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 “제레미 코빈 당선에 버니 샌더스 함박웃음”

9월 13일 영국 제1야당 노동당 당수로 제레미 코빈이 당선되자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등 미 언론이 앞다퉈 내건 제목이다.

코빈과 샌더스는 영국과 미국 정치판에서 돌풍의 주역으로 통한다. 코빈은 서너 달 전만 해도 당선 확률 1%의 '비주류' 의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본선에서 압도적 우세로 ‘언더독(우승 확률이 적은 팀이나 선수)의 신화를 이루어냈다. 샌더스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무소속으로 미국 대선에 뛰어든 샌더스는 최근 뉴햄프셔주에 이어 첫 경선지인 아이오와주에서도 힐러리를 제쳤다. 한때 부동의 1위였던 힐러리는 존재감을 잃고 시나브로 추락 중이다. 이에 따라 오바마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이 대항마로 나설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샌더스의 인기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코빈과 샌더스의 돌풍 현상은 한국 정치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먼저 두 사람의 공통점을 살펴보자. 코빈과 샌더스는 극좌파 정치인이다. 전문대 졸업이 최종 학력인 코빈이 내건 정책은 ▲긴축 반대 및 복지확대 ▲철도 전기 등 주요 기간산업의 국유화 등 보수당이 기겁하는 안들이 대부분이다. 대외정책도 급진적이다. 코빈은 이라크전을 일으킨 미국을 범죄국가로 규정하고 팔레스타인을 탄압하는 이스라엘을 맹비난하는 등 흡사 이슬람무장조칙 IS 지도자의 발언을 연상시킬 정도다.

샌더스도 이에 못지 않다. 샌더스의 핵심 공약을 살펴보면 ▲무상교육, 대형 금융기관 해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통한 소득재분배 ▲국영 건강보험제도 도입 등 공화당에 보기에 과격한 구호 투성이다. 그런데 이런 구호들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경제민주화나 무상보육 노동시장 개혁을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노동시장 개혁만 해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을 한다고는 했지만 경제가 나아진 적은 없었다. 여권의 주요 대선공약 중 하나인 영유아 전면 무상보육은 워킹맘 위주로 축소되고 있고, 무상급식 문제는 지금도 여야의 단골 전투 메뉴다.

반대를 하거나 말거나 뚝심 있게 공약을 실천한 사례가 있긴 하다. MB정부 최대 국책사업이었던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등이 그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사업에 대한 비판이 일 때마다 “4대강사업은 자손만대를 위한 사업이며 긴 시간을 갖고 성공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제 그 말을 믿는 국민은 거의 없다.

샌더스가 미국인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샌더스는 말한다. “공화당이나 민주당은 껍데기만 다를 뿐 모두 부유층을 위한 정당이다” 이 말에 군중은 “필 더 번!(Feel the Bern!)” 하고 외친다. 번(Bern)은 버니(Bernie)의 줄임말이다. 샌더스는 또 사자후를 터뜨린다.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 다음날 당장 월가로 달려가 공정한 몫을 부담하도록 요구하겠다.” 월가의 행태에 분노를 느낀 미국인이면 누구나 박수칠 말이다.

영국은 양당제가 잘 발달된 나라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양당제가 고착화되면 소수 혹은 약자들의 의견은 묻히기 쉽다. 미국의 경우,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후 중산층이 무너지고 약자들이 많아졌다.

   
▲ 이정규 편집인.

무소속 샌더스 의원의 주변에 약자들이 구름같이 몰려드는 이유는 그를 통해 약자들이 ‘변화’를 바라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우리 정치권에도 코빈이나 샌더스 같은 저돌적인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심상정 노회찬 등등 좌파 정치인으로 잔뼈가 굵은 이들은 그러나 미국처럼 열렬한 환영을 받지 못한다. 좌파로 못 박기는 좀 그렇지만 저돌성만큼은 샌더스에 못지 않은 정치인도 있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그 주인공이다. 단기필마로 2002년 대선판에 뛰어든 그의 최대 무기는 ‘진정성’이었다. 그가 살아 있다면, 새정치연합의 권력투쟁을 어떻게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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