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대적인 약가인하 정책에 제약업계의 반발의 더욱 심화되고 있다. 제약업계는 정부가 보험급여 적용기간 연장 및 치료등급 상향 조정, 치료제에 대한 환자들의 혜택 폭이 넓어지는 일련의 상황 속에서 환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의 대가를 제약사들이 짊어지도록 하고 있다며 이를 비난하고 있다. 또,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약가인하 등 여러 가지 일괄적 인하 정책에 대해서도 "비논리적이고 무차별적"이라며 정부의 재검토를 촉구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4월 27일 '약제급여 목록 및 급여 상한금액표 개정안'을 마련해 고시했다면서 총 641개 건강보험 등재 의약품에 대한 가격 인하를 발표했다. 지난해 상반기 17주 동안 110개 요양기관을 대상으로 의약품 실거래가를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가격 인하 대상과 폭을 조정했다고 한다. 이중 627개 품목은 시중에 유통되는 가격이 복지부가 정한 건강보험 약가 상한액보다 낮아 인하 대상이 됐다.

 
제약업계는 정부가 치료제에 대한 급여범위를 넓히기 위해 해당 제품을 판매하는 제약사에게 그에 상충하는 약가 인하를 의무화하고 있다며,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건보재정 타개책?
"근거 타당하지 못해"

 

약가인하 대비 급여범위 확대의 정책은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에서 먼저 두르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염진통제인 NSAID 비중이 높았던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의 패러다임이 생물학적 제제인 TNF-α 억제제로 대체되기 시작하면서, 관련 치료제들의 약가인하 수난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실제 그동안 보험급여 인정부터 약가인하를 조건으로 내세웠던 정부는, 최근 이들 치료제의 51개월 급여기간 철폐 전제조건으로 5% 약가인하를 내걸었고, 제약사들은 이에 승복했다.


한 예로, 한국MSD의 레미케이드가 지난해 10월 약가인하를 단행했고, 한국와이어스의 엔브렐도 지난 달 1일부터 보험기간 제한이 풀리는 대신 약가 5%를 인하했다.


이번에 인하 대상이 된 것은 동아제약의 동아가바펜틴캡슐, 한국유니온제약의 유니온피록시캄주 등이며, 이들 품목의 약가 평균 인하율은 0.68%이다.

 
또 특허 만료와 함께 최초 제네릭이 등재된 의약품 4종, 최초 약가 협상 당시 합의된 예상 사용량보다 30% 이상 사용량이 늘면서 추가 약가 협상 대상이 된 1개 품목 등이 가격조정 대상이 됐으며, 제약사가 자발적으로 가격 인하를 결정한 품목은 9개다. 그동안 급여 대상이었지만 사용 실적이 없는 101개 품목에 대해서는 비급여 대상으로 전환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시중에 유통되는 가격에 비해 고시 약가가 비싼 의약품 등에 대해 가격을 조정한 것"이라며 "건강보험 재정 절감에도 일정 부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제약사들이 다소 억울해할 수 있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 내에서 환자들에게 보다 많은 혜택을 주기 위해서는 제약사들의 양보를 유도하는 수밖에 없다"며 이러한 보험급여 확대와 약가인하의 상관관계에 대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정책 기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제약사 관계자들은 "정부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일선 제약사들도 고충이 크다"며 "국내 약가가 다른 나라보다 낮은 편인데, 급여확대를 이유로 또 약가 인하를 강요하는 것은 지나친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3일 오후 3시 한국제약협회 4층 대강당에서 열린 '이사장단회의, 약가제도위원회, 약가제도연구위원회 통합 워크샵'에서는 약제비 증가 주요 원인이 '사용량'에 있음에도 '약가인하'로만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처방 품목수를 OECD 평균인 2개 수준으로만 줄여도 보험의약품의 대폭적인 일괄 인하 효과가 나타날 것임에도, 정부는 효과가 불분명한 약가인하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약제비는 조제료 등 수가(의사나 약사 등의 의료서비스 제공자에게 제공하는 돈)가 포함되지 않은 순수한 보험약품의 비용(국민건강보험 재정상환액+환자 본인 부담금)을 말한다.

 
심평원의 2010년 3월 18일자 보도자료에 따르면, 의료이용량의 증가와 사용량의 증가로 약제비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고(05년~09년 12.87%) 투약일수와 처방건수 증가가 약제비 증가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목한 바 있다.

 

 

업계 존립 위협?

 

 

제약협회 공정약가정책팀 장우순 팀장은 "주력품목이 줄줄이 가격인하 중으로 추가인하를 감내할 여력도 없다"며, "획일적 약가인하는 보험재정에 도움이 안되고 제약산업 발전에 부작용만 양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가 지난 1999년 보험약값의 30.7%(9900억원)를 일괄 인하해 이를 수가에 보전해줬으며, 수가는 늘고 약가는 낮아졌으므로 다음해 2조원의 약제비 비중 감소효과가 나타나야 하지만 오히려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현실을 무시하고 정부가 약가관리 강화에만 정책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제약업계가 바라보는 시선이다.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약가 인하에 대해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워크숍에서 이경호 제약협회장은 획일적 약가인하를 추진하는 정부의 움직임에 반대하며, 리베이트가 약가인하의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리베이트 근절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리베이트로 인해 약가를 인하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제약협회는 불법 리베이트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전체 약가수준을 낮추는 것은 품질관리에 필요한 설비투자, 신약개발을 위한 R&D투자 등을 통해 수출을 늘리고 글로벌화를 꾀하려는 제약기업의 투자활동과 의지를 꺾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며, 시장형실거래가제와 기등재의약품목록정비 등으로 인한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다시 약가인하가 이뤄질 경우 제약업계의 존립 자체가 우려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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