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상 다 맞을 각오로 뛸 것”…반도체 부문 신규공장 2개 증설

   
 

[월요신문 오아름 기자] 지난 14일 특별사면으로 석방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출소하자마자 경영 일선에 곧바로 복귀하는 등 경영 정상화를 위한 잰걸음에 나섰다.
 
최 회장은 지난 2003년 2월 SK글로벌의 1조5000억원대의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 2008년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몇 달 뒤 특사명단에 포함돼 사면됐다. 사면 직후 최 회장은 SK텔레콤과 SK C&C 등 주요 계열사로부터 497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또다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2013년 1월 수감됐다.

이번 두 번째 사면을 받고 풀려난 만큼 ‘경제활성화’에 거는 기대는 크다.

건강회복 주력?… “갈 길이 바쁘다”

최 회장이 어떤 ‘경제활성화’ 대책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 회장은 2년 7개월이라는 긴 수감생활로 당분간 건강 회복에만 주력할 것이라는 일부 시각과는 달리, 출소 직후 3일 연속 출근도장을 찍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최태원 회장은 14일 0시 의정부 교도소를 나온 뒤 서울 서린동 SK 본사에서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등 그룹 경영진과 만난 데 이어 주말이자 광복절인 15일에도 본사에 나와 경영진과 경제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14일 서린동 본사 모임은 잠깐 상견례 성격이 강했다면 15일에는 김창근 의장과 각 계열사 사장, 그룹 내 일부 임원들과 경제활성화를 위한 기본 방향을 논의했다는 점에서 공식 경영 활동의 첫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최 회장은 출소 후 경영 복귀 시점과 방식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업무 공백이 있기 때문에 시간을 좀 갖고 상황 파악을 해보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SK그룹은 김창근 의장 등이 최태원 회장에게 현황 파악을 하루빨리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15일 모임에서는 김 의장이 최 회장에게 개략적인 그룹의 위기극복 현황과 국가 경제 활성화 기여 방안, 그리고 창조경제혁신센터 등에 대해 설명하고 이에 대한 토론을 했다.

SK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은 하루속히 경영 정상화를 하겠다는 의지가 강할 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이같이 바라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면서 "최 회장은 그야말로 조만간 본격적으로 경영을 챙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이 이처럼 출근 직후 곧바로 경영 일선에 복귀한 것은 SK그룹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는 노동 개혁에 부합하는 SK그룹의 청사진을 내놓아야 하고 SK하이닉스 등 주력 계열사의 추가 투자 등 결정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룹 내부에서도 사면에 복권까지 된 이상 최 회장이 하루속히 경영을 직접 챙겨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 회장은 이번 주말 SK 본사와 자택을 오가며 임원들의 보고를 받고 지시할 예정이다. 이어 내주 중에 서린동 본사에 본격적으로 출근하고 SK하이닉스 공장이나 창조경제혁신센터 방문 등을 통해 공식으로 경영 일선 복귀를 대내외에 알릴 방침이다.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4일 자정 경기 의정부 구치소에서 출소하며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최 회장 복귀, SK하이닉스 미래는?

불안 요소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지만 SK하이닉스의 현재 상태만을 놓고 보면 ‘맑음’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5조1095억원의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6분기 연속 1조원 클럽을 달성했다. 올 2분기에도 1조3,75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최 회장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8·15 특별사면 되면서 투자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표적인 투자 확대 대상으로 SK하이닉스가 거론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최 회장이 직접 인수에 나서며 그룹 내 계열사로 편입할 만큼 애착이 깊은 곳이다. 그룹에서도 경기도 이천공장에 최 회장의 집무실을 따로 마련할 정도로 SK하이닉스에 거는 기대감이 남다르다.

SK그룹은 경제활성화를 위해 SK하이닉스에 공격적 투자를 감행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 공장 증설에 5조원 이상을 투입하는 등 올해 투자 규모도 당초 14조원에서 17조원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2021년까지 반도체 생산라인(M14)에 집중 투자해 생산기반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신성장 동력 발굴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D램 의존도를 낮추고 차세대 메모리 개발 속도를 높이지 않는 한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반도체 시장에서는 D램과 달리 전원 유무와 관계없이 저장할 수 있는 낸드플래시가 핵심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이 분야에서는 삼성전자가 독보적인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어 SK하이닉스가 경쟁하기 버거운 상태다. 삼성전자와의 기술격차가 1년 가량 벌어져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SK하이닉스는 고용량 메모리 반도체 DDR4 제품 용량의 풀 라인업을 갖추고 서버 D램 시장에 선제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메모리 반도체 미세 공정 전환의 한계가 뚜렷해 차세대 메모리 개발이 시급한 실정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2위 기업으로 성장했으나 D램 의존도가 너무 높아 성장의 한계점을 보이고 있다”며 “경영 일선에 복귀한 최태원 회장이 안전 문제를 비롯해 대내외적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최태원 SK 회장이 20일 그룹 최대 사업장인 울산 콤플렉스를 방문해 임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무서운 현장 경영…“사업장 다 돈다”

최 회장이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사업장을 찾는 현장 경영으로 강행군하고 있다. 이번 주에만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사업장을 포함해 매일 2~3군데를 돌며 초인적 일정을 소화했으며 내달 중에는 해외 출장을 통해 주요 거래선 및 사업장을 돌아볼 것으로 전망된다.

17일부터는 자신감을 얻은 최 회장의 행보가 한층 거침없어졌다.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활성화와 청년 고용을 부응하는 정책을 봇물 터지듯 쏟아냈고 대규모 투자방안까지 내놓았다.

최 회장은 17일 장동현 SK텔레콤 사장 등 17개 주요 계열사 CEO들이 참석한 가운데 업무 보고를 받고 46조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 계획을 내비쳤다. 현재 건설 중인 경기도 이천의 M14 반도체 생산라인의 장비투자와 2개의 신규공장 증설에 이같은 규모의 금액을 투자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어려운 경영여건, 힘든 환경 아래 내가 앞서서 풍상을 다 맞을 각오로 뛰겠다”면서 공격적인 경영 의지를 천명했다.

최 회장은 20일에는 1박 2일 일정으로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와 울산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 25일에는 경기도 이천에 들어서는 SK하이닉스의 M14 반도체 생산라인 준공식에 참석해 46조원에 달하는 반도체 분야의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밝힐 계획이다.

SK 관계자는 “최 회장이 25일 준공식에 참석한다”며 “이미 46조원 투자를 밝힌 상황이라 이보다는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언급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최 회장은 울산콤플렉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지난해 37년 만에 불가피한 첫 적자를 냈지만 전 구성원들이 대동단결해 의미 있는 실적개선을 이뤄낸 것을 보고 우리에겐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패기 DNA가 있음을 재확인했다”고 격려했다.

그는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울산 콤플렉스가 경제활성화의 최선봉에 서 달라”면서 “이를 통해 대한민국 제1의 기업도시인 울산에서부터 경제활성화 물결이 전국으로 확산할 수 있도록 풍상을 앞서 맞을 각오를 하고 앞장서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최 회장은 이달 말까지 서울에 있는 SK텔레콤을 포함한 계열사 본사와 그룹 계열사의 주요 사업장을 모두 돌아볼 계획이다.

19일에는 SK그룹 내 최대 연구시설인 SK이노베이션 글로벌테크놀로지센터와 이천 SK하이닉스 반도체 사업장을 차례로 방문했다. 그날 오전에는 대덕 연구단지도 찾았다. 특히 SK하이닉스의 경우 최 회장이 1박2일 일정으로 이천까지 내려갈 정도로 반도체 투자와 경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반영했다.

그는 18일에는 ‘창조 경제’가 현 정부의 숙원 사업이라는 점을 의식한 듯 SK그룹이 후원하는 대전과 세종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차례로 방문했다. 벤처기업 대표들과 도시락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하면서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최 회장이 이처럼 서둘러 현장 경영에 나선 것은 SK그룹 현황에 대한 전반적인 보고를 받았으나 수감 기간에 현장을 보지 못해 직접 눈으로 보고 현장 직원들과 소통을 한 뒤 그룹의 로드맵을 짜겠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최태원 회장의 글로벌 현장 경영도 애초보다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사면에 복권까지 되면서 해외 출장을 나가는데 걸림돌이 없어진데다 SK의 거점 지역인 동남아, 중국, 미국, 중남미에서 사업 상황의 적신호가 계속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SK루브리컨츠의 중국 윤활유 업체 인수 실패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 시노펙 등과 합작 사업 강화 등도 중요하다. 최 회장은 수감되기 전인 2012년 말에도 중국으로 건너가 현지 사업 현황을 점검한 바 있다.

SK 관계자는 “최 회장의 글로벌 비즈니스는 한층 속도를 높여나갈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2013년부터 중단된 중국 등 여러 글로벌 거점에서 사업기회를 찾아나가는 것을 시작으로 글로벌 현장경영도 본격화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