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볼빙, 제대로 아시나요?"

   
 

 #A씨는 몇 달 전 카드사의 텔레마케팅으로 '리볼빙'을 권유받았다. 텔레마케팅 특성상 짧은 시간 동안 미사여구를 동원한 정보가 쏟아졌고, '리볼빙 서비스에 가입하면 결제 계좌의 잔액이 부족해도 신용등급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에 혹해 가입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러나 A씨는 최근 카드청구서에 찍힌 리볼빙 수수료를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결제 계좌에 잔액이 충분한 데도 근래 몇 달 신용카드 대금의 10%만 결제돼 나머지 90%에 대해 고액의 수수료가 청구된 것. 텔레마케팅을 통한 리볼빙 가입 당시 속사포처럼 쏟아진 정보에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힘들었던 A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수수료를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월요신문 안소윤 기자] 카드사 '리볼빙' 서비스 관련 소비자의 불만이 날이 갈수록 높아져 가고 있다.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고액 수수료로 고금리 장사를 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지적부터 카드사의 거듭된 가입 권유와 부실한 설명 등으로 피해를 보는 소비자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볼빙'이란 신용카드로 물품을 구입하거나 현금서비스를 이용한 후 다음 달 결제일에 사용금액 모두를 결제할 필요 없이 결제금액 중 최소비율 이상만 결제하면 잔여 카드이용대금의 결제가 연장되는 제도를 말한다.

잔여 카드이용대금은 당장 갚지 않더라도 다음 달로 자동 이월되며, 연체로 적용되지 않는 대신 높은 이자율 적용을 받는다.

매달 정해진 금액을 지불하는 할부판매와는 다르다. 예를 들어 결제비율을 5%로 정하면 100만원을 카드로 사용했어도 해당 월에는 5만원만 갚고, 잔액은 다음 달로 이관돼 그달 사용액과 합쳐져 다시 그 금액의 5%만 결제하면 되는 방식이다. 대상 소비자는 해당 금융기관과 약정을 맺은 개인회원에 한한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신용카드 회사들은 카드대금 상환기간을 늘려 불필요한 연체를 줄이고 장기적·안정적인 수익모델을 만들기 위해 리볼빙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울뿐인 리볼빙 최저금리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와 달리 리볼빙 서비스는 회원의 신용등급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카드 소비자는 당장 돈이 없더라도 리볼빙을 통해 연체 없이 신용거래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카드사가 이를 악용해 리볼빙으로 저신용자 대상 고금리 장사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체를 막아주는 대신 일반적인 카드 수수료보다 훨씬 높은 리볼빙 수수료를 부담하라는 식이다.

리볼빙으로 이월된 카드대금의 수수료율은 은행이나 보험사의 신용대출 금리 보다 높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16개 신용카드사(전업카드사 및 겸업은행)별 리볼빙 수수료는 지난 4월 기준 최저 연 14.10%-최고 연 29.90%에 달한다.

이중에서 '씨티카드'가 공시한 리볼빙 금리는 최소 14.10%에서 최고 29.90%다. 최저금리만 보면 카드사 중 가장 낮은 수치다.

그러나 씨티카드 리볼빙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의 적용금리대별 분포현황을 살펴보면, ▲24-26% 사용자가 47.07%, ▲26-28% 사용자가 25.88%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공시된 최저금리는 14.10%로 가장 낮지만 실제 이용자가 부담하는 금리는 20%대 이상으로 높다는 얘기다.

나머지 15개의 카드사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 이상의 고수수료율을 적용 받는 사용자가 대부분이다.

국외 리볼빙 수수료율의 경우 독일은 최저 연9%-최고 연24%(평균 15.0%), 일본은 최저 연10%-최고 연18%(평균 16.5%) 수준이다.

카드사들은 리볼빙 서비스를 통해 상당한 고수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09년 6090억 원대였던 카드사 리볼빙 수익은 2012년 말 1조 원을 돌파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전 카드사의 리볼빙 수수료 수입비율은 17.9%로 카드론(15.76%)보다 2.2%P 높은 수준이다.

수입비율은 실제 서비스를 받은 이용자의 평균금리로, 리볼빙 수수료 수입비율이 카드론보다 높다는 것은 리볼빙 이용자가 카드론 이용자보다 더 높은 이자를 내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한국소비자원이 최근 4년간(’11.1.~’14.12.)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리볼빙 관련 상담사례 불만유형별로 분석한 결과.<자료제공=한국소비자원>

되풀이 되는 소비자 피해

카드사들은 국내 신규 카드 고객 유치가 사실상 포화 상태에 이르자 리볼빙과 같은 대출성 상품에 기대는 추세다.

문제는 대부분의 카드사들이 소비자에게 '막무가내'식 리볼빙 서비스 영업에 나선다는 점이다.

한국소비자원은 지난해 접수된 리볼빙 관련 소비자 불만 사례가 121건으로 지난 2011년(73건)에 비해 약 66% 급증했다고 지난 18일 밝혔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 2011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4년간 1372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리볼빙 관련 상담사례 380건을 불만유형별로 분석한 결과, '신청하지 않은 리볼빙 가입'이 30.8%(117건)로 가장 많았고 '리볼빙 상품에 대한 설명 미흡'은 27.4%(104건)를 차지했다.

또 '결제 수수료 과다 청구' 16.6%(63건), '일방적인 결제 수수료율 변경' 2.1%(8건) 등 수수료 관련 불만도 상당했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는 카드사의 의지도 부족했다.

소비자원이 카드사 16곳(겸업은행 포함)의 홈페이지를 살펴본 결과, 리볼빙 결제 수수료율은 표시돼 있었지만 소비자가 실제 부담해야 하는 수수료 총액에 대한 정보를 기재한 곳은 없었다.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되는 대금청구서에 조차 결제되는 리볼빙 수수료 총액에 대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았다.

리볼빙 서비스를 권유하는 텔레마케팅에 있어서도 대부분의 카드사는 '신용 관리에 도움이 된다'거나 '카드 대금 일부를 천천히 갚아도 된다'며 혜택만 부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자들에게 통장 잔액이 충분해도 리볼빙 약정에 따라 카드대금이 이월되고 높은 수준의 수수료가 부과된다는 점을 명확히 알리지 않은 것.

소비자원 관계자는 “카드사가 리볼빙의 장점 위주로 설명하면 자세한 내용을 모른 채 덜컥 가입했다가 피해를 보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리볼빙에 가입돼 있다면 즉시 녹취록 등 입증자료의 확인, 가입 취소를 요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리볼빙은 대금 유예가 아닌 높은 수수료를 부담하고 지급을 연기하는 일종의 대출 서비스인 만큼 변제계획, 수수료 부담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가입해 달라"고 소비자들에게 당부했다.

리볼빙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3년 전에도 금융당국은 리볼빙으로 피해를 보는 소비자들이 확산되고 있다며 소비자 경보를 발령했다. 하지만 리볼빙으로 인한 피해사례는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되풀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금융당국이 카드사의 약탈적 대출을 통해 손쉽게 돈을 버는 '꼼수 영업'에 대해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및 동결에 따라 카드사들도 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과연 금융당국이 리볼빙 관련 어떤 개선책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리볼빙에 가입할 경우 평소 결제 예정 비율을 100%로 설정해 카드대금 전액을 매달 결제하고 결제대금이 모자랄 경우에만 결제비율을 변경해 불필요한 수수료 낭비를 막는 것이 현재 소비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리볼빙 사용법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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