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5공에서 북(北) 수공 위협 과장, 국민 불안감 조성했다”

[월요신문 김영 기자]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인 1993년 8월 31일 감사원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추진된 강원도 화천군 ‘평화의 댐’ 건설 관련 당시 정부에서 북측의 수공 위협에 대해 과장 발표했다는 조사결과를 공개했다. 북의 금강산댐 건설시 재난수준의 물공격이 감행될 수 있다며 국민성금 모으기까지 진행했던 ‘평화의 댐’ 건설이 대국민 사기극이었던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임남댐 방류 후 수위가 오른 평화의 댐. <사진제공= 뉴시스>

1987년 ‘평화의 댐’ 착공

지난 1986년 북한에서는 북한강 상류 지역에 이른바 ‘금강산댐’이라 부르는 임남댐 건설을 시작했다. 당시 전두환 정부에서는 임남댐이 완공될 경우 북측에 의한 수공으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전역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밝혔다.

전두환 정부에서는 “댐 완공 후 북측이 북한강을 통해 휴전선 이남으로 흘러들어가는 연간 18억톤의 물 공급이 차단할 수 있고, 갑작스런 방류 및 댐 붕괴를 통해 약 200억톤의 물을 하류로 흘려 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물이 63빌딩 중턱까지 차오를 수 있다”며 “북한이 이를 이용해 1988년 하계 올림픽을 방해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었다.

이어 정부에서는 임남댐 남쪽에 새로운 댐을 건설, 북측 수공에 대비한다는 계획을 수립했고 1987년 2월부터 ‘평화의 댐’ 건설에 들어갔다.

그렇게해서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평화의 댐은 첫 삽을 뜬지 2년 만인 1989년 1월 높이 80m 규모로 1차 완공을 마쳤다. 2002년부터는 2단계 증축공사를 시작해 2005년 10월 최종 완공됐다.

현재 평화의 댐 규모는 길이 601m, 높이 125m, 최대 저수량 26억 3천만톤이다. 높이는 국내 댐 중 최고이며 저수량 역시 소양강댐과 충주댐에 이어 세 번째에 이른다. 평상시에는 물을 가두지 않는 건류댐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댐 위로는 지방도 제460호선이 지나간다.

5공의 과장 발표

임남댐 건설이 시작될 당시 남북관계는 극도로 악화돼 있었다. 아웅산 폭파사건, KAL기 격추사건 등 북측의 대남 도발이 빈번하게 발생했던 것. 그렇다 보니 금강산댐에 의한 수공 가능성이 제기되자 상당수 국민들은 큰 불안감을 느끼며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 같은 상황 속에서 나온 것이 전두환 정부의 평화의 댐 건설 계획으로 이에 대해서는 전국민적인 호응이 쏟아지기도 했다.

1986년 11월 26일 국방부·건설부·문화공보부·통일원 장관 합동담화문을 통해 평화의 댐 건설계획이 알려지자 총 공사비 1700억원 중 639억여원이 단 6개월만에 국민성금으로 모인 것이다.

그러나 이때부터 평화의 댐 건설은 부정으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성금 모금 과정에서 횡령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으며, 기업에 대해서는 매출액 기준 최소 700만원에서 최대 10억원의 강제 성금이 할당되기도 했다.

평화의 댐 건설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문민정부 출범 첫해로 그해 김영삼 대통령은 온갖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던 이 사업에 대해 감사원 진상규명을 지시했다.

조사결과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감사원에서는 임남댐의 구체적 위치와 규모에 관한 1차 분석결과 자체가 허술했다고 밝혔다. 해당 자료를 작성한 이가 한국전력 직원 1명으로 그 또한 확인되지 않은 첩보에 의거 이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이어 감사원에서는 실제 임남댐에서 쏟아낼 수 있는 수량이 많아봐야 59.4억톤이라며 5공 시절 발표가 이보다 3배 이상 부풀려 졌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경우 한경변의 피해규모는 일부 저지대 침수 정도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실제 완공된 임남댐 규모는 이보다 더 적어 26억 2천만톤에 불과하다.

감사원에서는 평화의 댐 공사과정에서 불법이 자행됐다는 점도 적발했다. 시공사 선정을 위한 경쟁입찰도 진행되지 않았으며, 공사비 과다지급 등이 이뤄진 것이다.

이어 감사원은 당시 정부가 국가재정을 통해 평화의댐을 충분히 건립할 수 있었음에도 국민성금을 이용한 건립방식을 고집해 기업과 국민들의 재정적 부담을 가중시켰고 소외계층에게 전달되어야 할 성금을 감소시켰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평화의 댐 건설을 추진한 전두환 전 대통령. <사진제공= 뉴시스>

불안감 조성으로 정국 안정 회책

전두환 정부가 금강산댐 건설 관련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대국민사기극을 주도한 배경에 대해 감사원에서는 불안정하던 당시 정국 상황 속에서 이를 안정화 시킬 카드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물밑에서 평화의 댐 건설을 주도한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의 증언 등을 통해 알려진 내용이다.

5.3 인천 사태와 10.28 건국대 항쟁 등으로 정국이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자 대북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해 평화의댐 건설을 추진한 것.

그런가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 평화의 댐 건설에 대한 감사원 감사 당시 “국가안보를 위한 대응책으로서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고 결정한 일”이라고 해명했으나, 이후 그는 일부 시민단체로부터 사기 및 공갈 혐의로 고발조치 당하기도 했다.

아직 남아 있는 위협

북한의 임남댐 규모가 당초 알려진 것 보다 작지만 그렇다고 그에 따른 위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상당히 부실하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임남댐 관련 자체 붕괴 가능성 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 정부 역시 앞서 언급한 것처럼 평화의 댐 증축을 마무리 지어 놓은 상태다.

5공 당시 정부가 밝힌 임남댐의 가공할 만한 저장능력과 방류에 따른 공격이 아닌 부실한 북한 기술력에 의해 수해 정도의 피해가 있을 수 있어 내려진 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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