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건 '꿈'과 '무한한 자신감' 뿐"

   
 

[월요신문 김미화 기자] 최근 한국경제의 저상장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기업가 정신'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기업가정신은 도전, 혁신, 미래를 보는 안목, 사회적 책임 등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투자가 확대되고 생산과 고용이 늘 수 있기 때문. 즉, 기업가정신이 회복되면 경기도 회복되고 기업가정신이 쇠퇴하면 경기도 위축될 수밖에 없게 되는 셈이다.

<월요신문>은 기업가정신과 한 나라의 경제수준이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고 '열정을 꿈으로 만든 글로벌 CEO 이야기를 연재한다. 네 번째 순서로 일본의 사업가 '손정의(孫正義·일본명 손 마사요시)'의 기업가 정신을 살펴봤다.

"디지털 정보혁명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겠다"

일본 이동통신업체 '소프트뱅크'를 세운 손정의 회장(57)은 많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일궈내면서 일본 정보기술(IT) 업계의 살아 있는 신화로 존경 받고 있다. 이동통신, 소프트웨어, 로봇, 태양광, SNS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소프트뱅크는 현재 세계 이동통신 업계 3위의 아성을 지키고 있다.

손 회장은 지난 2012년 일본 경제 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가 선정한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혁신가' 분야에 꼽혔으며, 지난해 포브스에서 조사한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 일본 2위, 전 세계 45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핍박

손 회장은 재일교포 3세로, 1957년 일본 남부 규슈(九州) 사가현(佐賀縣)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2차 대전 이전부터 한국인들이 모여 살던 판자촌으로 번지수조차 없는 동네였다.

그 당시 손정의의 할아버지 손종경(1899~1968년)은 일본에서 광산 노동자로 일하다 벼농사를 짓는 소작농으로 정착했다. 할머니는 리어카에 음식물쓰레기를 담아 가축사료로 쓰곤 했는데, 훗날 손정의는 그러한 할머니의 고생 이야기를 하며 공석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지독한 가난과 더불어 손정의는 학창 시절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이지매(따돌림)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시련에 굴하지 않고 도리어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공부나 운동 등 자신이 하는 일에 무조건 '1등'을 하는 등 승부근성을 보였다.

풍족하지 못했던 손정의 일가가 재산을 불린 것은 그의 아버지 대에서였다. 사업 감각이 뛰어났던 손정의의 아버지인 손삼헌(78)이 소액 대출업과 파친코 사업을 통해 재산을 키워나간 것이다.

삶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던 아버지의 모습은 손정의의 인격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손삼헌은 손정의가 어릴 적부터 "너는 천재다. 너는 반드시 위대한 인물이 될 거다"라고 줄곧 말했으며, 손정의는 자신이 대단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성격을 갖게 됐다.

손정의의 꿈은 교사, 화가, 정치인이었지만 일본 내에서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심한 직업이기에 상대적으로 차별이 덜한 사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에 그는 17세인 1974년 "일본 최고가 되려면 미국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본 학교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이와 관련 손 회장은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꿈과 무한한 자신감뿐이다. 그리고 거기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인생 50년 계획'과 창업의 시작

손정의는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19세에 '50년 인생 계획'을 세우고 지금까지 하나씩 실천에 옮겨왔다. 그의 '50년 인생 계획'은 20대에 이름을 알리고 30대에는 사업 자금을 모으고, 40대에 큰 승부를 걸고 50대에 사업 모델을 완성시켜서 60대에 다음 세대에 물려주겠다는 내용이다.

손정의는 이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 재학 시절부터 발명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사업화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1년 동안 250개 정도의 발명이 나왔고, 그 중 손정의는 ‘음성장치가 부착된 다국어 번역기’를 발명해 우리 돈으로 11억원 가량을 투자받으며 성공의 발판을 다지게 된다.

이후 미국 유학 중에 마이크로프로세서의 탄생 과정을 보며 IT 세계에 매료됐던 손정의는 디지털 정보 혁명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신념을 가지게 됐으며, 이 도전은 훗날 소프트뱅크를 창립하기에 이른다.

소프트뱅크의 시작이었던 컴퓨터 도매업체 '유니슨월드'는 지난 1981년 손정의가 대학교 졸업하고 세운 것으로 초기 근무 직원은 2명에 불과했다.

당시 손정의가 “이 회사를 10년 안에 연매출 500억엔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장담하자 직원들은 바로 사직서를 냈다고 한다. 구멍가게 사장이 하는 말을 그저 허풍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그의 호언은 현실이 됐다. 손정의는 유니슨월드라는 회사명을 주식회사 일본 소프트뱅크로 바꾸고 조신전기와의 소프트웨어 납품계약 체결을 시작으로 무섭게 성장했다. 그는 소프트웨어 납품과 함께 컴퓨터 관련 출판 사업에까지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 즈음 손정의는 만성 간염판정을 받으며 갑작스러운 투병 생활을 하게 된다. 당시 그의 상태는 위중해 5년 이상의 생존을 장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같은 위기는 1984년 자회사를 통해 시작한 상품 가격 데이터베이스화 사업이 실패하면서 더욱더 커졌다.

하지만 3년 동안 투병 생활을 했던 이 시기를 손정의는 기업의 아이디어와 경영 이념을 정립한 시기라고 회상한다.

손정의는 “투병 생활을 하면서 4000여권의 책을 읽었다. 이는 더 깊은 사고력을 키우게 했으며, 생각하는 힘을 더욱 강하게 단련하는 계기가 됐다”며 “이 시기는 역경의 시간을 미래의 자양분으로 바꿔 놓았다”고 말했다.

현재 소프트뱅크는 37년간 그의 거침없는 도전과 추진력으로 현재 소프트뱅크 그룹은 756개의 자회사와 105개의 관련사를 거느린 거대 IT 공룡이 됐다.

올해 손정의 회장의 나이 57세. 그의 인생 계획대로라면 3년 후에는 이 거대한 왕국을 차세대에 물려줘야 한다. 후계자 선정이 그의 마지막 과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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