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없다면 1분도 살 수 없다”

   
알리바바 그룹 창업자 마윈.

[월요신문 김미화 기자] 최근 한국경제의 저상장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기업가 정신'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기업가정신은 도전, 혁신, 미래를 보는 안목, 사회적 책임 등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투자가 확대되고 생산과 고용이 늘 수 있기 때문. 즉, 기업가정신이 회복되면 경기도 회복되고 기업가정신이 쇠퇴하면 경기도 위축될 수밖에 없게 되는 셈이다.

<월요신문>은 기업가정신과 한 나라의 경제수준이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고 '열정을 꿈으로 만든 글로벌 CEO 이야기를 연재한다. 세 번째 순서로 중국의 사업가 '마윈(马云)'의 기업가 정신을 살펴봤다.

주당 공모가격 68달러, 시가총액 1676억 달러(175조2000억원). 지난 2014년 9월, 중국의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 그룹(알리바바)'이 세계 증시 사상 최고의 기록을 세우며 뉴욕 증권거래소에 입성했다.

중국 야후, 타오바오, 알리바바 닷컴을 운영하고 있는 알리바바는 중국의 기업가 마윈(40)이 1999년에 만든 곳으로 현재 중국전자상거래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등 글로벌 유통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이에 마윈 회장은 지난해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억만장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계속되는 실패에도 창업 도전

1964년 중국 항저우시에서 가난한 경극배우의 아들로 태어난 마윈은 학벌도, 이렇다 할 스펙도 없는 조건으로 인해 실패의 연속을 겪어야 했다.

마윈은 대학 입학시험에서 3번이나 낙방했다. 이후 일자리를 위한 입사시험에서는 무려 30번이나 떨어졌다. 또 흔한 아르바이트자리인 KFC 매장점원 채용에서도 지원자 중 유일하게 탈락하기도 했다. 162cm에 45kg인 왜소한 체격에, 튀어나온 광대뼈와 심한 곱슬머리 등 독특한 생김새가 핸디캡으로 작용한 것.

이후 마윈은 당시 기억을 회상하며 “남자의 능력과 외모는 반비례하지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공부에 관심이 없었던 마윈은 중학교 때 영어선생님을 짝사랑하면서 영어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는 영어 공부를 위해 매일 아침 같이 자전거를 타고 45분을 달려 항저우에 있는 외국 호텔에 가서 외국인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이렇게 몸으로 영어를 익힌 마윈은 대학시절 월 1만2000원을 받으며 영어강사로 생계를 이어가다 첫 창업으로 '하이보번역' 회사를 세우게 된다. 이때도 마윈의 첫 수입은 고작 3만6000원에 불과했다. 마윈은 사무실 월세를 보전하기위해 광저우를 오가며 꽃과 소품 등을 팔며, 3년간 보따리장수를 하게 된다.

1995년, 통역사로 미국 출장길에 올랐던 마윈은 인터넷을 만나게 되면서 창업도전을 이어갔다. 인터넷에 무한한 사업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중국 최초의 상업용 웹페이지인 '옐로우차이나'를 만들게 된 것. 그러나 이는 투자, 시장 분석 부족 등으로 실패하게 된다.

마윈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마침내 1999년 친구들과 8500만원(50만위안)으로 전자상거래기업인 '알리바바 닷컴'를 세웠다.

이와 관련 마윈은 "30번 정도 취업에 실패했고 주변 친구들은 인터넷을 하겠다고 말하자 말리기만 했다"며 "한 번도 제가 똑똑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내가 성공할 거라고 믿어주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사업 초기, 서비스 관련 혹평 쏟아져

현재 알리바바는 연 170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기업으로 우뚝 섰다. 중국 전자상거래 점유율이 80%가 넘을 뿐 아니라 전자상거래를 선도해온 미국 이베이마저 제쳤다.

그렇지만 당초 알리바바 사업의 시작은 쉽지 않았다.

창업 초기 중국은 인터넷이라는 단어조차 낯설었던 데다가, 신용체계도 불안정하는 등 전자상거래 사업이 성공할 만한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 이에 그는 창업초기 3년간 한 푼도 벌지 못했다.

알리바바가 오픈마켓인 타오바오 서비스를 시작한 당시, 이미 중국 온라인 시장의 90%를 장악한 글로벌 기업 이베이와의 경쟁을 피할 수 없었다. 마윈은 기존 업체들의 상식을 깨고 수수료를 없애거나 아주 낮게 받는 파격적인 방법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베이는 비즈니스 모델은 무료가 될 수 없다며 알리바바의 저돌적인 전략을 비웃었고, 언론에서는 마윈을 두고 "미친 잭"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하지만 마윈은 수수료 대신 광고로 수익을 올리는 방법을 통해 빠르게 사업을 확장해나갔으며, 결국 이베이를 중국 시장에서 철수하게 만들었다.

그가 선보인 알리페이 방식도 처음엔 외면당했다. 알리페이는 고객들이 대금을 알리바바에 송금하면, 이를 예치했다가 물건을 파는 사람에게 송금해주는 방식이다. 따라서 물건파는 사람과 고객 간에 직접 결제 시 불거질 연체나 송금불이행 문제 등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은행들이 이같은 새로운 결제방식을 거부했다. 어느 은행관계자는 지금까지 개발된 결제 방식 중에서 알리페이가 가장 어리석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윈은 "인터넷 상거래 시대가 세상을 지배 한다"는 신념 아래 계속해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이에 알리페이는 현재 중국인 5명 중에 3명이 사용하는 결제방식이 됐다.

또한 마윈은 중국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해내게 된다. 판매자와의 실시간 메신저 상담을 통해 소비자가 궁금해 하는 상품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 했고, 담보 결제 시스템을 만들어 중국의 불안정한 신용시스템을 보완했던 것.

마윈은 이처럼 '조건과 환경이 유리해지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창조해가는 것'을 기업가 정신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제 마윈은 중국을 대표하는 최고경영자일 뿐 아니라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됐다. 평소 남다른 혁신과 기업가정신으로 잘 알려진 마윈. 그는 성공한 CEO가 된 이후에도 유독 꿈을 강조한다.

"꿈이 없다면 1분도 살 수 없다. 꿈에게 기회를 주세요. 꿈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꿈도 당신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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