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

[월요신문 김미화 기자] 최근 한국경제의 저상장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기업가 정신'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기업가정신은 도전, 혁신, 미래를 보는 안목, 사회적 책임 등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투자가 확대되고 생산과 고용이 늘 수 있기 때문. 즉, 기업가정신이 회복되면 경기도 회복되고 기업가정신이 쇠퇴하면 경기도 위축될 수밖에 없게 되는 셈이다.

<월요신문>은 기업가정신과 한 나라의 경제 성장과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고 '열정을 꿈으로 만든 글로벌 CEO 이야기를 연재한다. 두 번째 순서로 미국의 사업가 '마크 저커버그 (Mark E. Zuckerberg)'의 기업가 정신을 살펴봤다.

   
마크 저커버그 (Mark E. Zuckerberg).

미국의 젊은 기업가이자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마크 저커버그(32)는 페이스북(Facebook)을 설립, 운영하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선도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그가 하버드대학교 재학 시절 대학생이라는 제한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만든 것이었지만, 이후 전 세계로 확산돼 가입자만 12억 명이 넘을 정도로 성장했다. 현재 페이스북의 기업 가치는 급격한 가입자 증가와 더불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덕분에 저커버그는 지난 2010년 타임이 뽑은 '올해의 인물', 잡지 배니티 페어에서 뽑은 '정보화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각각 선정되는 등 정보화 시대의 최첨병 CEO로 활약학고 있다.

대학시절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

1984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저커버그는 중학교 시절 병원의 컴퓨터에 환자 도착을 알리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컴퓨터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 진학 이후 에도 프로그래밍에 매달려 '페이스 매쉬(Facemash)'라는 외모 평가 사이트를 만들었다.

페이스북 초기의 형태라고 할 수 있는 페이스 매쉬는 하버드 대학생들의 사진과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 여성 두 명의 사진을 나란히 붙여놓은 뒤 더 매력적인 외모의 학생에게 투표하게 해 외모 순위를 매기는 사이트였다.

페이스매쉬는 개설 하루 만에 450명이 방문하고, 총 2만2000번의 투표 결과를 모으는 등 인기를 모았지만 곧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에 휩싸였다. 프로그램 만들기 위해 저커버그가 직접 대학교 내 기숙사의 서버를 해킹하기까지 했기 때문.

하버드 대학 신문은 페이스 매쉬를 부적절 하다고 지적했고, 저커버그는 하버드 '대학의 보안 침해'(breaching security), '초상권 침해'(violating copyrights), '프라이버시 침해'(violating privacy)를 이유로 교냐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6개월 근신 처분을 받았다.

결국 저커버그는 "페이스 매쉬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인정 한다"며 "누구도 모욕할 뜻이 없었다며"고 해명하며 사이트를 폐쇄했다.

이후 이 사건과 관련 TV에서 인터뷰하면서 저커버그는 "논란이 되는 부분 중 진실이 아닌 부분도 있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라고 얼버무리기도 했다.

이후 저커버그는 이같은 경험을 밑거름으로 또 다른 도전을 하기 시작한다.

지난 2003년에 쌍둥이 형제 카메론 윙클보스, 타일러 윙클보스와 함께 학내 데이팅 서비스인 '하버드커넥션'을 내놓았을 뿐 아니라, 그 다음해 학교 친구들인 더스틴 모스코비츠, 에두아르도 세버린, 크리스 휴즈와 함께 현재의 페이스북을 설립하게 된다. 호기심에서 시작해 끊임없이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매달린 집요함이 결국에는 그를 CEO로 만든 것.

연이은 법적 소송으로 위기

그러나 저커버그가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CEO로 자리 잡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페이스북을 함께 만드는 등 프로그래밍 작업을 같이 했던 지인들에게 연이어 고소를 당해 수년간 법정 투쟁을 벌이게 된 것.

그 중 가장 유명한 소송은 지난 2004년 하버드 커넥션을 같이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던 윙클보스 쌍둥이 형제가 저커버그에게 '아이디어 도용 소송'을 제기했던 일이다.

당시 윙클보스 형제는 "저커버그에게 하버드 커넥션의 개발을 부탁했는데 저커버그는 도와주는 척하면서 이와 유사한 페이스북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결국 저커버그는 지난 2008년 페이스북 주식 4500만달러 규모와 현금 2000만달러에 윙클보스 형제와 합의해야 했다.

또 다른 소송은 페이스북을 함께 창업했던 친구 중 한 명인 에드아르도 세브린이 저커버그와 멀어지면서 이뤄졌다.

페이스북이 정식 법인 설립을 하기 전 초기 투자자금을 유치할 때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았던 세브린은 설립 당시 34%였던 자신의 주식이 저커버그와 멀어지는 과정에서 0.03%로 급락한 사실을 알고 배신감을 느껴 고소했다.

또한 지난 2011년에는 인터넷 사업가 폴 세글리아가 페이스북 주식의 절반이 자신의 것이라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세글리아는 “2003년 저커버그가 동업자였던 자신에게 페이스북 주식 50%를 주기로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저커버그 CEO 변호인단은 “당시 페이스북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제출된 서류는 모두 날조된 것”이라고 반박했으며, 실제 저커버그의 승리로 사건은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이같은 내용은 지난 2010년 영화 '소셜 네트워크(The Social Network)'에 담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해당 영화는 페이스북의 창업과정과 관련된 소송 2건을 주요 이야기의 틀로 사용하며, 저커버그를 하버드대 학부 시절 학교친구들로부터 사업 아이디어를 훔친 자기중심적인 인물로 그렸다.

저커버그는 "영화는 허구로, 실제와 다소 다르지만 즐거운 경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 페이스북은 광고시장을 키우기 위해 마련한 새로운 광고 플랫폼을 둘러싸고 사용자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

실제로 저커버그는 지난 2011년 페이스북 이용자의 개인정보와 정보수집 정책에 대해 미국 의회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당시 미연방거래위원회(FTC)는 페이스북의 협력사를 포함해 9명의 정보수집 브로커들을 상대로 조사에 착수했으며, 페이스북은 20년간 외부 기관의 정기적인 감사 등의 내용을 포함한 합의안에 합의해야만 했다.

이에 저커버그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 프라이버시 우려를 깨끗이 씻어내고 개선된 페이스북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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