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새 주인’ 현대그룹

현대건설이 현대그룹의 품으로 되돌아갔다. 현대그룹은 자금 동원력 등 객관적 열세에도 불구, 그동안 치열한 인수경쟁을 펼쳐온 현대차그룹을 누르고 지난 16일, 현대건설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현대차 보다 약 4천억 원을 더 써낸 5조 5천 1백원이라는 인수가격이 주효했다. 그러나 무리한 인수 자금 조달로 인한 현대건설과 현대그룹의 동반 부실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현대그룹이 현재 자체 보유한 현금이 1조 5천억 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을 둘러싼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의 인수경쟁은 현대건설 매각 공고가 나기 전부터 이미 재계 안팎으로 소문이 파다했다. 현대건설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맨손으로 일군 회사인 만큼 두 형제기업의 정통성을 잇겠다는 의지는 대단했다.
특히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은 수년 전부터 현대건설 인수를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며 현대그룹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현대건설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종종 드러내왔다. 현대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 지분 7.22%를 현대건설이 갖고 있기 때문에 경영권 보호차원에서라도 현대건설은 현 회장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예상치 훨씬 웃돈 5조 5천억원
현대건설 인수 우선협상자가 발표되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재계에서는 현대차가 현대건설을 갖게 될 것이라는 설에 무게가 더 실렸던 것이 사실이다. 자금력으로 볼 때 현대차 쪽이 현대그룹 보다 더 우세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현대그룹 측은 다소 네거티브한 감성 광고까지 내보내며 현대건설 인수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끝내 현정은 회장의 뚝심이 승리했다.
채권단에 따르면 현대그룹은 비가격 항목에서는 현대차에 뒤졌으나 인수가격 면에서 현대차보다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총평가 점수가 매우 근소한 차이였다는 것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현대건설 채권단 측은 당초 “인수가격 외에 비가격 요소(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경영 및 자금조달 계획 등)도 중요하게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업계에서는 가격 외 별다른 차별 요인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결국 현대그룹은 본입찰에서 4조원 안팎으로 평가받는 현대건설 지분 34.88%를 당초 예상을 웃도는 약 5조500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제시, 현대차를 제치고 현대건설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현대차그룹은 이보다 4000억원 적은 5조1000억원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막판에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에서 1조2000억원가량을 조달했다”며 “벼랑 끝에서 가능한 자금을 총동원해 배수의 진을 친 현대그룹의 절박함이 이번 인수전의 최대 변수였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입찰 접수 당시 현대차의 인수전을 주도한 현대엠코 조위건 사장이 “여러 가지를 감안해 경제적인 가격을 써냈다”고 밝혔던 만큼, 현대그룹이 업계 시선대로 다소 무리한 가격을 써낸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제2의 대우건설 될까” 우려
현대건설이 현대그룹의 품으로 돌아가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현대건설 내부에서는 불만의 목소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현대건설 직원들은 채권단이 자신들 배불리기에만 급급해서 국민경제를 현대건설을 통해 팔아먹었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무리한 기업 M&A(인수합병)에 따른 그룹 전체의 부실과 이로 인한 경제 위기를 우려한 것이다.
현재 현대그룹이 자체 보유한 현금은 1조 5천억 원. 나머지 4조원을 어떻게 조달할 지가 관건이다. 현대그룹은 “그룹 위상이나 규모를 고려해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금 조달계획을 제출했다”며 “자금은 충실히 준비하고 계획한 대로 조달해 문제가 없도록 할 것”이라고 했지만, 여론은 그와 다르게 큰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히 3년 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 인수전에서 과도한 인수비용으로 대우건설을 품에 넣고도 경영 부실화를 견디지 못해 3년 만에 도로 토해놓고 경영난에 시달린 사례를 거론하며 ‘승자의 저주’가 현대그룹에도 오지 않을까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당시 대우건설이 알짜 자산이 다 팔린 채 빈 껍데기 신세로 버려졌던 만큼, 현대건설 직원들의 우려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현대건설 직원들이 노예처럼 팔렸다는 말도 나올 정도다.
한 직원은 “현대그룹이 외부 차입에 많이 의존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결국현대건설의 재무 부담으로 이어져 ‘제2의 대우건설’이 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현대건설 노조 측은 “채권단이 약속대로 비가격요소를 평가하지 않고 가격에서 승부를 갈랐다”며 “채권단은 당장 돈만 받고 나오면 끝나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들밖에 생각하지 않았다”고 맹비난했다.
채권단의 평가방법에도 지적이 이어졌다. 현대건설 노조위원장은 “채권단이 현대건설 임직원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대화 요구를 묵살해왔다”면서 “현대그룹 인수를 막기 위해 온갖 방법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만약 현대건설에 승자의 저주가 재현돼 일자리와 국민경제에 영향을 준다면 국민에게 절망과 고통을 주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현대건설 매각대금이 국민경제를 위해 쓰일지, 채권단의 보너스 잔치에 쓰일지 사용처를 알아야겠다”면서 “채권단이 밝히지 않는다면 국회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의지대로 순항할 수 있을까
현정은 회장은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틀 뒤인 18일, 금강산관광 시작 12주년을 맞아 고 정주영·정몽헌 회장의 묘소를 참배한 자리에서 “현대건설 인수자금 마련에 전혀 문제가 없다”면서 “오는 2020년까지 현대건설에 20조원을 투자해 글로벌 톱5의 한국 대표기업으로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대증권 등 그룹 내에서도 이번 인수를 두고 반발이 심하게 일고, 현대그룹이 제시한 인수 자금 내역 중 프랑스 은행 예치금이라고 밝힌 1조2000억원의 자금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자 현대건설 채권단도 인수자금 조달 내역에 대해 전반적인 재검토를 하겠다고 밝히는 등 현대그룹에 난항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현대건설 채권단은 시장의 우려가 커지자 현대건설 인수자가 주식매매계약 체결 뒤 2년동안 현대건설에 대해 담보제공이나 계열사 지급보증, 자산매각, 유상증자, 인수합병 등과 같은 자산 유출 행위를 요구할 수 없도록 하는 안을 강구하고 나섰다. 현대건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은 이런 내용을 포함한 주식매매계약서를 만든 다음 다른 채권은행의 동의를 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데 제시한 5조5000억원 마련을 위해 그룹 현금성 자산 3조7000억원(보유 현금 1조4000억원+추가조달 2조3000억원)과 외부 투자자의 투자금액 2조원(동양종금증권 8000억원+프랑스 나티시스은행 1조2000억원), 기타 1000억원 이상(현대증권 출자)을 통해 확보할 계획이다. 현정은 회장이 그동안 밝혀온 현대건설에 대한 애착과 의지대로 현대건설을 끝까지 지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서지영 기자>
[날짜 : 10-11-22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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