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만한 등산로가 어렵지 않아 걷기에 제격

[월요신문 김지수 기자] 눈 소식이 있을 땐 산으로 간다. 비가 내린다는 예보에도 마찬가지다. 눈과 비가 내린 다음날, 산 정상에는 눈부시게 하얀 눈꽃이 핀다. 눈이 오는 날에는 산 아래 걷는 길도 어렵지 않고 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 역시 완만한 오대산으로 가자. 작정하고 떠나면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나절 안에 새하얀 눈꽃 세상을 보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산행 들머리까지 군내버스가 항시 운행하기 때문이다. 월정사와 상원사, 적멸보궁을 지나 비로봉에서 만나는 하얀 눈꽃 세상으로 떠나보자.

   
▲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오대산 트레킹 코스 중 난이도가 가장 낮은 선재길은 총 9km에 이르는 숲길이다. 선재는 불교 경전인 '화엄경'에 나오는 동자의 이름으로 선지식을 찾아 돌아다니던 젊은 구도자가 걸었던 길이라는 뜻에서 명명됐다.

선재동자가 이 길에서 깨달음을 얻었듯이, 이곳을 찾는 이들도 자신을 돌아보면 좋을 것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불거리는 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이 숲길로 스님들과 불자들이 오고갔다. 도로가 생긴 뒤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길이다.

가장 잘 알려진 트레킹 시기는 알록달록 단풍으로 물드는 가을이지만, 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매력적인 겨울에도 걷기 편하다. 오르내리는 구간 없이 평지로만 되어 있고, 따스한 태양빛이 땅으로 내려오지 못해 내린 눈이 그대로 쌓이는 숲길이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 쉼터가 마련되어 있으며, 곳곳에 역사의 흔적이 있어 볼거리를 제공한다.

월정사로부터 5.4km 떨어진 곳에 이르면 동피골이다.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오대산장과 멸종위기식물원이 위치한 곳이다. 곳곳에 섶다리, 화전민 터, 옛 산림철도 등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그중 섶다리는 선재길 옆으로 흐르는 계곡 위에 놓았던 다리로 2010년에 복원해 현재까지 이용된다. 선재길은 계곡을 건너야 하는 구간이 많아서 섶다리 외에도 출렁다리, 목재다리 등 여러 형태의 다리를 오고가야 한다.

3.6km의 숲길을 지나 오대산국립공원관리공단 안내소에 도착하면 천년의 숲길이라고도 불리는 선재길 끝에 닿는다. 걷는 내내 옆 도로의 자동차 소음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다. 걷는 것이 다소 힘들다면 옆 도로를 오가는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월정사, 동피골, 상암사 입구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다른 듯 이어지는 월정사와 상원사

오대산 자락에 터를 잡은 월정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인 643년에 작은 암자로 건립된 후 여러 번의 중건을 거쳐 사찰의 면모를 갖췄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칠불보전, 영산전, 광응전, 진영각 등 건물 17동과 많은 문화재가 불타버렸다. 그 뒤 1964년에 칠불보전이 있던 터에 적광전이 세워졌다.

보통 석가모니를 모신 전각을 대웅전이라 부르지만, 월정사는 화엄사상을 바탕으로 세워진 절이기 때문에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함께 모신다는 의미로 적광전이라 이름 붙여졌다.

적광전 앞으로 얼핏 보기에도 화려한 석탑이 우뚝 서 있다. 바로 국보 제48호인 팔각구층석탑이다. 고려 초기에 조성된 이 석탑은 팔각 모양의 기단 위에 9개의 몸돌과 지붕돌로 구성됐다. 9개의 몸돌 중 두 번째 돌부터 8개의 돌 귀퉁이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작은 풍경이 매달려 있다. 지붕돌 위에는 금동으로 만든 머리장식이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고려시대의 화려한 금속공예를 보여준다.

탑 앞에 마주보고 앉아 있는 석조보살좌상의 모습도 눈길을 끈다. 경내에는 성보박물관과 난다나 카페가 일반에게 공개 운영되고, 월정사 앞 전나무 숲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숲길'로도 유명하다.

월정사가 오대산 선재길의 시작이라면 상원사는 그 끝에 자리한 사찰이다.

상원사는 오대산에 있는 많은 암자와 함께 월정사의 말사로 운영되지만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산사이다. 창건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규모로 보아도 월정사와 견줄 만하여 여러 전설이 전해지며 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특히 상원사 동종은 국보 제36호로,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범종이다. 조선 태종 때 불교 탄압을 피해 안동에 잠시 옮겨졌다가 예종 때인 1469년에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상원사를 중창할 때 쓰인 '상원사 중창권선문' 역시 국보 제292호로 지정돼 월정사 성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적멸보궁 지나 비로봉까지

우리나라에는 사찰이지만 불상을 모시지 않은 곳이 있다. 적멸보궁이라 불리는 이곳은 법당 앞에 사리탑을 두고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다. 양산 통도사와 설악산 봉정암, 영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그리고 이곳 오대산 상원사에 적멸보궁이 자리한다.

5대 적멸보궁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곳이 오대산 적멸보궁이다. 상원사를 지나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은 오대산 정상인 비로봉에 이르는 등산로와 연결된다.

적멸보궁 앞 200m 부근에 적멸보궁을 지키는 중대 사자암이 있다. 조선 태종 때인 1400년에 처음 지어진 암자다. 지금의 모습은 2006년에 완공된 5층 계단식 향각으로 오대산의 오대를 상징한다.

20여 분을 걸어 올라가면 오대산 적멸보궁에 닿는다. 적멸보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각지붕 건물로 조선 후기 양식을 따른다. 건물 왼편에 사리탑이 있다.

적멸보궁에서 1.5km를 더 가면 해발 1,563m의 비로봉이다. 오대산은 다섯 봉우리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중 비로봉이 주봉으로 가장 높다.

오대산은 신라시대 자장율사와 인연이 깊다. 자장율사는 당나라에서 돌아온 뒤 그 산세를 보고 중국 오대산과 흡사하다 하여 오대산이라 이름 짓고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한다.

상원사에서 적멸보궁까지는 사찰의 관리를 받아 돌계단이 조성돼 있고 눈도 치워져 있지만, 적멸보궁에서 비로봉까지는 그대로 등산로다. 하지만 오르는 길이 어렵지 않다. 나무계단의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이다. 나뭇가지에 얼어붙은 눈꽃을 만나면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한 기분으로 등산을 즐길 수 있다. 비로봉에 이르면 오대산의 나머지 네 봉우리와 함께 동해가 내려다보인다.

글·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김애진(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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