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주름잡는 기업 “전쟁 있는 곳에 무기 있다”

 

[월요신문 이신영 기자] 캐나다 자유당이 10년 만에 정권 교체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차세대전투기 논쟁이 있었다. F35 도입 비용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은 국론을 분열시킬 만큼 주요 아젠더로 부상했으며, 분노한 캐나다 국민들은 투명성을 앞세운 야당의 손을 들어줬다.

‘캐나다의 오바마’로 불리는 저스틴 트뤼도는 총리 취임 직후 전임 총리의 탄핵 사유가 된 F-35도입을 전격 취소하고 이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이는 국방사업에 있어 높아진 대정부 불신이 정권교체로까지 이어진 사례로, KFX사업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 크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은 현재 군수산업 관련 각종 논란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데 있어 국방 문제를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 문제는 비용이다. 차세대전투기사업의 경우, 천문학적 예산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상대 업체에 대한 정보와 고도의 협상력이 요구된다. 이에 <월요신문>이 KFX사업 상대업체인 록히드마틴사를 비롯,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군수산업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미국 메릴랜드주 베서스다에 위치한 록히드마틴은 글로벌 군수기업의 대명사로 손꼽힌다. 항공우주장비 및 방위장치 제작을 주 업무로 하는 미국의 주요 방위산업체이기도 하다. 항공관제 시스템과 각종 군용항공기, 탄도 미사일, 인공위성, 로켓, MD시스템, 군함 등 대부분의 군수품을 이곳에서 개발‧생산한다. 전 세계적으로 임직원 13만5000명이 근무 중이며, 현재 ‘메릴린 A. 휴슨’이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다.

록히드마틴의 지난해 매출액은 456억달러로 한화로 약 52조4025억원이다. 같은 기간 동안 영업이익은 55억달러(한화 약 6조4047억원), 순이익은 36억달러(한화 약 4조1922억원)을 기록했다. 자산 총액은 전년 기준 370억달러(한화 약 43조865억원)다.

군수품 대부분이 단가는 비싸지만 한 번에 거래되는 양은 많지 않다. 고가의 기체들은 1, 2대 생산하는 수준에 그쳐 방위산업체들의 전체 매출액은 일반 제조업에 비해 낮은 편이다. 하지만 사업의 연속성이 있어 경기변동에 민감한 업종보다 장점이 있다.

록히드마틴은 전투기 개발로 명성을 쌓아왔다. 제2차 세계대전부터 현재까지 유명한 전투기 기종은 대부분 록히드마틴의 손길을 거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록히드마틴은 최고의 전투기로 평가받는 ‘F-22 랩터’ 개발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파산과 합병 거치며 굴지의 군수기업으로 발전

록히드마틴사의 홈페이지에는 회사 설립연도를 1912년으로 밝히고 있다. 앨런‧말콤 록히드 형제가 설립한 당시 회사명은 알코 하이드. 주 생산 품목은 항공기였다. 기계공이었던 말콤 록히드는 그의 형 앨런과 함께 모델 G라고 명명한 비행기를 제작했다. 1913년 성공적으로 시험비행을 마친 록히드 형제는 그 비행기로 상당한 돈을 벌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록히드 형제는 해군과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실패로 끝나고 결국 회사가 해체됐다.

   
▲ 록히드 형제. <사진출처=록히드마틴 홈페이지>

록히드 형제는 1926년 회사명을 ‘록히드 항공기 회사’로 개명하고 항공운송기 ‘모델 10 엘렉트라’를 개발했다. 생산 첫 해에만 40대가 팔리는 등 판매 성적이 좋았다. 이어 ‘모델 12 엘렉트라 주니어’ ‘모델 14 슈퍼 엘렉트라’ 등을 잇따라 개발했으나 3년만인 1929년 디트로이트항공기회사에 인수됐고 1932년에 파산했다. 같은 해 은행가인 로버트 그로스와 코틀랜츠 그로스가 이 회사를 되살렸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P-38’ 전폭기를 생산, 미 정부 방위산업체로 납품을 확대해나갔다.

이후 록히드마틴사는 위기와 기회를 번갈아 맞는다. 1971년 베트남 전쟁이 끝나가면서 납품 물량이 현격히 줄어들자 록히드사는 심각한 재정 손실에 직면한다. 주주 배당금도 못줄 정도로 위기에 겪은 록히드사는 연방정부로 자금 지원을 받아 겨우 파산을 면했다. 이후 록히드마틴사는 해외 수주 과정에서 외국 관리들에게 2400만 달러를 뇌물로 유용한 사실이 밝혀져 부도덕한 기업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제2차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때 떼돈벌어

록히드사에게 제2차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은 기회였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록히드사는 미군의 첫 제트키인 ‘P-80’을 생산해냈다. 이 기체는 1945년 실전 배치됐고, 한국전쟁 때도 참여해 ‘MIG-15’를 격추시키는 전투기로 맹활약했다.

한국전쟁 종전 직후인 1954년엔 초음속 전투기 ‘F-104’를 개발, 미국 정부 및 독일과 일본 터키에 제품을 납품했다. 그 이듬해 2만 미터 상공에서 비행이 가능한 고공정찰기 'U-2'를 개발했다. 이 정찰기는 60년이 지난 지금도 성능을 인정받아 사용되고 있다.

1982년 들어와 록히드사는 대잠항공기·미사일·수송기 등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전세계 어느 분쟁지역에서도 전투 가능한 탱크와 헬리콥터를 실을 수 있는 화물기를 제작해 공군에 공급했다. 특히 21세기 들어 첨단산업이 발전하면서 록히드사는 군사위성과 미사일 추적 장치까지 개발해 최첨단 무기를 필요로 하는 세계 각국에 제품을 판매했다.

1995년 록히드사는 미국 방위산업체 3위인 마틴 마리에타사와 회사를 합병한다. 마틴사는 1917년 최초 설립됐으며 주요 제품으로 미국 정부의 미사일·전자장비와 원자력위원회의 핵장비를 설계·개발·생산해왔다. 1961년 마틴사는 도료·화학제품·콘크리트·골재와 금속 파이프 제조전문 회사인 아메리칸아스팔트페인트사와 합병해 아메리칸마리에타사로 개명했다. 이후 우주왕복선 주요 발주업체로 지정돼 타이탄 우주발사체를 생산, MX 미사일 계획과 패트리어트 미사일, 퍼싱 미사일을 제조 생산해오고 있다.

KFX사업이 졸속 비판받은 이유 살펴봐야

록히드사와 마틴사의 합병은 ‘강대강(强대强)’의 결합이다. 세계 최대 군수기업간 자본과 기술 결합으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시켰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다. KFX사업과 관련해 우리는 록히드마틴사의 속까지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록히드마틴은 민간기업이지만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 미국의 국방정책과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KFX사업에서 문제가 된 것은 ‘돈은 돈대로 들고 기술 이전은 안돼 과연 실효성이 있는가’ 자칫 ‘남의 나라 기업의 배만 불려주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캐나다의 예에서 보듯 추가 비용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것도 국민의 부담만 늘려준다. 그렇다면 록히드마틴사는 캐나다와 한국 양국에서 똑같은 문제를 야기할까.

전투기 개발에는 막대한 비용뿐 아니라 상당한 기간이 소요된다. 때문에 계약시점에 가격이 결정되지 않는다. 록히드마틴은 개발에 추가로 들어가는 자금과 기간을 모두 계산해 가격을 요구한다. 개발이 지연될수록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국 정부의 생각도 들여다봐야 한다. 록히드마틴이 자국 외의 나라에 기술 이전을 함부로 해줄 경우 안보상 그리고 수출 저하라는 난제에 처할 수 있다. 미국의 수출 품목 중 군수품은 경쟁력이 매우 높다. 돈 문제도 따져봐야 한다. 미국 국민의 세금으로 전투기 개발에 자금을 지원하는데 개발이 연기되고 돈만 들어간다거나, 그렇게 해서 개발된 전투기를 쉽게 기술 이전하는 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KFX사업이 난항을 겪는 이유 중에는 그런 점도 있다. 하지만 더 큰 원인은 전략의 부재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하지만 방위사업청은 지피지기보다 다른 변수로 KFX사업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

 

록히드마틴의 성장 배경엔 한 부서가 있다. ‘스컹크 웍스’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ADP(Advanced Development Programs)’다.

‘ADP’에 ‘스컹크 웍스’라는 별칭이 붙은 배경엔 재밌는 일화가 있다. 부지 주변에 유황계열 물질을

사용하는 고무가공 공장이 많았다. 때마침 당시 유행하던 한 만화에서 죽은 스컹크를 갈아서 만드는 공장이 나왔는데, 이름이 ‘스콩크 웍스(Skonk Works)’였다. ‘ADP’에 근무하던 엔지니어가 여기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근무지를 ‘스콩크 웍스’라고 부른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만화 원작자가 저작권 문제기를 제기함에 따라 ‘스컹크 웍스’라는 이름을 쓰게 됐다.

‘스컹크 웍스’는 1944년 미군의 첫 제트키인 ‘P-80’을 탄생시켰다. 이 기체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는 해(1945년) 실전 배치, 한국전쟁에 참여해 ‘MIG-15’를 격추시키는 전투기로 활약했다. 1954년엔 미군뿐만 아니라 독일과 일본 터키에서 쓰인 초음속 전투기 ‘F-104’를 개발했다. 이듬해엔 'F-104‘를 개조한 약 2만 미터 상공에서 비행이 가능한 고공정찰기 'U-2'를 개발했다.

‘스컹크 웍스’는 올해 신개념 항공기 풍동모델 시험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미 공군의 예산으로 추진되고 있는 이 개발사업은 내년에 시험비행할 예정이다. HWB 혹은 BWB로 명명된 이 비행체는 기존의 항공기보다 연료 소모량이 적어 미 공군 수송기 및 대형 급유기로 대체될 것으로 전망된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