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호텔들을 난감하게 만든 한 마디가 있다. 바로 "앞으로 호텔 내에 한식당이 없으면 특1급 호텔 등급을 받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발언이 그것이다. 갑작스럽게 발등에 떨어진 불똥에 호텔업계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한편, 한복금지 논란으로 잠시 골머리를 앓았던 호텔 신라는 꽤 긍정적으로 검토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서울 소재 19개 특1급 호텔 가운데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롯데호텔과 워커힐, 메이필드, 르네상스호텔 등 단 4곳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3일 취임 100일을 앞두고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특급호텔에 우리 문화의 대표격인 한식을 보여줄 한식당이 부족하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호텔 등급평가에서 한식당에 대한 배점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한국호텔에 한식당이 없어?
비난여론에 움찔

 

정 장관의 한식당 발언은 지난 달 호텔신라의 한복 금지 파문에 따른 여론을 의식한 데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지난 달 12일 호텔신라는 한복 디자이너 이혜순 씨의 한복 착용 뷔페 출입을 막았다는 논란에 휩싸였었고, 이 파문은 특급호텔의 한식당 홀대에 대한 비난 여론으로까지 비화됐다.

 
호텔신라에 한식당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 부각되면서 우리나라 특급 호텔들 대부분이 한식당을 운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이에 여론은 "우리나라 호텔에 한식당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냐"면서 호텔업계가 우리 문화를 홀대한다는 비난이 들끓기 시작했다.

 
논란은 국회로까지 옮겨갔다. 4월 1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 전체회의에 참석한 김을동 미래희망연대 의원은 "호텔 등급평가기준에서 한식당 유무에 따른 배점을 차등화하는 등 특급호텔의 한식당 설치를 의무화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이에 대해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호텔 평가기준에서 한식당 입점 유무의 배점 기준을 높이고 정부 지원을 통해서라도 특급호텔에서 한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던 바 있다.

 
결국은 정부가 호텔 등급 판정을 매년 실시하면서 한식당 설치에 가산점을 대폭 높이는 방법으로 특급 호텔들을 압박하게 됐다.

 

현재 호텔등급 지정에 따른 획득 점수는 총점 700점에서 한식당을 운영할 경우 가산점으로 20점을 주던 방식이다. 그런데 앞으로 이에 대한 배점이 100점으로까지 높아질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들 '울상'

 

그동안 특급호텔들은 한식당 운영이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렵다는 이유로 운영을 기피해 왔다. 조리 과정이 까다롭고 회전율도 낮은데다 인건비도 많이 드는 등 한식당의 수익성 악화 때문에 운영을 포기해 왔었다는 것이 특급호텔 관계자의 전언이다.

 
특히 한식은 갈비탕 등 저가의 단품 판매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 "양식이나 일식에 비해 수익 구조가 낮을 수밖에 없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한식당 운영 여부에 대한 등급 배점은 지난해까지 가산점이 10점에 불과했다가 올해 20점으로 높아졌다. 그럼에도 특급호텔 대부분은 아예 가산점 20점을 애당초 포기하고 다른 데서 점수를 만회하려고 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정병국 장관은 "호텔에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비싸게만 팔게 아니라 궁중음식 메뉴 개발 등 한식당을 고급화하면 얼마든지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을 것"이라며 "호텔 한식당에서는 집에서 자주 먹기 어려운 궁중요리 등을 정갈하게 만들어 누가 먹어도 제대로 대접받았다는 느낌을 받도록 해야 호텔운영도 개선되고 우리 한식도 진흥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지가 맞지 않을 경우 등급에 따라 세제 혜택도 주겠다"고도 덧붙였다.

 
갑작스럽게 발등에 불똥이 떨어진 호텔 업계는 정부의 방침에 대해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배점 기준이 달라진 만큼, 앞으로는 호텔 등급 판정에 결정적 변수가 될 수도 있는 한식당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달 중 1~3층 리모델링을 끝내고 영업에 들어가는 조선호텔의 경우 이미 새 식당들의 인테리어 공사가 마무리 중인데, 정부의 갑작스러운 방침 때문에 한식당으로 바꾸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복 파동을 겪은 신라호텔는 한식당 운영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장관은 지난달 호텔신라의 '한복홀대 논란 사건' 직후 이 호텔 부사장과 지배인 등이 장관실을 찾아와 직접 양해를 구했다는 사실을 공개했고, 당시 그가 호텔신라 측에 한식당을 운영해야 한다 말했을 때 부사장도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답변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호텔신라는 한복 파문에는 다소 오해가 있었지만, 어찌됐든 문제의 단초를 제공했던 만큼 배점에 관계 없이 한식당 설치를 통해 이미지를 쇄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외식사업부에 한식 조리사가 있어, 한식을 제공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으나, 한식당을 마련할 공간과 콘셉트 등을 검토할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호텔신라는 지난 1979년부터 운영하던 한식당 '서라벌'을 이부진 사장이 호텔신라 경영전략담당 상무로 재직하던 2005년 당시, 역시나 수지타산의 문제로 폐쇄했던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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