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문’대책 효과 없고, 양치기소년 형국에 그쳐

   
▲ 삼성그룹 본사. 사진=뉴시스

일감몰아주기 정부정책이 또다시 회전문 대책이란 비난이 일면서 논란이다.

잊을 만 하면 나오는 대기업들의 일감몰아주기 논란은 이제 정부가 기업을 압박해야 할 상황이면 어김없이 회전문처럼 단골메뉴로 등장, 양치기소년으로 전락했다. 일부에서는 이 정책을 펴는 정부의 의지를 신뢰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반면 이를 바라 보는 기업들 입장에서 역시 ‘넌 떠들어라, 난 나의 길을 가련다’로 인식, 전혀 위협적이지도 못하고, 겁을 먹지도 않는 형국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초 국내 대기업들의 일감몰아주기가 도를 넘어섰다며, 다시 고삐를 잡아 대대적인 조사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면 과연 이번에는 정부의 일감몰아주기 근절대책이 제대로 먹혀들 수 있을까?

<월요신문>은 산업 전반에 걸쳐 전 방위로 행해지고 있는 각종 일감몰아주기 현황을 산업별로 재 점검하고, 양치기소년으로 전락해 연례행사처럼 행해지고 있는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먹히지 않고 있는 원인과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을 알아봤다.

대다수 일감몰아주기 규제 기업 다 빠져나가

노무현 정부시절인 지난 2006년 권오승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은 그 해 말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어려운 경제를 푸는 열쇠는 삼성과 현대차 같은 대기업이 쥐고 있다. 그런데 경제가 어려운 이유는 사실 이들 대기업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중소기업들이 어렵기 때문”라고.

결국 이 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을 해야 경제회생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실은 상생은커녕 정작 규제대상이 되어야 할 대기업들의 경우 벌써 모두 규제를 빠져나가는 구조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를 지나 박근혜 정부까지 불평등한 산업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상생을 이야기하고,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떠올리곤 했지만 대기업들은 교묘하게 일감몰아주기에 나서 여전히 중소기업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일감몰아주기와 관련해 새 정부들은 출범과 동시에 이에 대한 각종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선언한다. 문제는 여전히 행정수반에 최고 책임자가 새 정부 출범 후 대기업에 대한 공정거래를 호소하기도 고, 규제를 통해 위협도 하지만 '용두사미'에 그치는 것이다.

올 초 박근혜 정부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위해,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한 주요 대 그룹 ‘일감몰아주기’ 규제에 나섰지만, 정작 규제를 받아야 할 대기업들은 이미 각종 방법을 동원해 다 빠져나가고, 일부 대책마련이 늦었던 기업 몇몇만이 남아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난 2013년 정부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 개정안 입법예고(2013년 10월)로 일감몰아주기 대상 기업을 발표했지만, 정작 규제에 나설 시점이 되자 대어인 삼성, 현대자동차, SK 등 주요 대기업들은 지배구조를 개편, 모두 일감몰아주기 규제에서 벗어났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정부 '헛발질' 규제에 의문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벗어난 대기업들의 세부 내역을 보면 더욱 정부의 이번 규제가 얼마나 1차원적인지 알 수 있다. 일부에선 진정한 시장의 선 순환 효과로 작용할지도 의문을 제기한다.

주요 일감몰아주기 대기업들은 정부의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이 지난해부터 계열사 간 통합이나 지분 매각 등의 방법으로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착수, 정부의 강력한 창 공격에 적극 대비했다.

우선 대표적인 일감몰아주기 기업인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말 현대글로비스의 오너 일가 지분을 매각, 현대엠코가 현대엔지니어링에, 현대위스코가 현대위아에 각각 합병, 내부 거래 규모가 줄여 일감몰아주기에서 탈피했다.

   
▲ 현대글로비스의 물류서비스 현장.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초기 출자금 50 억원짜리 법인이 이젠 11조원에 달하는 현대기아차 그룹의 물류자회사가 됐다. 하지만 현대글로비스는 올해 초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자의 일부 지분 매각으로 정부의 일감몰아주기 표적을 피했다.

여기다 글로비스 지분 매각으로 정 회장 부자의 경우 약 1조1500억원을 현금화했으며, 초기 자본금 50억원은 겨우 13%의 지분을 매각했을 뿐임에도, 230배에 차익을 낳아 이를 고스란히 정몽구 회장 부자만이 독차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꿩 먹고 알 먹은 셈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이번 지분 매각은 지난해 2월14일부터 시행된 개정 공정거래법의‘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한 조치”라고 당당히 밝혔다.

문제는 일감몰아주기도 회피하고, 주식 매각 이면에 현대 글로비스의 모든 영업행위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대주주인 정 회장 부자에게만 귀속된다는 점이다.

삼성그룹 역시 예전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의 식자재 기업 웰스토리를 분사하고, 건물관리업을 에스원에 양도하는 가 하면 남은 계열사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함으로써 내부매출 비중이 큰 폭으로 감소, 일감몰아주기 규제에 빠져나갔다.

이와 함께 삼성그룹은 지난해 삼성SDS 상장과 사업재편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이부진 사장, 이서현 사장 등을 포함해 그룹 계열사 간 인수 합병을 거치면서 거액의 차익을 얻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했다.

이밖에 SK그룹은 ㈜SK와 SK C&C를 합병, 대주주 지분을 30.4%까지 줄였고, GS그룹은 내부거래 비중 100%로 매출을 올리던 에스티에스(STS)로지스틱스(총수 일가 지분 16.4%)를 2013년 10월 적자기업인 승산과 합병하는 등으로 규제를 피했다.

결국 일련의 방법으로 규제를 모두 피한 대기업들은 정부와 대기업간 대결에서 정부의 완승을 거둔 셈이다.

일감몰아주기 하면 ‘망한다’ 인식시켜야

정부의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위한 강공 드라이브는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경실련 경제정책팀 권오인 팀장은 “법제도가 느슨한데 문제가 있다”며 “새정부 출범 시에는 의지가 충천했다가 시간이 지나면 초기의 실천의지가 희석되는 것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권 팀장은 “정부가 강공책을 펴면 기업들은 입법에 나서는 국회의원과 대기업 친 언론을 통해 정부 규제를 약화시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 왔다”며 “느슨한 법 제정과 고삐가 풀리는 시행 의지가 회전문 정책의 대표주자처럼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개혁연구소 위평량 박사도 “법을 만드는 관료들, 즉 여당 의원들이 정작 일감몰아주기 규제법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미국 공정거래법처럼 법 위반 시 기업의 존폐가 좌우할 수 있는 서슬 퍼런 강력한 행정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감몰아주기는 경제민주화와 갈수록 악화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격차를 해소함과 동시에 국가 경제를 상생할 수 있도록 하게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법 제정에 보다 강력한 보완작업이 필요하며, 단기적으로는 악영향을 미치더라도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이득을 위한 철저한 정책의지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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