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의 재구성… 충무로 좌청룡·우백호가 만났다

[월요신문 민희선 기자] 1978년 대한민국이 떠들썩했던 사건, 사주로 유괴된 아이를 찾은 형사와 도사의 33일간의 이야기.

1978년 부산에서 일어난 실제 이야기 한 아이가 유괴된 후, 수사가 시작되고 아이 부모의 특별 요청으로 담당이 된 공길용 형사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극비 수사를 진행하기로 한다.

한편, 가족들은 유명한 점술집을 돌아다니며 아이의 생사여부를 확인하지만 이미 아이가 죽었다는 절망적인 답만 듣게 되고, 마지막으로 도사 김중산을 찾아간다.

“분명히 살아 있습니다.”

아이의 사주를 풀어보던 김도사는 아직 아이가 살아있고, 보름 째 되는 날 범인으로부터 첫 연락이 온다고 확신한다. 보름째 되는 날, 김도사의 말대로 연락이 오고, 범인이 보낸 단서로 아이가 살아있음을 확신한 공형사는 김도사의 말을 믿게 된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수사는 진전되지 않고, 모두가 아이의 생사 보다 범인 찾기에 혈안이 된 상황 속에 공형사와 김도사 두 사람만이 아이를 살리기 위한 수사를 계속 진행하는데….

실화라서 더 끌린다

   
극비수사 포스터.

‘극비수사’(감독 곽경택)는 1978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유괴 사건과 유괴된 아이를 찾기 위해 나선 형사와 도사의 33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부산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유명한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한 영화다.

1978년 대한민국 부산, 그곳에서 한 갑부의 딸 유괴사건이 벌어졌다. 당시에는 유괴사건이 자주 발생하며 대통령까지 담화문을 발표할 정도. 그러나 경찰은 아이를 찾으려는 노력 대신 범인을 잡기 위해 갑부의 뒤를 판다. 가만히 앉아 경찰의 수사를 지켜보기 힘들었던 유괴된 아이의 어머니와 고모의 선택이었다. 둘은 아이를 찾기 위해 용하다는 점집은 전부 돌아다니며 아이의 생사를 물었고, 결국 김중산 도사에게 아이를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듣는다.

자신의 뒤를 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갑부는 분노하고, 아내의 말을 듣고 김중산 도사(유해진 분)와 그가 추천한 공길용 형사(김윤석 분)를 유괴사건에 투입시킨다. 공길용 형사는 사건 투입을 주저하지만 유괴된 아이가 자신의 아들과 같은 반 아이라는 점.

그리고 유괴된 아이와 부모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게 돼 본격적으로 유괴사건을 파헤친다. 유괴 수사 과정은 상당히 흥미롭게 진행된다. 특히 자신들의 실적을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부산 경찰들과, 피해 입지 않기 위해 소극적으로 수사하는 서울 경찰들의 합동수사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각종 부조리와 차가운 인간의 내면은 관객들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유괴범을 잡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눈치 싸움과 액션들도 재밌는 볼거리. 그럼에도 ‘극비수사’는 강렬한 액션과 치밀한 수사가 이뤄지는 장르물이 아닌, 수사물을 표방한 사람의 예의와 소신을 전하는 영화다. 물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극비수사’에서는 극적인 연출이나 자극적인 요소들이 느껴지지 않고 오로지 공길용 형사와 김중산 도사의 ‘아이를 찾기 위한’ 진심만이 느껴진다. 흔히 수사물에서 보이는 피를 흘리는 장면이나 격투신 대신 인간과 인간의 생각이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내적 갈등과 고통들이 영화 곳곳에 배치되며 극의 흐름을 끌어나간다.

연기파 김윤석과 유해진이 만났다

어떤 양념도 없이 담백하게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감독의 스토리와 김윤석, 유해진의 연기로 ‘진짜 한국 영화’가 오랜만에 돌아왔다는 느낌을 준다.

증거로 승부 보는 형사와 감으로 승부 보는 도사의 만남도 새롭고, 이들을 연기하는 김윤석 유해진의 환상 콤비도 상당히 흥미롭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담백함이 ‘극비수사’의 장점이지만 관객들의 시선을 압도할 ‘한 방’이 없다는 점, 영화 마무리를 많은 영화에서 답습한 방식을 채택했다는 점이다.

또한 영화 초반에서 급하게 전환되는 장면들도 집중을 방해해 ‘극비수사’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그렇지만 ‘극비수사’의 진심은 명확하게 관객들의 가슴에 꽃힌다.

곽경택 감독도 “유괴된 아이를 살리기 위해 30년 전 열심히 뛰었던 사람, 자신의 공을 뒤로 하고 열심히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듯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느껴지는 울림이 상당하다.

이처럼 ‘극비수사’ 6월 기대작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김윤석과 유해진의 호연이다. 장담하건대 곽경택 감독 생애 역대급 캐스팅이다.

남들이 공적 쌓기에 혈안이 되어 범인 검거에만 몰두할 때, 아이의 생사를 위해 비밀리에 수사를 감행한 정의로운 형사 공길용을 연기한 김윤석. 그리고 유괴된 아이의 생사를 두고 여타 점술가와 전혀 다른 사주 풀이를 내놓는 것은 물론, 반드시 공길용 형사가 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도사 김중산을 연기한 유해진.

두 사람은 ‘타짜’(2006, 최동훈 감독) ‘전우치’(2009, 최동훈 감독) ‘타짜-신의 손’(2014, 강형철 감독)에 이어 ‘극비수사’까지 네 번째 쿵짝을 맞추는 찹쌀떡 콤비다. 그동안 강자 김윤석에 약자 유해진이 당하는 약육강식 관계로 그려졌던 두 사람이지만 이번엔 조금 다르다. 김윤석 앞에서 맥을 추지 못했던 유해진이 목소리를 높여 메시지를 전한다. 소신에 있어서는 유해진이 김윤석을 능가하는 것.

두 사람이 ‘극비수사’에서 선보이는 스펙타클한 전개도 쏠쏠하다. 초반에는 불꽃 튀는 신경전으로 긴장감을 몰고 후반에는 가슴 저릿한 감동을 선사한다. 물과 기름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형사와 도사가 소신이란 신념으로 한데 모이는 과정이 저릿한 뭉클함을 안겨준다.

김윤석과 유해진 외에도 유괴된 아이의 아버지 송영창, 아이의 고모를 연기한 장영남, 그리고 운전기사 윤지하 등 조연들의 서브플레이도 쏠쏠한 볼거리를 안긴다. 특히 유괴된 아이의 어머니를 연기한 이정은은 온몸으로 아이를 잃은 절망감을 표현해 감탄을 자아낸다. 앙상하게 마른 몸과 초점 없는 눈빛으로 관객이 몰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명품배우를 더욱 돋보이게 한 시나리오도 제대로 한몫을 했다. 1978년 부산에서 실제 일어난 이야기를 영화화한 ‘극비수사’는 영화 자체의 큰 힘을 발휘하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결과가 뻔히 드러나는 치명타는 있지만 이런 치명타를 극복할 든든한 미덕이 있으니 일찌감치 실망할 필요는 없다. 단순한 ‘범인 찾기’가 목적이 아니다.

전매특허였던 우정과 조폭 스토리를 드디어 벗어 던진 곽경택 감독. 친구 시리즈로 연출 황금기를 맛본 그가 이번엔 사람 냄새 가득한 인간미로 다시한번 흥행 신드롬을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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