분기에는 매출 2조2249억원, 영업이익 2129억원을 달성하며, 매출 2조원-영업익 2000억원 시대를 열기도 했다. 전임 사장이었던 정연주 삼성물산 사장이 이번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故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차남인 김재열 사장은 미국 스탠퍼드대학 경영학 석사(MBA) 출신으로 영어를 비롯해 외국어에 능통하고 국제 감각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지난 2월 중순 평창동계올림픽 후보지 현장실사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IOC조사평가단을 맞아 이건희 회장을 ‘그림자 수행’ 하는 등 국제 스포츠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관련 이인용 삼성 커뮤니케이션팀 부사장은 “김 사장은 제일기획에서 1년, 제일모직에서 9년, 총 10년 동안 세계전략담당, 경영기획담당을 하면서 세계적 역량과 네트워크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며 “지금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하고 성장을 해야 할 삼성엔지니어링에 실질적 도움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삼성가 사위들의 행보, 그룹 후계구도서 핵심포인트

그러나 재계에서는 김재열 사장의 보직 이동을 맏사위인 임우재 전무와 비교하며 후계 구도와 연관 짓는 시각이 우세하다. 불과 1년 전 이맘때만 해도 같은 직급이었던 김재열 사장과 임우재 전무는 이제 하늘과 땅 만큼의 격차가 벌어졌다. 당초 삼성그룹 내에서도 김재열 사장 보다는 임우재 전무의 인사이동에 무게가 실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김재열 사장이 승승장구하며 그룹 최고경영진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한데 반해 임우재 전무는 2년 연속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상태다. 삼성물산 평사원 출신으로 삼성가의 거센 반대를 극복하고 이부진 사장과 결혼했으나 결국 도태(?)되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인사로 삼성가 사위들의 미래 명암이 더욱 뚜렷해졌다”면서 “김재열 사장과 임우재 전무의 차이가 벌어질수록 이부진 사장은 타격을 입고 이재용 사장에게는 힘이 실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부진 사장은 이번 사장단 인사에서 이름이 빠졌으나 이재용 사장이 이렇다 할 실적을 보여주지 못해 제외된 것과는 대조된다. 삼성전자와 삼성 구조조정본부 등을 거친 김봉영 삼성SDS 부사장이 삼성에버랜드 사장으로 부임한 것은 삼성에서 이부진 사장을 측면 지원했다는 평가다. 여전히 오빠인 이재용 사장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부진 사장의 입장에서는 남편의 답보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김재열 사장과 임우재 전무의 상반된 앞날은 그룹 후계구도에서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로 읽힌다.

이재용 사장과 김재열 사장은 청운중학교 동기동창으로, 김재열 사장과 이서현 부사장의 결혼은 이재용 사장의 주선에 의해 성사된 것으로 전해진다. 김재열 사장이 삼성가의 일원으로 합류했을 때부터 두 사람은 경영파트너로 얽혀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대해 재계 한 관계자는 “온화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알려진 이재용 사장과 아버지를 닮아 승부욕이 강하고 독자적인 경영에 익숙한 이부진 사장은 한 배를 탈 수 없는 사이”라면서 “김재열 사장의 거침없는 행보는 그를 이재용 사장의 오른팔로 삼으려는 이건희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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