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김두관, PK 대표주자 ‘우뚝’... 한명숙, 야권통합정당 첫 수장 ‘유력’

상전벽해(桑田碧海)다. 한때 폐족(廢族)을 자처했던 친노(親盧·친노무현) 진영이 내년 총·대선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내달 15일 열릴 통합민주당 전당대회 출격을 목전에 두고 있다. 힘의 무게를 봤을 때 당권은 그의 차지일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김두관 경남지사는 이미 부산·경남(PK)을 대표하는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이들에게 PK의 변화 바람은 차기 대권을 가능케 하는 든든한 주춧돌이다. 뒤에는 야권 최고의 전략가 이해찬 전 총리가 버티고 섰다. 여론마저 이들에게 화해의 손짓을 내밀고 있다. 거칠 것 없는 친노의 귀환을 쫓아가봤다.

 

   
 

노무현의 죽음… 그리고 6.2 지방선거

부활의 계기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였다. 전대미문의 전직 대통령 투신 소식에 대한민국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전국 각지의 분향소는 밀려드는 추모객들 발길로 들끓었다. 공식 추모객 500만명이 흘렸던 눈물은 슬픔이 됐고,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반(反)이명박 전선의 태동을 알리는 전주곡이자 재야로 흩어졌던 친노 진영의 결집을 이끄는 촉매제였다.

이듬해 6.2 지방선거는 친노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차세대 친노 3인방 김두관·안희정·이광재는 각각 경남과 충남, 강원을 석권했다. 좌(左)희정·우(右)광재의 당선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지역주의를 허물고 등장한 김두관 경남지사였다. 노 전 대통령조자 뚫지 못했던 지역주의의 공고한 벽을 마침내 그가 균열시킨 것이다. 당선 직후 그는 기자에게 “지역패권주의라는 벽에 자그마한 파혈구 하나를 냈다”고 겸손해했지만 이후 중앙정치는 그를 ‘대안’으로 바라보게 됐다.

모든 밑그림은 이해찬 전 총리와 정세균 당시 민주당 대표의 합작품이었다. 관리형 대표였던 정 대표는 자신을 뒷받침할 절대 우군이 필요했고, 이 전 총리는 친노의 일선 복귀가 중요했다. 두 사람의 이해가 전적으로 맞아떨어져 한명숙 서울시장-유시민 경기지사-송영길 인천시장-김정길 부산시장-김두관 경남지사-안희정 충남지사-이시종 충북지사-이광재 강원지사로 이어지는 전국 도로망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한명숙은 강남의 저항에, 유시민의 민주당의 거부감에, 김정길은 지역주의에 각각 무릎을 꿇었지만 그간 한나라당이 독점했던 지방권력의 전면교체는 2012년 총·대선을 위한 거점 확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제1야당 민주당을 집어삼키다

지방권력 교체로 교두보를 마련한 친노는 권력의 정점인 총선과 대선을 향한 진격을 시작됐다. 곧 ‘혁신과통합’(이하 혁통)이 출범했다. 박원순 현 서울시장을 위시한 시민사회 세력이 참여했다 하나 혁통을 이루는 본질적 뿌리는 친노였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선두에 섰다. 경기지사 선거에 4.27 김해 보선까지 연거푸 자충수로 나락에 빠진 유시민 현 통합진보당 대표를 대신해 친노의 대표주자로 정치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이른바 ‘대망론’이었다. 친노와 진보매체의 전폭적 지원에 노무현과 그를 동일시한 여론까지 더해지면서 문 이사장은 단숨에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제치고 야권 유력 대선주자로 자리매김했다.

민주당을 향한 압박 또한 본격화됐다. 명분은 ‘통합’이었고 여론은 ‘동력’이 됐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자리를 혁통의 박원순 후보에게 내줬다. 제도권의 제1야당이 의석 하나 없는 외곽세력에게 처참히 패한 셈이다. 민주당은 자위하며 충격을 최소화하려 했지만 안철수마저 등장하며 당을 초토화시켰다. 특히 안 교수를 중심으로 한 제3신당설은 “통합이 아니면 죽음”이라는 이분법적 선택에 매달리게 했다. 한 수도권 의원은 “사실상 친노가 당을 접수했다”고 말했고, 또 다른 호남권 중진의원은 “외통수에 걸렸다”고까지 표현했다.

당내에선 손 대표가 통합의 선봉에 서며 악역을 자임했다. 칼을 빼들었고 급기야 손에 피를 묻혔다. 박지원 의원을 중심으로 한 호남권의 저항을 “구태정치”이자 “기득권의 저항”으로 치부했다. “친노는 복당의 대상이지, 통합의 대상이 아니다”는 저항의 명분은 시간이 갈수록 급격히 세(勢)를 잃었다. 내년 총선 공천에 눈치를 보던 현역의원과 원외 지역위원장들도 대세로 선회했다. 박 의원이 “손 대표에 대한 대선 지지를 철회한다”며 ‘정치적 결별’을 선언하는 등 완강히 버텼지만 정해진 흐름을 되돌리진 못했다.

손 대표가 자신을 지탱해줬던 호남을 버리고 혁통과 손을 잡은 데는 대권에 대한 손익계산 때문이었다는 게 당내 중론이다. 야권통합을 통한 한나라당과의 1대1 구도는 정권교체를 위한 필수 전제조건이었다. 친노가 틀어쥔 영남의 지원은 통합의 최대 과실(果實)이었다. 4.27 분당 승리를 통해 증명된 수도권 영향력을 뒷받침할 최대 우군으로 친노의 영남 영향력을 꼽은 것이다. 한 측근은 “호남은 (대선) 후보가 정해지면 자연스레 뒤따라오는 집토끼”라며 “통합을 위해선 이들의 기득권 해체는 필수”라고 설명했다.

통합정당의 첫 수장 친노 大母 한명숙 ‘유력’

진통 끝에 민주당은 혁통이 주체가 된 시민통합당과 16일 합당을 공식 결의했다. 당명은 통합민주당으로, 약칭은 민주당으로 결정됐다. 새 지도부는 내달 15일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키로 했다. 일정 합의가 끝남에 따라 향후 모든 초점은 전당대회로 맞춰지게 됐다. 현재 자천타천 당권주자만 20여명에 이르지만 한 전 총리를 1강으로 꼽는 데는 이견이 없다. 유력주자였던 박 의원은 통합 과정에서 점철된 내홍의 책임 탓에 ‘구태 정치인’으로 낙인 찍혀 당권 쟁취는 어렵다는 평가다.

한 전 총리 측은 그간 “어떤 (전당대회) 룰이든 상관없다. 결심은 섰다”며 자신감을 한껏 드러냈다. 시민통합당을 이루는 근간인 친노의 정신적 대모(大母) 로 불리는 데다 시민사회, 노동계 등 통합에 참여하는 제 세력에게 거부감이 가장 덜한 인사로 평가된다. 또한 민주당 내 최대 계파 중 하나인 정세균계와 손학규계의 전폭적 지지를 이미 예약해 놓은 상황이다. 내주 초 출마 선언이 있을 것이라고 측근들은 전했다.

한 전 총리와 함께 문성근 ‘국민의명령’ 대표도 출격 준비를 완료했다. 그간 빅텐트, 이른바 야권 대통합을 주창하며 100만 민란을 통해 외곽에서 세를 규합했던 문 대표는 현재 시민통합당에 몸담고 있는 대표적 친노 인사다. 높은 대중성에 노 전 대통령을 향한 깊은 충정, 여기에다 제 세력 간 힘의 균형을 고려할 때 6명이 선출되는 지도부에 무난히 입성할 것이란 전망이다.

민주당 인사 중에선 박지원 의원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하나 여전히 강자로 분류되고 있고, 이인영 최고위원을 비롯해 김부겸·이강래·이종걸·우제창·조경태 의원 등이 출전 채비를 마쳤다. 박영선 정책위의장이 나설 경우 다크호스로 부상할 것이란 분석도 잇따른다. 정대철 상임고문과 김태랑 전 국회사무총장, 정균환 전 의원도 세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시민통합당에서는 문성근 공동대표 외에 YMCA 대부 이학영 ‘진보통합시민회의’ 상임의장, 김기식 ‘내가꿈꾸는나라’ 대표도 출사표를 던졌다. 박용진 전 진보신당 부대표 또한 당권 레이스에 뛰어들기로 했다.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의 출마도 거론된다.

문재인 ‘총선 앞으로’… 김두관 ‘숨겨진 대안’

친노에게 있어 지방권력에 제1야당 당권까지, 남은 건 대권 접수다. 이를 위해 친노의 거목이자 부산권 친노 인사들의 좌장인 문재인 이사장은 내년 총선 출마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외적으론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주변과 상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내부에선 그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사전준비에 부산한 모습이다. 지역구는 부산의 정치 1번지로 그의 변호사 사무실이 위치한 연제구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선 경남중·고를 나온 이력을 들어 서구도 거론하고 있으나 연제구에 비해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성적표다. 그의 당락을 비롯한 부산권 성적표가 어떻게 산출되느냐에 따라 대선주자로서의 그의 정치적 위상은 급격히 달라질 것이란 분석이다. 자칫 지난 10.26 부산 동구청장 선거처럼 참패로 끝날 경우 대안은 급격히 김두관 경남지사에게로 옮겨 붙을 가능성이 크다.

김 지사는 일단 무소속을 유지하며 상황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야권통합과 정권교체를 위해선 그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당적 문제는 도민들과의 정치적 신의가 담긴 약속이라 부담이 크다는 게 측근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대신 외곽에서 기여도를 계속해서 높여나가겠다는 계산이다. 총선 이후 급격히 초래될 상황 변화에 따라 대선에 직접 나설 것으로 보인다. 대중적으로는 차기 주자로 자리매김하지 못했지만 이미 정치권 내에선 그를 가장 강력한 대안으로 인식하는 기류가 확산 중에 있다.

마을 이장에서부터 출발해 최연소 군수와 장관을 거쳐 50년 지역패권주의에 균열을 냈다는 정치적 스토리가 무엇보다 큰 자산이다. 노 전 대통령의 외길(지역구도 타파)을 홀로 쫓아 이뤄낸 성과다. 또한 이 과정에서 보여준 철학과 가치, 정책은 “노무현을 넘어섰다”는 평가로까지 이어졌다. 김 지사 스스로도 차기 도전 의지를 굳힌 상황이어서 그는 이미 내년 대선을 좌우할 핵심 상수로 자리 잡았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왜 김두관을 주목하는가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지난달 한 강연에서 “차기 대선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김두관 경남지사 간 경쟁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는 기자에게 ‘정치인은 운명을 넘어선 의지’라는 마키아벨리의 말을 빗대 “문재인과 김두관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권력의지”라며 “김 지사는 권력욕이 아닌 권력의지가 잘 정립돼 있는 반면 문 이사장은 지금껏 한 번도 권력의지를 보여준 바가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숱한 선거를 통한 대중적 검증과 정당 및 내각에서의 국정운영 경험은 문 이사장과 차별화할 수 있는 김 지사만의 장점이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한나라당 역시 김 지사를 경계대상 1호로 꼽는데 주저치 않고 있다. 안철수가 박근혜 대세론을 무너뜨린 장본인이지만, 그의 정치 참여 여부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에서 제도권 인사로 김 지사를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다. 원희룡 의원 등 복수의 의원들은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손학규도, 문재인도 아닌 김두관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내년 대선을 좌우할 변수로 “지역 변수, 그중에서도 영남이 중요하다”면서 “특히 PK(부산·경남)가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표의 확장성 면에선 손 대표보다 더 경쟁력 있다. ‘박근혜 대 김두관’ ‘박근혜 대 문재인’ 구도에서 야권의 승리 가능성을 무시 못한다”고 우려했다.

정당·인물·지역·정책 등이 대선을 결정짓는 주요변수라는 점에서 인물 경쟁력과 함께 그간 대선판을 좌우했던 지역구도를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손 대표가 4.27 분당 승리를 통해 민주당의 차기주자 자리를 확고히 했다지만 ‘보따리장수’란 노 전 대통령의 주술에서마저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 출신이란 태생적 한계는 그가 보여준 수도권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괴롭히는 트라우마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야권 지지층 결집력의 차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

여기에다 수도권 민심이 이명박 정부로부터 돌아선 상황에서 전통적 지지 기반이었던 부산·경남의 흔들림마저 예사롭지 않고, 이를 가속화할 지역 대표성을 갖춘 주자가 나선다면 판세는 급속히 불리해질 수 있다는 게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특히 지난 6.2 지방선거를 통해 민주당이 충청·강원 등 주요 광역시도에 거점을 마련했다는 점을 들어 파괴력은 박 전 대표를 대구·경북(TK)에 옭아맬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됐다. 야권 역시 친노의 비밀명기, 김두관의 파괴력을 주목하며 그를 서서히 대안으로 끌어올릴 작업을 진척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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