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광해의 한 장면. 폐위 후 수백년간 광해는 조선의 대표적 암군이자 폭군으로 불렸다.

[월요신문 김영 기자] 광해군 시절 조선은 북방외교에 있어 상당히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임진왜란때 우리를 도와준 명나라가 신흥세력인 청나라와 전쟁에서 수세에 몰렸음에도 명나라를 적극 돕기 보다 명과 청 사이 줄타기 외교를 했던 것이다.

광해와 배척했던 서인세력은 그의 이같은 태도를 맹렬히 비난했으며 인조 반정 성공 이후로는 광해 시절 이룬 모든 정치적 업적을 깍아 내리기도 했다.

이후 오랫동안 우리 역사학계는 조선시대 2대 암군이자 폭군으로 연산군과 광해군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광해에 대해 이 같은 해석을 내리는 역사학자는 별로 없다.

특히 광해 시절 북방외교에 대해서는 ‘임란 이후 불안했던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는데 상당히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되레 그의 아버지인 선조의 무능 및 반정에 성공한 인조의 무지에 대해 비난하는 학자들이 늘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수백년간 광해가 부정적인 역사평가를 받아 온 이유에 대해서는 과거 역사 기록이 ‘승자의 역사’이자, 조선을 인조 후손들이 계승해 왔기 때문으로 거론된다. 또한 사관 외 역사를 남기는 이가 없다 보니 획일적인 역사관이 정립돼 왔고 그렇다보니 이를 부인하기 또한 어려웠다.

이와 달리 근현대 들어서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생겼으며 특히 다양성을 중시하는 풍토가 자리 잡았다. 어떤 인물과 사건에 대해 평가하는데 있어 과거와 같은 일방적 추종은 줄고 좀 더 객관적이고 입체적인 해석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현재 우리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움직임은 한가지 시선만 고집하는 과거의 역사 편찬 모습과 닮아 있다. 다양성이 보장받기 위해서는 교과서 자체가 여럿 존재해야 가능하다. 아니 수월하다.

교과서 편찬에 있어 완벽한 공정성을 보장하겠다는 정부 주장 역시 허울로 밖에 안 들린다. 특정 사건과 인물을 어느 정도 분량으로 어떤 표현방식을 빌려 서술하느냐 하는 것 자체가 주관적 판단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에서는 현 역사교과서에 대해 좌익 진영의 이념적 편향성을 우려하고 있으나 반대편 역시 국정화 교과서에 대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교과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임이 불가능한 이상 차기 대통령이 취임하면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의는 분명 재검토 될 것이다.

소모적인 국력 낭비의 한 예가 될수도 있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역사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배우는 ‘인간학’이자 방법론적 학문이다.

안타까운 역사도 찬란했던 과거도 모두 우리 우리의 역사로 받아 들이고 그 안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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