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화장품, 세일 마케팅의 덫
1년 내내 세일 가격 불신 불허… 평소땐 손님 발길 끊겨

[월요신문 오아름 기자]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화장품 업계도 ‘저가 마케팅’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내 중저가 브랜드들은 초저가 제품을 출시하거나 신제품을 최대 70% 할인하는 등 가격 마케팅의 강도를 높이고 있으며, 수입 화장품도 이에 가세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제품원가를 밝혀야 한다며 가격 진정성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는 실정이다.

화장품 로드숍 시장의 투톱은 미샤와 더페이스샵이다. 3천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업계 1, 2위를 다투고 있다. 뒤를 이어 에뛰드하우스, 스킨푸드, 이니스프리, 토니모리 등이 1천억원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화장품 로드숍에 대한 핑크빛 전망은 지난 10여 년간은 통했다. 지난 2011년엔 블로그와 케이블 TV를 중심으로 가격대비 품질의 우수성이 앞다퉈 소개되면서 화장품 로드숍은 2조원대 시장으로 성장했다. 또 화장품 로드숍 브랜들은 공격적인 마케팅에다 효소, 화산송이 등 여성들의 피부고민을 해결해주는 신제품들을 쏟아냈다.

2009년 2000여개였던 화장품 로드숍은 4500여개에 이를 정도로 급속히 늘어났고,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

더페이스샵.

경기도 분당에 사는 직장인 안 모양(24)은 더페이스샵 세일기간에 맞춰 수분크림을 50% 할인 된 가격에 구매했다. 이 상품은 더페이스샵의 베스트 모델로 20~30대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제품이다.

안씨는 더페이스샵 매장을 지나가던 중 구매했었던 수분크림이 세일기간이 끝나마자 1+1으로 행사를 하고 있다는 포스터를 보고 “이럴 줄 알았으면 며칠 더 기다렸다가 구매할 걸 그랬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
서울시 강남구에 사는 취준생 이 모양(26)은 이니스프리 매장에 들러 폼클렌징을 구매했다. 이씨는 세일기간에 맞춰 사려했으나 이 제품은 워낙 인기있는 제품이라 세일을 안 할 것으로 판단했다.

또한, 이 제품은 몇 달전까지만 해도 세일기간에서 제외된 상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씨가 사고 난 뒤 하루가 지나자 이니스프리는 세일행사를 열었다. 세일제품에는 이씨가 구매했었던 폼클렌징이 1+1으로 할인판매하고 있었다. 이씨는 황당한 웃음을 지으며 허탈한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365일 중 300여일 세일…진정한 가격성 제로

화장품 로드숍 브랜드들의 마케팅 경쟁으로 인해 난무하는 세일은 업계 스스로 무덤을 파는 형국이다. 이들 브랜드는 365일 세일을 펼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 분석에 따르면 미샤, 더페이스샵, 이니스프리, 에뛰드하우스, 네이처리퍼블릭, 토니모리 등 대표 브랜드 5곳의 연간 할인 일수는 2010년 54일에서 2011년 107일, 지난해 240일로 급증했고 2013년 9월까지 252일에 달했다. 할인 폭도 10~20% 수준에서 최근에는 40~50%까지 대폭 상승했다.

더페이스샵은 지난 2005년 이후 업계 1위 자리를 고수해 왔지만 지난해 미샤가 백화점 수입화장품 브랜드들과 당당히 겨룬다는 노이즈마케팅을 하면서 선두를 뺏겼다. 이후 노세일을 지향하던 더페이스샵은 10년 만에 프로모션 행사를 진행해 다시 선두를 탈환하는 등 마케팅이 갈수록 과열되고 있는 분위기다.

1년 내내 이어지는 세일로 할인혜택은 늘어나면서 이를 반기는 소비자들도 많다. 미리 필요한 제품의 리스트를 작성해뒀다가 해당 브랜드 세일기간에 쇼핑을 하게 되면 돈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친 세일행사에 반감을 드러내는 소비자들도 많다. 소비자들은 세일 기간이 아닐 때 정가로 제품을 구입하면 손해 본다는 생각과 함께 50%의 큰 할인폭을 제공하고도 이익이 남는다면 애초 가격을 책정할 때 거품이 들어갔다는 것. 소비자들의 이런 심리가 반영돼 세일경쟁은 실적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저가 화장품에 대한 가격 불신감을 드러내고 있다”며 “가격경쟁력이 생명인 저가화장품 업계가 가격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없다면 소비자들의 마음은 떠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일이 잦은 이유는 본사의 횡포?

토니모리.

저가 브랜드 화장품의 세일은 왜 잦은 이유는 바로 자금확보와 제품 ‘밀어내기’를 위한 화장품 본사들의 꼼수라는 문제제기가 나왔다.

참여연대과 토니모리 가맹점주 협의회는 토니모리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가맹점주들에게 저지르고 있는 집요한 횡포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토니모리 가맹점주들은 본사의 불공정행위 중의 하나로 ‘잦은 세일압박’을 꼽았다.이들은 “본사가 매월 세일을 진행하며 물건을 넉넉히 구비해놓으라는 공지를 하고 영업담당자를 통해 체크를 한다”면서 “본사는 고객이 아닌 점주에게 물건을 팔기 때문에 물건을 팔지 못하면 점주들이 책임을 져야한다. 본사는 반품을 해줄 부담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본사는 자금이 필요하면 툭하면 세일을 하고, 가맹점에서 물건이 팔리든 안팔리든 상관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또 잦은 세일 때문에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이 바뀌어 오히려 마진율 보장이 어려워졌다고 호소했다.

“한달에 세일이 3~5일 진행되면 고객들이 평소에는 제품을 보고가고 세일 때 구매하는 식으로 소비구조를 바꿨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때문에 세일을 제외하면 다른 날 매출은 감소했다”고 밝혔다.

화장품을 사면 얹어주는 샘플 역시 가맹점주들이 본사로부터 따로 구매해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맹점주 협의회는 “특히 토니모리의 샘플은 고가의 방문판매 화장품 샘플보다 1.5~3배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본사에서는 가맹점주 상대로 샘플장사를 하는 셈이다.

이들은 “적절한 샘플가격에 대한 규제 및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이와 함께 토니모리 측이 매출이 좋은 지역의 가맹점들은 쫓아내고 직영점이나 새 가맹점을 설치하려한다는 문제지적도 나왔다.

저가 화장품업계, 빈익부 부익부 생겨

화장품 업계에 빈익부 부익빈 편차가 점차 심화되고 있다. 더페이스샵, 이니스프리, 에뛰드 등 대기업을 모기업으로 둔 브랜드숍은 가파른 신장곡선을 그리는 반면, 미샤를 비롯한 스킨푸드 등은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 점점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노세일’을 고집하며 콧대 높은 것으로 유명했던 스킨푸드가 ‘날개 없는 추락’ 면치 못하면서 관련 업계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스킨푸드 2013년 매출액은 전년 대비 5.2% 감소한 1738억원을 기록, 2014년 매출액 역시도 1519억원으로 하락했다.

‘맛있는 푸드로 만든 맛있는 화장품’이라는 컨셉으로 2010년까지만 해도 브랜드숍 매출 3위였지만 업계의 공격적인 세일경쟁에 하위권으로 밀려난 것. 스킨푸드는 ‘처음부터 정직한 가격으로 365일 노 세일 중’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고객 집중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갈수록 실적하락세는 이어지고 있다. 
노 세일(No Sale) 마케팅의 최대 장점은 물건을 언제 구입하더라도 가격이 변하지 않는다는 예측 가능성 때문에 고정 고객을 확보하기 용이하다는 데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노세일 마케팅이 고가 전략을 유지하기 위해 강조하는 것 아니냐는 차가운 시선을 내비쳤다.

   
스킨푸드.

관련업계 한 관계자는 “스킨푸드는 노세일 마케팅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노세일 마케팅이 발목을 잡고 있다”며 “한번 돌아선 고객 마음을 잡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또한 화장품 브랜드숍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는 올해 1분기 매출액이 876억7000만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9.23% 감소했다고 공시했다. 올 1분기 영업손실은 33억6천만원, 당기순손실은 17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영업손실(39억원)과 당기순손실(27억원)에 비해 각각 15%, 36% 개선된 것이다. 직전분기인 지난해 4분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33.47% 감소했고,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모두 적자로 전환했다.

에이블씨엔씨는 매출 감소와 관련 “지난해 하반기에 비용 대비 이익이 적은 미샤 점포 60여개를 정리했기 때문”이라며 “이는 전체 매장의 약 10%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에이블씨엔씨는 “3월 초 출시한 신제품들의 반응이 좋아 실적이 점차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아모레퍼시픽의 에뛰드 하우스도 같은 계열의 브랜드숍 이니스프리 보다 우위를 점했던 에뛰드하우스가 지난 2013년 3분기를 기점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곤두박질치고 있다.
 

에뛰드하우스.

에뛰드하우스는 지난해 3065억원으로 전년 3372억원 대비 매출이 9.1%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56억원으로 전년 261억원 대비 78.5% 급락했다.

회사 측은 에뛰드의 실적 하락 요인으로 제품 업그레이드 및 신제품 출시를 위한 마케팅 비용 증가를 꼽았다. 또 할인 축소 정책의 영향으로 국내 전 경로 매출이 부진했고, 해외 에이전트 거래 축소로 수출 감소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실적 부진이 이어지자 아모레퍼시픽은 CEO(최고경영자) 교체 카드를 꺼내들었다. 2008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았던 김동영 대표 대신 이니스프리 마케팅 디비전(Division)장, 마몽드 Division장, 라네즈 Division장을 두루 거친 당시 권금주 전무를 대표이사로 선임한 것이다.

하지만 권 대표 선임 이후 1분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실적 개선 움직임은 보이고 있지 않다. 업계는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히트상품 부재가 주효했던 것으로 해석했다.

올 1분기 매출은 71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 줄었다. 여기에 영업이익은 35억원으로 전년 대비 51% 급감하는 등 감소폭이 더욱 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니스프리의 경우 그린티, 화산송이, 제주한란 등 일부 제품이 판매 호조를 보이면서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면서 “호황을 누렸던 미샤와 에뛰드와 같이 히트상품 부재는 실적하락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에뛰드하우스의 경우 브랜드 스토리를 재정립하고 매장 디자인 혁신을 준비 중”이라면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대대적인 세일 마케팅으로 중국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대기업 브랜드숍은 고공행진 중이다.

LG생활건강에 따르면 이 회사가 운영하는 브랜드숍 더페이스샵의 올 1분기 매출은 157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9% 증가했다. 또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이니스프리는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5% 급증한 1426억원을 기록했다.

이니스프리 한 관계자는 “중국 관광객들을 중심으로 매출액이 크게 증가했다”라며 “특히 기초유형 제품에서 중국인 관광객 및 내국인 구매가 꾸준히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무엇보다도 착한 가격과 제품력으로 승부한 것이 잘 반영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화장품 업계의 빈익부 부익빈 현상에 대해 뷰티 전문가들은 “패션보다도 트랜드에 민감한 분야가 바로 코스메틱이다”라며 “앞으로 상·하 차이는 더욱더 심화 될 것이다”고 말했다.

요우커 입맛에 달린 저가 화장품 순위

중국인 관광객(요우커)들이 국내 화장품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토종 저가 화장품의 순위도 바뀌고 있다. ‘빅3’는 2013년 더페이스샵 미샤 이니스프리에서 지난해 더페이스샵 이니스프리 미샤로 바뀌었다.

   
미샤.

한때 업계 1위였던 미샤가 3위로 주저앉고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이니스프리가 2위를 차지했다. 이니스프리는 미세먼지 황사 등 대기 환경으로 인해 화장품을 고를 때도 청결함과 신선함을 중시하는 요우커들에게 ‘청정 지역인 제주 천연 원료로 만든 화장품’이란 점을 부각시켜 인기를 얻었다.

4위는 2년 연속 에뛰드였지만 5위는 네이처리퍼블릭으로 변경됐다. 2013년 5위였던 스킨푸드가 8

   
이니스프리.

위로 내려가고 6위였던 네이처리퍼블릭이 한 계단 올라섰다. 시어버터 성분이 함유된 핸드크림 18종 ‘핸드 앤 네이처 핸드크림’이 요우커들에게 선물용으로 대박이 나면서 네이처리퍼블릭의 매출도 2013년보다 48.6% 증가한 2552억원으로 뛰었다.

스킨푸드는 요우커들을 사로잡은 히트작을 내놓지 못하면서 순위가 내려갔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2.9% 줄어든 1514억원이었고, 51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6위인 잇츠스킨은 지난 한 해 이 부문에서 가장 가파르게 성장했다. 2013년 530억원이었던 매출이 354.9% 급증해 지난해 2411억원을 기록했다. ‘달팽이 크림’으로 불리는 ‘프레스티지 끄렘 데스까르고(60mL·6만원)’가 요우커들에게 ‘한국 방문시 사야 할 화장품’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2013년 70만개이던 판매량이 지난해 360만개로 5배 넘게 급증했다.

7위인 토니모리도 바나나 복숭아 입술 토끼 등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용기 디자인으로 매출이 두 자릿수로 증가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토종 저가 화장품의 10위권 매출 순위는 더페이스샵(LG생활건강), 이니스프리(아모레퍼시픽그룹), 미샤(에이블씨엔씨), 에뛰드(아모레퍼시픽그룹), 네이처리퍼블릭(네이처리퍼블릭), 잇츠스킨(한불화장품), 토니모리(태성산업), 스킨푸드(스킨푸드), 바닐라코(에프앤에프), 더샘(한국화장품) 순이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