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억원 통일펀드에 기부…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이준용 1938년 7월 9일, 서울

학력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학사
덴버대학교대학원 통계학 석사

경력

1966년: 대림산업 입사
1979년: 대림산업 대표이사 사장
1981년: 새마을운동중앙본부 서울시지부 지부장
1988년: 대림그룹 부회장
1993년: 대림그룹 회장
1994년: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 부회장
1998년: 대림산업 대표이사 회장
1999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1999년: 전국경제인연합회SOC위원회 위원장
2001년: 대림산업 명예회장

수상

1984년: 금탑산업훈장
1984년: 해외건설수출50억불탑 수상

[월요신문 오아름 기자]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이 사재 2000억원을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재계 총수가 본인의 사재를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공언한 일은 사실상 처음이다.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이 재계는 물론 우리 사회 전체를 놀라게 한 통큰 기부를 실천했다. 국내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개인 재산 전액 사회기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 더욱이 이 회장은 외부 재단에 이를 기부하기로 해 더 큰 감동을 주고 있다.

2000억원 기부 결정

지난 17일 이준용 명예회장은 조선일보 기자 출신이자 출판사 기파랑 대표이사 안병훈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에 전 재산 기부를 약속했다. 이 명예회장의 재산은 대림그룹의 실질적 지주사인 대림코퍼레이션 지분 포함 최소 20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전해졌다.

이 명예회장은 “일반 국민들이 십시일반으로 통일나눔펀드에 작은 정성을 보태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며 기부의사를 전했다

이어 그는 아내인 고(考) 한경진 여사가 지난해 12월 작고한 후 개인 재산 기부를 결심했다며 “집사람이 나를 추월해 먼저 갈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며 “얼마 안 되지만 내가 원하는 곳에 주고 싶었다”고 했다.

특히 그는 이번 기부가 대림산업 임직원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이 명예회장은 “이번 기부를 통해서 대림 가족들이 어디 가서든 칭찬받고 보람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명예회장이 기부를 약속한 ‘통일과 나눔’ 재단은 지난 5월 설립된 정부의 공식 기부금품 모집단체로, 남북 교류 협력·대북 인도적 지원·남북 주민간 공동체 의식 함양 등을 위한 기금 조성을 통해 체계적인 통일 준비와 원활한 통일기반 조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한편 이준용 회장의 통큰 기부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 1995년 대구지하철 가스폭발 사고 당시 이 명예회장은 피해 복구비와 유가족 성금으로 20억원을 기탁했다.

1998년 외환위기 때에는 그는 당시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GS칼텍스 주식과 상속받은 부동산 등 350억원어치 재산을 대림산업에 아무 조건 없이 출연해 경영난에 빠진 회사를 살리기도 했다.

정도 지켜온 원칙 주의자

이준용 명예회장은 재벌 2세 경영인이다. 아버지이자 대림산업 창업주인 고 이재준 회장은 지난 1939년 경기도 부평에서 목재와 건자재상을 하는 부림상회를 설립, 이후 원목을 개발하며 사세를 키웠다. 1947년에는 건설업에 진출해 이후 회사명을 대림산업으로 변경했고 1949년부터 본격적으로 건설업 중심 회사로 육성시켰다.

청계고가도로, 경부고속도로, 소양강댐 등 대규모 사회간접자본시설은 물론 국회의사당, 잠실주경기장 등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물 공사에 대림이 참여했고 이에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림산업은 현대건설과 함께 국내 건설업계를 대표하는 곳으로 회사로 평가 받았다.

이준용 명예회장이 회사경영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1966년이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덴버대에서 통계학을 전공한 이 명예회장은 그해 아버지의 권유로 대림산업 계장에 입사했다.

이후 이 명예회장은 국내 최초로 베트남과 중동 진출에 성공하며 중동 건설 붐을 주도했다. 대림산업 대표 시절엔 88서울올림픽 메인스타디움이었던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을 완성하기도 했다.

사장에 취임해서는 건설업에 유화부문을 더해 지금의 대림산업을 만들었다. 건설과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사업 안정성을 마련한 것이다. 이에 업계 내에서는 이준용 명예회장이 재벌 2세임에도 불구 회사의 오늘날을 이끈 이로 그를 꼽고도 있다.

이 명예회장 주도 속에 대림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원인과 관련해서는 그만의 원칙론이 있었기 때문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내외 숱한 경제위기 속에서도 이 명예회장 특유의 경영방침인 ‘기본과 원칙을 토대로 한 내실 경영’이 효과를 본 것이란 설명이다.

또한 이준용 회장은 여타 대기업들과 달리 회사의 지배구조를 단순명료화하고 투명하게 만들었다. 이어 그는 문어발식 사업구조로 회사를 확장하지 않고 건설과 유화만을 공략하며 내실이 단단한 회사로 성장시켰다.

한편 이 명예회장은 3남 2녀를 두고 있으며 장남인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과 3남 이해창 대림산업 부사장이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차남 이해승씨는 미국에서 개인 사업을 하고 있으며 두 딸과 사위들은 회사와는 거리를 두고 지내고 있다.

   
 

아버지 닮은 아들

이준용 회장의 경영스타일 및 기부에 대해 재계 일각에서는 아버지를 그대로 빼닮은 모습이란 평가도 나온다.

실제 이재준 창업주는 총수를 중심으로 가족경영이 일반화된 국내 기업문화 속에서도 자식들의 경영 관여를 최소화한 모습을 보여줬다. 소유와 경영 분리를 강조해 왔던 경영 철학과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하며 소탈한 삶을 추구했던 모습 역시 이 창업주가 생전 보여준 모습이다.

이와관련 이재준 창업주는 살아생전 “기업주만이 꼭 책임을 질 수 있는 업무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자본과 경영이 분리돼야 한다”고 말한바 있기도 하다.

이어 “나는 현업에 있을 때 물자구매라든지 하청관계와 같은 부분에 대해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 그것은 직원들이 소신껏 일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눈치를 보고 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경영자 된 입장에서 봤을 때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도경영을 주장했다.

이준용 명예회장 역시 아버지처럼 “대림은 대주주라고 무조건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 본인의 의지와 그에 합당한 능력이 뒤따라야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며 가족경영에 선을 그은 바 있다.

검소한 생활 실천도 유명하다. 이준용 명예회장은 대림산업을 이끌 당시 별도 비서실 없이 지냈다고 한다. 또 집무실이 있던 4층까지 전용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자주 이용했다고 전해진다.

이재준 창업주가 남긴 어록에서도 이들 부자가 추구한 검소한 생활에 대해 알수 있다.

이 창업주는 “어떻게 사는 것이 화사하게 사는 것인가. 실내에 요란한 장식과 필요도 없는 가구로 채우는 것이 화사한 삶이 아니다. 자기 일상생활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면 된다. 요새로 말하면 TV 하나 냉장고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며 근검절약한 삶을 강조했다.

조용히 치러진 가족장

이준용 명예회장의 전재산 사회 환원 관련 지난해 12월 있었던 한경진 여사의 조용한 장례식이 다시 한 번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2014년 12월 5일 한경진 여사는 향년 75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대림산업에서는 한 여사의 장례를 외부에 알리지 않고 가족장으로 조용히 마무리했다. 살아생전 고인의 뜻을 따라 이 명예회장 포함 유족들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

이에 상당수 회사 직원들이 한경진 여사의 별세 속을 발인이 끝난 후에야 전하기도 했었다.

대림산업 오너 일가의 조용한 장례 풍토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2013년 4월에도 모친상 때도 이 명예회장은 이를 외부에 알리지 않고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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