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스텔스 ‘검은 가오리’ 위명 떨쳐

 

[월요신문 이신영 기자] 캐나다 자유당이 10년 만에 정권 교체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차세대전투기 논쟁이 있었다. F35 도입 비용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은 국론을 분열시킬 만큼 주요 아젠더로 부상했으며, 분노한 캐나다 국민들은 투명성을 앞세운 야당의 손을 들어줬다.

‘캐나다의 오바마’로 불리는 저스틴 트뤼도는 총리 취임 직후 전임 총리의 탄핵 사유가 된 F-35도입을 전격 취소하고 이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이는 국방사업에 있어 높아진 대정부 불신이 정권교체로까지 이어진 사례로, KFX사업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 크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은 현재 군수산업 관련 각종 논란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데 있어 국방 문제를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 문제는 비용이다. 차세대전투기사업의 경우, 천문학적 예산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상대 업체에 대한 정보와 고도의 협상력이 요구된다. 이에 <월요신문>이 KFX사업 상대업체인 록히드마틴사를 비롯,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군수산업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미국 버지니아 주 폴스처치에 위치한 노스롭 그루먼(Northrop Grumman)은 록히드마틴, 보잉 다음으로 규모가 큰 방위산업체다. 항공모함을 위시한 군함과 군용기, MD시스템, 인공위성 제작을 주 업무로 하는 항공우주 기업이다. 올해 기준으로 약 6만4300명이 근무 중이며, 웨스 부시(Wes Bush)가 사장 겸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다.

노스롭 그루먼의 매출액(2013년 기준)은 247억달러에 달한다. 같은 기간 동안 영업이익은 32억달러, 순이익은 19억달러를 기록했다. 자산 총액은 2013년 기준 264억달러다.

 

창립자 잭 노스롭의 열망

노스롭 그루먼은 지난 1994년 노스롭사가 그루먼을 합병하면서 현재의 사명이 됐다. 노스롭의 창립자 잭 노스롭(Jack Northrop)은 미국 뉴저지 주 뉴어크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 주 산타바버라에서 자랐다. 그는 록히드 형제가 설립한 ‘록히드’를 통해 1916년 항공업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현재 ‘B-2’로 대표되는 전익기를 주로 연구하는 항공기술자로 거듭났다. 전익기란 꼬리 날개가 없는 고정익 항공기로서 날개가 동체의 전체 혹은 대부분을 구성하는 항공기를 말한다.

잭 노스롭은 1927년 에이비언 코퍼레이션을 설립했으나 2년 뒤 회사를 유나이티드 항공수송회사에 매각했다.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잭 노스롭은 자신의 이름을 딴 항공기 제조기업 ‘노스롭’을 설립해 블랙위도우(Black widow)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P-61’을 개발해 미군에 납품했다. 전쟁동안 노스롭은 전익기 형태의 폭격기 개발에 열을 올렸다. 사장이자 엔지니어이기도 한 잭 노스롭은 전익기에 대한 열망이 컸다. 그러나 당초 계획과 달리 전쟁이 끝날 때까지 완성하지 못했다. 전익폭격기 ‘XB-35’는 전쟁이 끝난 후인 1946년 완성된다. 하지만 시대는 이미 프로펠러 엔진에서 제트엔진으로 바뀐 상황. 이에 노스롭은 ‘XB-35’를 기반으로 제트엔진을 접목시킨 전익폭격기 ‘YB-49’ 개발에 박차를 가했지만, 1948년 시험비행 도중 추락해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나 사업계획이 취소됐다. 때문에 이 기체들은 연구용으로 남았다.

노스롭은 냉전 초창기 ‘F-89’를 납품해 회사를 운영해오다 60~70년대 동안 경량급 전투기 ‘F-5’의 성공에 힘입어 메이저 군수기업으로 올라섰다. 한국 공군도 미국의 원조를 받아 ‘F-5’를 도입했다. 이 기체는 현재도 25개국에서 약 1700여기 정도가 현역 기종으로 활동 중이다. ‘F-5’를 기반으로 한 파생기체가 많이 제작되는 등 기본 설계 자체가 훌륭하다는 평이 다. 성능 면에서 비교되진 않지만, 가상비행전투에서 베테랑 조종사가 탄 ‘F-5’가 신참 조종사가 조종하는 ‘F-16’이나 ‘F-15’를 격추하는 일도 적지 않다.

   
▲ YB-35. <사진출처=노스롭그루먼>

‘F-5’로 큰 수익을 올리던 노스롭은 후속 기종으로 ‘F-20’을 자체 개발해 미 동맹국에 수출을 시도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F-20’ 도입 전인 1984년 ‘F-20 Show’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참관 중인 가운데 기체가 추락, 조종사가 사망하는 불상사를 겪고 캐나다에서도 추락사고가 일어났다. 결국, 1988년 ‘노스롭 스캔들’ 대형 로비 사건이 터져 주도권이 록히드마틴의 ‘F-16’에 넘어가게 되고, 군용기 부문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B-2 개발 성공으로 반석에 올라

냉전이 심화되던 시절, 미국은 적의 방공망을 뚫고 폭격한 후 안전하게 귀환할 수 있는 스텔스 기체의 필요성을 느꼈다. 미 국방부는 선진기술폭격기(ATB) 사업을 군수업체들에 제안했고, 록히드와 보잉, 노스롭, 레이시온이 경쟁을 벌였다. 노스롭이 이전에 개발했던 ‘YB-49’는 지상관제 레이더에서 모습이 사라지는 현상이 자주 일어났다. 당시에는 레이더 오작동으로 여겼으나, 이것이 스텔스 효과였다. 노스롭은 전익기 개발 경험을 살려 ATB 사업에 최종 선정 됐고, 전익폭격기 ‘B-2’를 완성시켰다. ‘B-2’의 전익기 설계는 긴 항속거리와 많은 폭장량, 뛰어난 스텔스 기능을 가능하게 했고 ‘검은 가오리’라는 별칭이 붙게 됐다. 노스롭은 ‘B-2’의 성공으로 사세를 회복했다.

   
▲ B-2. <사진출처=노스롭그루먼>

냉전이 종식된 후 미군의 무기발주량은 급격히 감소했다. 많은 군수업체들은 경영위기를 겪으며 M&A 바람이 불었고, ‘B-2’ 납품으로 자금사정이 나았던 노스롭은 1994년 그루먼을 인수하며 ‘노스롭 그루먼’으로 사명을 바꾼다. 이후 휴즈와 레이더 전자부품부문 웨스팅하우스, 로지콘 등을 합병하고 뉴포트 조선소를 인수하는 등 몸집을 불려나갔다.

노쓰롭 그루먼은 현재 ‘F-35’와 ‘F-22’ 레이더 부문을 담당하고 있고 차기 항공모함 ‘제럴드 R. 포드급 항모’의 주 계약자다. 또한, ‘글로벌호크’와 같은 각종 무인항공기(UAV)도 제작하고 있다. 레이시온과 함게 레이더 분야의 강자로 ‘E-737’ 등 대부분의 조기경보기도 노스롭 그루먼의 손을 거쳤다.

 

차세대 전략폭격기 사업자 선정

노스롭 그루먼은 지난 10월 ‘B-2’와 ‘B-52’ 등을 대체할 미 공군 차세대 장거리 전략폭격기(LRSB) 사업자로 선정됐다. 노스롭 그루먼은 그동안 차세대 전략폭격기 개발 사업을 따내기 위해 보잉-록히드 마틴 컨소시엄과 치열한 수주 경쟁을 벌였고 ‘B-2’ 개발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최종 계약자로 선정된 것. LRSB에는 러시아 및 중국 등 최근 공군 개편에 나선 국가들을 상대로 탐지망에 걸리지 않고 비행이 가능하도록 스텔스 기능을 갖추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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