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진에서 출마선언, ‘반(反)부패’ 8대 공약 발표

   
FIFA 회장 선거에 도전장을 내민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사진제공=뉴시스>

[월요신문 이지현 기자]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국제축구연맹(FIFA) 차기 회장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적진이라 볼수 있는 프랑스 파리에서 출마 선언식을 가진 정 명예회장의 출마 선언식에는 전 세계 축구계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이 자리서 그는 8개 개혁안에 대해 설명하며 자신의 임기 동안 FIFA의 부패사슬을 끊어 놓겠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한국시간으로 지난 17일 오후 5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프랑스 파리의 샹그릴라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 2월로 예정된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직 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정 명예회장은 강력한 경쟁자인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UEFA)회장의 모국이자 1904년 5월 FIFA가 설립된 프랑스에서 출마 선언문을 낭독하며 FIFA 수장직 도전을 위한 본격적인 출발을 알렸다.

정 회장은 “FIFA는 축구에 관한 기구이지만 그저 축구 경기를 관리하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축구계의 거버넌스(governance) 통합관리를 담당하는 곳”이라며 “현재 FIFA는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을 헤쳐 나가려면 차기회장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면서도 조직을 개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111년 동안 8명의 회장이 배출됐는데 사실상 모두 유럽 출신이다”면서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FIFA는 달라진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계속성(continuity)’도 중요하지만 ‘변화(change)’도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정 명예회장은 각각 44억 명과 12억 명이 거주 중인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비유럽 대륙들을 열거하면서 자신이 이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낼 적임자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정 명예회장은 “만약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주요도시들이 유럽 축구 구단들과 견줄 수 있는 구단을 보유하게 된다면 세계축구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상상해 봐라”면서 “이것이 축구의 미래다. 이제 FIFA가 이런 미래 비전을 실현해야 때다.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때다. FIFA를 다시 상식이 통하는 곳으로 만들 때”라고 전했다.

그는 “만약 유럽이 건전하고 분별력 있는 리더십을 발휘해 왔다면 오늘날 FIFA가 이런 혼란에 빠져 있었을까”라며 참석자들에게 질문을 던진 뒤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다. FIFA를 개혁할 수 있는 진정한 후보자를 지지해 주시기를 부탁드리려 드리는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FIFA 내부에 깊게 뿌리 내린 비리 척결 의지를 내비친 정 명예회장은 20년 전 연설을 떠올렸다. 당시 그는 FIFA 미디어위원회가 마케팅과 TV 중계권 계약 결정에 관여하고 집행위원회가 이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갖는 시스템의 도입을 주장했다.

정 명예회장은 “오늘 보더라도 이보다 더 강력한 경고의 말을 할 수 있을까”라면서 “처음 FIFA에 와서 이상하게느낀 점은 월드컵 시청자들이 올림픽보다 3배 이상 많은데 중계권료 수익이 적다는 것이었다. 왜 아무도 이런 괴리를 주목하지 않았을까. FIFA의 수많은 부패문제는 이런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8대 공약 밝혀

정 명예회장은 FIFA의 성공적인 변신을 위한 8가지의 공약을 내걸었다.

▲회장과 집행위원회, 사법기구 간의 ‘견제와 균형’ 강화 ▲총회를 열린 토론의 장으로 변경 ▲회장직 임기 제한 ▲재정의 투명성 제고 ▲회장의 급여, 보너스, 제반 비용 공개 ▲각국 협회에 제공하는 재정지원프로그램(FAP)의 합리적이고 유연한 분배 및 증대 ▲FIFA내 여성 대표성 제고 ▲여자월드컵 상금의 상향조정 등이다.

대부분이 쇄신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이는 블래터 체제에서 빚어진 비리를 척결해 FIFA의 개혁을 이끌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부회장으로 오랜 기간 FIFA에 몸담고 있었지만 현재 비리 사태와는 무관하다는 점을 재차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총회를 열린 토론의 장으로 바꾸겠다는 것과 재정의 투명성 제고는 오랜 악습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숨기기에 급급했던 폐쇄적인 조직 문화들이 비리들을 더욱 확대시킨 만큼 공정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본인의 임기를 4년으로 제한하는 것은 정 명예회장의 개혁 의지에 방점을 찍었다. 그동안 FIFA는 한 사람이 오랜 기간 수장을 지속한 덕분에 빠른 발전을 가져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역설적으로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 것 또한 사실이다.

정 명예회장은 “FIFA가 이토록 부패한 조직이 된 진짜 이유는 40년 동안 한 사람이 자기 측근들을 데리고 장기 집권을 했기 때문”이라면서 “절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조직이 부패하지 않으려면 지도자가 주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비리의 몸통으로 지적받고 있는 제프 블래터(79·스위스) 현 회장은 1998년 6월부터 17년째 수장직을 수행 중이다. 블래터 회장은 주앙 아벨란제 전 회장 시대(1974년 5월~1998년 6월)에서는 사실상의 2인자인 사무총장으로 활동했다.

정 명예회장은 “조직의 지도자가 스스로를 조직에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 조직은 부패하기 시작한다”면서 “내가 FIFA 회장이 된다면 4년 임기 한 번만 회장직을 맡을 것이다. FIFA를 4년 안에 바꿀 수 있다”고 약속했다.

상대 진영 발끈

정몽준 명예회장의 강력하고 도발적인 출마선언 직후 부패 몸통으로 지적받은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은 정 명예회장에 대해 드러내 놓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18일(한국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 외신들에 따르면 블래터 회장은 “정몽준 명예회장이 FIFA를 부패한 집단으로 묘사한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정 명예회장 역시 FIFA 사태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강조했다. 블래터 회장은 “정 명예회장이 잊지는 않았겠지만 그도 FIFA 부회장이었다. 1994년부터 2011년까지 부회장과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던 사람”이라고 대응했다.

블래터 회장은 또 “정 명예회장의 발언이 모든 사람에게 실례라는 말 외에는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면서 “나는 FIFA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계속 발전하고 조직이 최고가 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을 마쳤다.

한편 FIFA에서는 최근 정몽준 명예회장의 과거 기부금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세간에서는 정 명예회장에 대한 잘못 들추기보다는 그의 약점을 찾기 위한 조사일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측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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