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자존심, 전 세계를 날다

▲ 라팔. <사진출처=다쏘>

[월요신문 이신영 기자] 캐나다 자유당이 10년 만에 정권 교체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차세대전투기 논쟁이 있었다. F35 도입 비용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은 국론을 분열시킬 만큼 주요 아젠더로 부상했으며, 분노한 캐나다 국민들은 투명성을 앞세운 야당의 손을 들어줬다.

‘캐나다의 오바마’로 불리는 저스틴 트뤼도는 총리 취임 직후 전임 총리의 탄핵 사유가 된 F-35도입을 전격 취소하고 이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이는 국방사업에 있어 높아진 대정부 불신이 정권교체로까지 이어진 사례로, KFX사업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 크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은 현재 군수산업 관련 각종 논란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데 있어 국방 문제를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 문제는 비용이다. 차세대전투기사업의 경우, 천문학적 예산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상대 업체에 대한 정보와 고도의 협상력이 요구된다. 이에 <월요신문>이 KFX사업 상대업체인 록히드마틴사를 비롯,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군수산업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파리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쏘 그룹(Dassault Group)은 항공기 개발 등을 주력분야로 삼고 있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기업이다. 군수품뿐만 아니라 전기자동차와 우주장비제조, 소프트웨어 개발 등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 주력 자회사 다쏘 항공(Dassault Aviation)은 전 세계에 걸쳐 약 1만8016명이 근무 중이며, 에릭 트레피어(Éric Trappier)가 사장 겸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다.

다쏘 항공의 매출액(2014년 기준)은 30억유로에 달한다. 같은 기간 동안 당기순이익은 3억9800만유로를 기록했다.

 

다쏘의 시작

다쏘의 창립자 마르셀 다쏘(Marcel Dassault)의 본명은 마르셀 블록(Marcel Bloch)이었다. 마르셀 블록은 1892년 파리의 의사가정에서 태어나 프랑스 명문기술학교 리세 꽁두르세 학교에서 전자·전기공학 기술고등학원 과정을 이수했다. 1913년엔 국립 항공우주 대학원을 졸업했고, 깔레-뫼동 항공연구소에 입사해 항공 산업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이 시설은 프랑스에서 최초로 세워진 항공 전문 연구소였다. 초기 프랑스 항공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던 곳이었으나, 학구적인 분위기는 혈기왕성한 청년 마르셀에겐 맞지 않았다.

창의적인 엔지니어였던 마르셀 블록은 자신의 능력을 자유롭게 펼치기 위해 1929년 자신의 이름을 딴 마르셀 블록 항공사(Société des Avions Marcel Bloch)를 설립해 프랑스군에 항공기를 납품했다. 그러나 1936년 프롱 포퓌에르(인민 전선)이 정권을 잡자 대대적 개혁을 명분으로 블록사를 국유화해버렸다. 이때 마르셀은 대표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고 현 다쏘 항공의 전신인 마르셀 블록 유한회사(Société Anonyme des Avions Marcel Bloch)를 설립했다.

마르셀 블록 유한회사는 구급·연락기 ‘MB.80’을 프랑스군에 납품하면서 발 빠른 성장을 보였다. 이 기체의 다양한 파생형인 고속폭격기 ‘MB.170’과 중폭격기 ‘MB.162’ 등을 개발해냈으며, 쌍발폭격기 ‘MB.131’은 수출에도 성공했다.

   
▲ MB.131. <사진출처=다쏘>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마르셀 블록 유한회사는 성장의 발목을 잡혔다.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며 프랑스가 독일에게 패했기 때문. 당시 독일의 공군력은 프랑스 등 연합국보다 근소하게 앞서고 있었다. 수적으로는 연합군이 앞섰지만 독일이 보유한 전투기는 성능에서 연합국을 압도했다. 영국은 그나마 독일 전투기를 맞상대 할 수 있었던 ‘스핏파이어’를 본토 방어를 이유로 파견하지 않았고, 프랑스는 ‘D.520’ 같이 뛰어난 전투기가 있었으나 1939년 9월 독일의 선전포고 이후 양산에 돌입해 수적으로 열세였다. 이 때문에 개전 초기 프랑스군은 제공권을 순식간에 박탈당했고 결국 패했다.

 

마르셀, 나치에 저항하다

프랑스 패망 후 마르셀 블록은 독일군에 협력하면 얼마든지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지만 항공기 기술 제공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그는 악명 높은 부켄발트(Buchenwald) 수용소에 감금돼 수차례 생명의 위협을 겪었다. 이후 연합군의 의해 해방되어 겨우 목숨을 건졌다.

종전 후 드골 장군이 ‘위대한 프랑스’를 외치며 국가 재건에 나섰고, 강력한 공군 건설에 나섰다. 이에 마르셀 블록이 응하며 회사를 재건했다. 마르셀 블록의 형 다리우스 폴 블록(Darius Paul Bloch)은 프랑스 육군 장군이자 레지스탕스 지휘관으로 활약했다. 그는 ‘돌격(d’assault)’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다쏘라는 가명을 썼다. 마르셀 블록은 형제의 영웅적 행보를 기리기 위해 자신의 성과 사명을 블록(Bloch)에서 다쏘(Dassault)로 바꿨다.

시대에 뒤쳐진 전투기는 숫자가 많아도 무의미하다는 경험을 톡톡해 했던 마르셀 다쏘는 세계대전 종전 이후 제트기가 하늘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는 흐름을 정확히 꿰뚫었고, 프랑스 최초 제트전투기인 ‘M.D.450 우라강(Ouragan)’ 제작에 성공했다. 프랑스어로 태풍을 의미하는 우라강은 1950년부터 양산돼 실전배치 됐고, 당시 파일럿들의 호평을 받았다.

   
▲ M.D.450 우라강. <사진출처=다쏘>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전투기 성능의 척도는 속도였다. 그런데 강력한 제트 엔진만으로 속도를 향상시키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빠른 속도에 안정적으로 비행할 수 있는 기체 구조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다양한 방식의 연구가 진행됐다. 이때 삼각익도 하나의 중요한 트렌드가 됐다.

다쏘 항공은 차세대 초음속 전투기 개발에 삼각익을 도입했고, 1956년 유럽제 전투기 ‘미라주 III’를 탄생시켰다. 미라주 시리즈의 특징인 삼각익은 현재 최신예 전투기 ‘라팔’까지 이어져 내려오면서 다쏘 항공의 상징이 됐다.

‘미라주 III’는 마하 2의 초음속 비행이 가능한 고성능 전투기면서도 구조나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간단했다. 이에 저개발 국가에도 운용이 가능해 인기가 좋았고, 총 1422대가 생산돼 이스라엘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스위스 등 20여개국에 수출됐다. ‘미라주 III’는 포클랜드 전쟁에서 소련제 전투기는 물론 서방권인 미국제, 영국제 전투기와도 교전을 벌였고, 중동 전쟁 당시 이스라엘군이 ‘미라주 III’를 사용해 뛰어난 전과를 올리면서 기체의 성능을 입증했다. ‘미라주 III’은 다쏘 항공을 세계적인 전투기 제조업체 반열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이었다.

   
▲ 미라주 III. <사진출처=다쏘>

‘F-16’에 맞선 ‘미라주 2000’

‘미라주 III’의 성공에 힘입어 다쏘 항공은 1960년 초 삼각익이 아닌 주익과 꼬리익을 채용한 ‘미라주 F1’을 개발했다. ‘F1’은 삼각익을 버린 덕분에 비교적 많은 연료를 실을 수 있었다. 1973년부터 프랑스 공군에 배치됐고, 다쏘 항공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F-16’의 등장으로 ‘F1’은 위기에 빠졌다.

나토회원 4개국(벨기에와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의 전투기 도입 사업에서, ‘F1’을 제치고 ‘F-16’이 차기 전투기로 선정된 것. ‘F-16’은 ‘F-1’에 비해 한 세대 앞선 기술력의 단발 전투기였다. 위기감에 빠진 다쏘 항공은 ‘F-16’에 대항할 수 있는 신형 전투기 개발에 나섰다. 다쏘 항공은 삼각익을 다시 채택했다. 삼각익은 초음속 비행에는 뛰어난 비행성능을 자랑했지만, 저공비행과 단거리 이착륙 성능은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F-16’에 사용된 전자식 조정 방식을 도입했다. 컴퓨터의 도움으로 조종하기 때문에 이착륙시 안정적인 비행성능을 유지할 수 있었다. 20여개월만에 개발을 끝낸 ‘미라주 2000’은 1982년 프랑스 공군에 배치됐다. 이 기체는 1991년 걸프전에 실전 참가했다. 또한, 1996년 키프로스 분쟁에서 그리스 공군의 ‘미라주 2000’이 터키 공군 ‘F-16’을 격추시키는 활약을 보였다. 2007년까지 총 600여대가 생산됐으며, 프랑스 공군을 포함 8개국에서 운용중이다. 동북아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대만 공군이 이 기체를 운용하고 있으며, 60대를 도입했다. 프랑스 공군은 2016년부터 전폭기 ‘미라주 2000D’을 시작으로 2020년 이후에는 운용중인 ‘미라주 2000’ 대부분이 ‘라팔’로 교체될 예정이다.

 

라팔의 탄생과 성장과정

다쏘 항공은 1980년대부터 ‘라팔’을 개발해왔으며 1984년 첫 비행을 성공시켰다. 2001년 프랑스 공군에 배치됐고, 현재 프랑스공군 주력기로 활약 중이다. ‘라팔’은 소형 기체에 많은 폭장량과 우수한 기동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했고, 전자전 장비에도 충실했다. 2008년 Red Flag 훈련에선 ‘F-16’을 상대로 6승 2패라는 스코어를 기록해 근접전에서도 우수한 성능을 입증했다.

라팔은 우리나라 FX 사업 물망에 올랐으나 ‘F-15’에 밀려 선정되지 못했다. 이후 다쏘 항공은 한국 전투기 사업에 일체 입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라팔은 한국 뿐 아니라 지난 10년간 싱가포르와 브라질, UAE 등지에서 연달아 수주에 실패, 수모를 겪었다. 2012년에는 인도정부가 라팔을 차기 전투기로 선정, 126대를 납품할 계획이었으나 마지막에 가서 취소했다. 라팔은 그러나 올해부터 다시 활기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이집트가, 4월에는 카타르에서 구매계획을 발표하면서 ‘안 팔리는 전투기’의 오명을 벗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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