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의 전환’이 대박 신화 낳았다

[월요신문 김미화 기자] 최근 한국경제의 저상장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기업가 정신'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기업가정신은 도전, 혁신, 미래를 보는 안목, 사회적 책임 등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투자가 확대되고 생산과 고용이 늘 수 있기 때문. 즉, 기업가정신이 회복되면 경기도 회복되고 기업가정신이 쇠퇴하면 경기도 위축될 수밖에 없게 되는 셈이다.

<월요신문>은 기업가정신과 한 나라의 경제수준이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고 '열정을 꿈으로 만든 글로벌 CEO 이야기를 연재한다. 여덟 번째 순서로 미국의 사업가 '닉 우드먼(Nick Woodman)'의 기업가 정신을 살펴봤다.

   
▲ 닉 우드먼 고프로 창업주 겸 최고경영자.

지난해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Fortune)이 발표한 '올해의 경영인' 명단에 세계 액션카메라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 '고프로(GoPro)'의 창업자 닉 우드먼(40)이 이름을 올렸다.

닉 우드먼은 소비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디지털카메라와 캠코더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낸 기업가로, 고프로를 나스닥에 성공적으로 상장시키면서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CEO가 됐다.

일각에서는 그를 서핑 취미에서 착안해 만든 기업 하나로 일확천금을 거머쥔 CEO 정도로 평가절하한다. 하지만 그의 빛나는 성공 뒤에는 뼈아픈 실패가 있었다. 창업에 실패했으나 좌절하지 않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열정에 접목시켜 마침내 성공을 거머쥔 것.

서핑에 대한 열정이 사업으로 불붙어

고프로는 스마트폰 시장이 확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스마트폰을 통해 누구나 쉽게 동영상을 찍고 이를 유튜브 등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 올릴 수 있게 되면서 고프로의 액션카메라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게 된 것.

고프로의 제품은 2004년 첫 출시 이후 매년 판매가 증가해왔으며, 2012년에는 전 세계 웨어러블 카메라 시장에서 95%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같은 성공 비결에 대해 닉 우드먼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 덕분이었다고 설명한다. 사업 아이템인 액션카메라가 자신의 취미인 '서핑'을 하다가 나오게 된 아이디어였기 때문.

그는 고등학교 시절, 서핑에 빠지게 되면서 하고 있던 팀스포츠를 모두 그만두고 열광적으로 서핑에만 몰두하게 됐다. 그가 캘리포니아 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에 입학한 것도 대학 근처에 서핑을 즐기기 좋은 해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닉 우드먼은 "고교 시절 서핑을 처음 접했는데 큰 파도를 넘어설 때 전에 경험하지 못한 성취감을 느꼈다"며 "당시 서핑에서 인생의 목표를 발견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부모님은 내가 서핑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때 느낀 열정이 내 인생 최대의 계기가 됐다. 서핑에 대한 열정을 저버렸다면 지금의 고프로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잇단 사업 실패로 트라우마 겪기도

그러나 닉 우드먼의 사업이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그는 고프로를 창업하기 이전에 겪은 사업 실패로 트라우마를 갖기도 했다.

우드먼의 첫 창업은 엠파워올닷컴(EmpowerAll.com)이라는 업체였다. 2달러 이하 전자제품을 파는 일종의 전자제품 천원샵이었는데 제대로 시작도 해보기 전에 문을 닫게 된다.

이후 대학을 졸업한 우드먼은 1999년 친구들과 두 번째 창업에 도전한다. 당시 그는 온라인 기업에 대한 투자 열풍을 기회로 벤처캐피털을 통해 390만달러를 투자받아 실리콘밸리에 펀버그라는 온라인게임 업체를 세웠다.

하지만 이듬해 고평가됐던 인터넷 기업들의 거품이 꺼지면서 또 한번 사업 실패를 겪게 된다. 빈털털이가 된 그는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서핑여행을 떠났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우드먼이 돌아갈 수 있던 곳은 바다였던 것이다. 인도네시아 해변에서 서핑을 하던 도중 문득 자신이 거대한 파도를 뛰어넘는 찰라의 모습을 촬영하고 싶었다.

일반적인 카메라 장비로는 쉽지 않았던 탓에 35㎜ 필름 카메라를 고무줄로 손목에 묶어 서핑장면을 촬영했다. 이때 불현 듯 깨닫는다. 사업 가능성이었다.

이후 닉 우드먼은 직접 익스트림 스포츠용 카메라 개발에 나서게 된다. 전 세계 액션카메라 시장을 장악한 고프로 신화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시작은 순탄하지 못했다. 이미 사업 실패를 경험한 그에게 투자자들은 선뜻 기회를 주지 않았다. 당시 우드먼의 사업 밑천은 본인의 전재산 3만달러와 부모가 투자한 23만5000달러가 전부였다.

이때부터 그는 개인 생활은 포기한 채 하루 종일 시제품을 만드는 등 뼈를 깎는 노력을 하게 된다. 트럭 운전부터 영업, 디자인, 고객지원 등의 업무를 혼자서 했으며, 비용을 아끼기 위해 자신이 직접 공구를 이용해 시제품을 만들었다. 심지어 물을 마시기 위해 부엌으로 향하는 30초의 시간을 아끼려고 물주머니 가방을 부착하기도 했다.

훗날 당시를 회상하며 우드먼은 "또 다시 사업이 망하면 세상을 등질 생각을 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하루 18시간씩 4년간 죽으라고 일했다"고 말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성공의 원동력

그의 이런 노력은 실적으로 이어졌다. 2004년 미국의 한 스포츠박람회에서 처음 선보인 고프로의 액션카메라가 그해에만 총 230만대가 팔리는 대박을 터뜨리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선풍적인 고프로의 인기에 투자는 이어졌다. 2011년 리버우드캐피털 등이 8800만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2012년에는 대만의 휴대폰 제조기업 폭스콘이 2억달러 규모 투자를 결정했다. 사업에 실패한 서퍼가 10년 만에 억만장자 사업가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이와 관련 닉 우드먼은 "오히려 실패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고프로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나는 고프로가 펀버그 때처럼 실패한 사업이 될까봐 두려웠다. 그 두려움이 내 모든 것을 바쳐 일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현재 우드먼은 고프로의 사업영역을 액션캠이라는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무인기(드론), 수중로봇 등 다양한 수단에 접목해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고프로를 하드웨어 기업을 넘어선 콘텐츠 기업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밝혔다.

고프로의 슬로건인 "Go Pro, Be a Hero(프로처럼 하라. 영웅이 돼라)"라는 말을 자신의 삶에서 그대로 실현한 닉 우드먼. 그는 "진화하지 않으면 죽음 밖에 없다(Evolve or die)"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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