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家 '형제의 난' 2차전


금호가(家) 박삼구, 박찬구 두 형제 사이의 싸움이 좀처럼 끝날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비자금 조성과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매각 등의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박찬구 회장은 세 번째 소환이 있었던 7일, 금호석화 김성채 대표이사의 이름으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 임원 4명을 사기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 조사과정에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팔았다는 진술이 박삼구 회장의 측근인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들로부터 나온 만큼 혐의가 박삼구 회장 측에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처럼 박찬구 회장 측은 검찰수사가 목을 조여 오자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물론, 박삼구 회장의 아들까지 거론하며 물귀신 작전을 보이고 있다. 정말로 자신의 무혐의를 밝혀내기 위함인지, 아니면 혼자 죽기 어려운 심경에 형에게 복수할 겸 '같이 죽자'는 식으로 달려들고 있는 것인지 많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009년 재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금호가 '형제의 난'이 재현되고 있는 모양새다.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차맹기)는 7일 비자금 조성과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매각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을 세 번째 소환했다.
검찰이 4월 12일 금호석화 본사를 압수수색하며 공개수사를 시작한 지 52일 만이었다. 서울 남부지검 형사 6부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박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추가 조사를 진행했다.
당일 청사에 도착한 박 회장은 이번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연관성이 있는지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관련이 있다"는 짧은 대답을 남겼다. 자신이 미공개 내부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팔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그리고 같은 날,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측은 박삼구 회장과 금호그룹 임원 4명을 사기 및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이에 따라 두 형제 간 법정 다툼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금호가 제2차 형제의 난이 조심스럽게 머리를 드는 듯 했다.

 

잘못은 형에게?

금호석유화학 측이 검찰한 고발장의 내용은 '금호아시아나가 2009년 대우건설 매각을 내부적으로 결정한 채 산업 은행과 재무 구조 개선 약정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금호석화와 박찬구 회장은 2009년 6월 1일 금호그룹이 산업은행과 재무 구조 개선 약정을 맺기 전 대우건설을 매각하기로 결정한 사실을 알지 못했으며, 금호그룹이 약정 전 대우건설을 팔기로 했다면 산업은행을 속인 것이고, 산업은행이 이를 알고도 약정을 체결했다면 양자가 공모해 시장에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검찰 조사과정에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팔았다는 진술이 박삼구 회장 측근인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들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혐의는 박삼구 회장 측에 있다고도 주장했다.
홍순화 금호석화 회장부속실장은 박삼구 회장 등에 대한 고발장 접수에 앞서 "박찬구 회장에 대한 악의적인 정보가 검찰 쪽에 들어가고 있다"면서 "이는 박찬구 회장을 곤경에 빠뜨려 금호석화를 뺏으려는 박삼구 회장의 의도"라고 노골적인 의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찬구 회장 측이 이처럼 형 박삼구 회장을 고발하고 금호아시아나를 공격하게 된 데에는 자신이 검찰 조사를 받게 된 것이 형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박찬구 회장 측은 계열사도 아니고 협력업체에 있는 비자금 계좌를 검찰이 손에 넣은 것은 박삼구 회장 측의 제보 없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과 금호아시아나가 이른바 '플리바게닝'을 했다고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한 쪽에서는 "비자금 계좌에서 금호석화 쪽으로 흘러들어간 자금을 검찰이 포착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실제 비자금 계좌는 금호아시아나 측이 관리했는데 금호석화만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는 금호석화 관계자의 전언이 전해지기도 했다. 비자금 몸통이 따로 있는데 곁가지인 금호석화만 검찰 조사를 받는 것에 대해 억울함과 불만을 내비친 것이다.
박찬구 회장 또한 최근 검찰에 출석하면서 "죄 지은 사람은 따로 있을 것이다. 누군지는 알아서 판단하라"고 말한 바 있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을 간접적으로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

 

"형도 조카들도 같이 가자"

박찬구 회장은 2000년 이후 지인과 처남이 운영하는 계열사나 협력업체와 거래하는 과정에서 거래대금을 부풀려 지급한 뒤 차액을 돌려받는 수법 등으로 200억~300억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와 함께 2009년 6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100억원대의 부당 이득을 본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2009년 6월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대우건설을 매각하기 전에 박찬구 회장이 이 사실을 미리 알고, 대우건설 매입 손실 관련 사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금호산업 지분을 전량 매각해 100억원대의 손실을 회피한 혐의인 것이다.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 인수과정에서 재무적투자자(FI)들에게 풋백옵션을 제시하면서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맞았고, 결국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2009년 6월 1일 재무개선약정을 체결하면서 같은 해 7월 말까지 제3의 FI유치를 하지 못하면 대우건설을 매각키로 합의했다.
그런데 재무개선약정 체결 이후 대우건설 매각 발표 때까지 한 달 새 박찬구 회장과 그의 장남 박준경 금호석화 상무보가 금호산업 지분을 모두 처분한 것이다. 금호산업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이자 대우건설의 대주주였기 때문에 대우건설이 매각되면 위기를 맞게 되는 상황이었다.
검찰은 금호아시아나가 산업은행과 재무개선약정 체결 이전부터 매각을 추진했던 것으로 의심하고, 박찬구 회장이 이 정보를 이용해 금호산업 지분을 서둘러 처분한 것으로 보았다.
이에 대해 박찬구 회장은 자신은 2009년 6월 대우건설 매각 당시 의사결정 라인에서 배제돼 있었고, 박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구 회장도 비슷한 시기에 지분을 팔았는데 자신만 검찰의 수사를 받는 것이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번 비자금 문제가 자신이 경영하지 않았던 시기에 이뤄진 일이기 때문에, 박삼구 회장 측이 오히려 직접적으로 관여돼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또 박 회장은 박삼구 회장의 아들까지 거론하며 자신의 무혐의를 강조하고 나섰다.
금호석유화학 측은 "박찬구 회장이 주식을 매매할 당시 (박삼구 회장의 아들인)박세창 전무(금호타이어) 등 박삼구 회장 측도 금호산업 주식을 매도하고 금호석화 주식을 매수했다"며 "박세창 등의 주식매매 경위와 동기를 조사하면 박찬구 회장의 주식매매 동기도 경영분리를 위한 적합한 행위였음이 확인될 것"이라고 밝혔다.
때문에 박찬구 회장 부자에게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 혐의를 적용한다면 조카인 박세창 전무(박삼구 회장 아들)와 박철완 상무보(고 박정구 전 회장 아들)의 거래도 같이 봐야 한다며 이른바 '물귀신 작전'을 들고 나섰다.
실제로 박세창 전무와 박철완 상무보도 당시 금호산업 주식을 대거 처분하고 금호석유 주식을 매집했지만, 시기는 다소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무는 대우건설의 매각 발표 직후인 7월 2∼6일 112만6000여주를 팔고 금호석유 주식을 44만6000여주를 매입했으며, 박철완 상무보도 같은 기간 금호산업 82만6000여주를 던지고 금호석유 44만6000여주를 매입한 것이다.
한편 박찬구 회장 측은 박삼구 당시 그룹 회장 일가가 그룹의 경영에 가장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었던 만큼, 자신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 얼굴에 침 뱉기

재계에서는 박찬구 회장이 형을 고발하고 조카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는 것을 두고, 정말로 억울해서 취하는 '호소'라는 관측과 '나 혼자서는 죽지 않는다'는 식의 '공멸작전설', '형 때문에 이 처지가 됐으니 형도 당해봐라'는 식의 '보복설' 등 온갖 추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친형제인 두 사람이 과거를 잊고 화해를 기미를 보이는가 싶었던 시점에서 또 다시 다툼의 조짐을 보이고, 2009년 여름 가까스로 피해갔던 법정다툼으로까지 번지려 하는 모습이 결코 보기 좋지 만은 않다는 데에는 재계가 모두 시각을 같이 하고 있다.
계열분리와 경영권 회복 등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이 두 형제 간 싸움으로 경영정상화까지 더욱 멀어질 것을 우려하는 한편, 박찬구 회장이 누워서 침뱉기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적지 않다.
박찬구 회장과 그의 형 박삼구 회장, 두 형제의 싸움은 2009년 경영권 다툼으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대우건설을 무리하게 인수하는 과정에서 그룹이 휘청거리자 동생 박찬구 회장은 형제간 동등한 지분 보유 약속을 깨고 지주회사격인 금호석유화학의 지분을 매집했고, 이후 두 형제는 경영권 다툼을 벌이며 금호아시아나와 금호석유화학으로 회사를 쪼갰다.
형 박삼구 회장은 동생 박찬구 회장을 해임하고 자신도 경영에서 물러남으로써 두 형제는 동반 퇴진을 했다. 그리고 지난 해 3월 박찬구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데 이어 박삼구 회장도 11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두 형제는 지난해 어머니 빈소에서 만나 화해의 제스처를 보여 이후 무난하게 독자경영을 추진해오면서 과거를 잊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2년도 채 되지 않아 또 다시 '형제의 난'이 시작되면서 또 한 번 재계가 들끓는 한편, 두 형제는 이제 더 이상 건너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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