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퇴사자 챙겨주고 민간에는 단가 후려치기

[월요신문 김영 기자] 공기업 일감몰아주기는 대기업과 차원이 다르다. 민간기업 일감몰아주기가 대중소 상생의 문제라면 공기업 일감몰아주기의 경우 공공의 이익 추구를 기업 활동의 최우선 가치로 둬야할 공기업에 있어 그 존재이유를 망각한 행동으로 볼수 있기 때문이다.

매년 국정감사때마다 공공기관 일감몰아주기 지적이 제기됐다는 점에서 개선여지 조차 찾아보기 힘든 지경이다. 공기업의 대표적 병폐로 꼽히는 방만경영 또한 일감몰아주기가 근절되지 않고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답 없는 회의?' 윤상직 산자부 장관(가장 왼쪽)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공공기관 생산성 향상 및 정상화 추진회의. <사진제공= 뉴시스>

국내 기업들의 ‘일감몰아주기’ 만행은 공기업이라고 해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되레 공기업 일감몰아주기는 계열사 및 자회사 그리고 퇴직자 근무 회사를 통해 더욱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올해 초까지 실시된 공정거래위원회의 공기업 일감몰아주기 조사에서는 암암리에 진행되던 국내 대형 공기업들의 일감몰아주기가 어떤 식으로 얼마나 이뤄지고 있는지 일부 공개 되기도 했다.

상당수 공기업들이 자회사 및 계열사 그리고 퇴사직원 근무 회사의 부당이득을 챙겨주기 위해 수익계약 체결 남발 및 압력행사 형태의 갑(甲)질을 서슴치 않았던 것으로 확인된 것.

공공의 이익 창출에 기업활동의 최우선 가치를 둬야 할 공기업이 되레 자신들 배만 불리는데 사활을 걸고 있는 모습으로, ‘공기업 일감몰아주기가 근절되지 않고서는 국민 혈세를 축내는 공공기관 방만경영 역시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는 지적이 상당하다.

짜고 치는 일감몰아주기, 도덕성 조차 없어

올 초 발표된 공정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전력에서는 직접 구매할 수도 있는 전화기와 전산장비를 자회사인 한전 KDN을 통해 구입했다. 한전KDN은 이 같은 거래 방식을 통해 매매가의 10%에 달하는 차액을 챙겼다. 연간 87억원의 수수료를 이른바 ‘통행세’ 명목으로 벌어들인 것이다.

다단계와 똑같다. 이에 대해 한전에서는 “한전KDN은 한전이 지분 100%를 보유한 보안‧통신분야 자회사로 이 같은 거래 자체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식의 해명을 늘어놓기도 했다.

또한 한전은 5개 발전자회사를 상대로 한전KDN는 물론 한전산업개발에 대한 부당지원을 요청했다가 106억 700만원에 달하는 과징금 및 과태료 4억 5500만원을 부과받았다.

수천억원대 용역사업을 이들 계열사에 몰아주도록 발전자회사에 압력을 가했던 것. 한전산업개발은 10여년 전 한전에서 분리된 자회사로 임원 중 절반가량이 한전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가하면 한국도로공사 역시 고속도로 순찰업무를 공사 퇴직자가 세운 회사에 수의계약으로 몰아준 것으로 확인돼 19억원의 과징금 폭탄을 맞았다.

철도공사 또한 주차장 사업을 하는 코레일 네트웍스에 부지사용료를 60억원이나 깍아주며 부당지원한 것으로 공정위 조사결과 확인됐다.

가스공사 역시 가스관 공사 과정 중 계열사의 귀책사유가 발생했음에도 여타의 책임을 묻지 않고 공사가 손해를 뒤집어 쓰는 대인배(?)의 행보를 보여줬다.

이뿐 만이 아니다. 토지주택공사와 수자원공사, 지역난방공사는 물론 일부 지방 공기업들 역시 공정위 조사를 통해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계열사 부당지원 사례가 적발돼 과징금이 부과됐다.

반면 일부 공기업의 경우 민간업체를 상대로 단가 후려치기를 자행 중인 것으로도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지난해 국감 당시 김경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코레일 관련 “열차청소 용역 단가를 대폭 줄여 청소노동자들이 최저임금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공기업정상화 압박이 심해지자 청소 하청업체에 대한 단가 후려치기에 나섰다는 것으로 부채감축 지시 이후 코레일에서는 청소단가를 종전 계약대비 26% 이상 줄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코레일이 자체 산정한 청소 용역 적정단가 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전해졌었다.

더욱이 코레일에서는 청소단가 인하로 인해 발생한 연간 5억원 상당의 예산절감에 대해 부채감축 노력에 따른 경영활동 개선이라 포장해 외부에 알리기도 했다.

자회사와 계열사 그리고 퇴사자 근무회사에 대해서는 일감몰아주기 등의 특혜 제공에 혈안이 됐던 공기업들이 민간업체를 상태로는 여느 대기업 못지 않은 갑질을 일삼아 왔던 것이다.

이와 관련 코레일에서는 “문제가 됐던 청소단가 재설계이 끝났다”며 “용역업체에 내려가는 일감양이 줄며 발생한 문제로 현재는 이를 시정한 상태”라고 밝혔다.

   
자회사들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행태가 공정위에 적발돼 백억원대 과징금을 부과받은 한국전력. <사진제공= 뉴시스>

민간분야 철수가 민영화?

우리 기업들의 일감몰아주기 관행이 사회적 문제로 본격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다. 대형유통업체들의 골목상권 침해가 이어지며 중소 상인들의 생계가 위협받기 시작하자 업계 내 횡행하던 일감몰아주기 관행에 대해서도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 것.

공기업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이때를 기점으로 불거져 나왔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이 문제와 관심을 보이며 공공기관 주요 개선사항으로 국감때마다 언급 중이다.

그러나 정치권의 지적에도 불구 공기업들의 일감몰아주기 자정 움직임은 보여주기식에 그치고 있다.

지난 2013년 국정감사 당시 이채익 새누리당 의원은 “가스공사와 한전에서 각자 자회사인 한국가스기술공사 및 한전KDN에 대해 매년 수천억원대 수의계약을 체결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나온 공정위 조사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지적사항이 이미 2년전 제기됐음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던 것이다.

공기업 일감몰아주기가 개선되지 않다보니 여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은 공공기관의 민간영역 철수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으나 이는 더 큰 혼란만 초래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정부‧여당에서는 한국관광공사의 면세점 사업 등이 민간영역 침해이자 자회사 일감몰아주기로 이어질 수 있다며 공기업들의 민간 경쟁시장 철수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당내 논의를 주도한 새누리당 경제혁신특별위원회 공기업개혁분과 위원회 이한구 위원장은 당시 가진 모 매체와 인터뷰에서 “공기업들 때문에 민간기업들이 많이 위축되는 부분이 있다”며 “공정한 경쟁 체계를 만들기 위해 시정하는 내용들이 검토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기획재정부에서도 공공기관의 민간영역에 대한 과도한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공기업 등이 자회사 또는 출자회사를 새로 설립할 때 ‘시장화 테스트’를 거치도록 하는 등의 방안을 추진하기도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 정부에서 추진 중인 공기업의 민간분야 철수 움직임은 일감몰아주기 보다 더 큰 논란거리를 만들어냈다는 평이다. 이 같은 시도가 공기업의 민영화 움직임으로 해석되고 있는 탓으로 코레일의 사업부분 축소가 그 대표적인 예로 거론되고 있다.

공익을 우선시 해야 할 공기업임에도 사익에 눈이 팔려 일감몰아주기 등에 치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감시‧감독해야 할 정치권이 더 큰 혼란만 야기시키고 있는 모양새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