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복지는 일자리” 경제 철학에 ‘기대’

▲ 국토교통부 장관 시절 유일호 경제부총리 내정자 <사진제공=뉴시스>

[월요신문 허인회 기자] 8개월간의 국토교통부 장관직을 수행하고 지난 달 국회로 돌아온 유일호 새누리당 의원(서울 송파구을)이 한 달여 만에 다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내정됐다. 박근혜 정부의 세 번째 경제부총리로 집권 하반기 경제 정책을 이끌 수장으로 내각에 복귀한 것.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21일 춘추관에서 개각 명단을 발표하면서 "유 내정자는 새누리당 정책위의장과 국회 기획재정위원, 한국 조세재정연구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최근까지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재직한 바 있다"며 "경제 정책과 실물 경제에 대한 풍부한 식견과 정무적 역량을 바탕으로 4대 개혁을 통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경기 활성화를 추진해나갈 적임자"라고 밝혔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내정자는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조세연구원 원장과 한국개발연구원(KDI)교수, 한국경제학회 이사, 한국 금융학회 이사를 지내며 경제 정책 전문가로 활동했다. 참여 정부에서는 대통령 자문 조세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유 내정자가 첫 정계 입문한 때는 18대 총선에서다. 당시 한나라당 소속으로 서울 송파을에 출마해 당선됐고 19대 총선에서 지역구 재선에 성공했다.

유 의원은 정계 진출 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정무위원회를 거쳐 당 대변인, 당 정책위원회의장을 역임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2012년 대선 직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비서실장에 발탁된데 이어 지난 2월부터 10월까지 국토교통부 장관직을 수행했다.

 

야당 거물 정치인이었던 부친

유 의원의 정계 진출에는 부친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부친이 고(故) 유치송 전 민주한국당 총재였기 때문. 유 전 총재는 1948년 신익희 국회의장의 비서로 국회에 입문해 신민당 최고위원과 민주한국당 총재를 지낸 5선의 거물급 야당 정치인이었다.

유치송 전 총재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비슷한 시기 YS와 DJ는 ‘선명 야당론’을 내세우면서 ‘유신체제 타도’ 등 강경 투쟁을 벌인 반면, 유 전 총재는 유진산, 이철승 등과 원내 투쟁을 주장하며, 온건 노선을 걸었다. 1981년에는 대통령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로 치러진 제12대 대통령 선거에 제1야당인 민한당의 대통령후보로 출마했지만 전두환 당시 후보에게 밀려 2위로 그쳤다. 이후에도 ‘정책 야당’을 표방하며 온건 노선을 이어나갔지만 ‘관제 야당’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하야 권고를 건의한 야당 6인 멤버에 속했던 유 전 총재는 1994년 박 전 대통령 서거 15주년 추모위원회 고문에 이름을 올렸다.

 

YS DJ와 어린시절부터 인연 맺어

유 내정자는 이런 부친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유명 정치인과 어울릴 기회가 잦았다. 이 때의 인연은 훗날 그의 성장에 발판이 된다. 1996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신민당에서 함께 야당 활동을 한 유치송 총재의 아들이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그를 조세연구원 부원장으로 발탁했다. 당시 유 내정자의 나이는 불혹을 갓 넘겼을 때였다.

김대중 대통령도 유 내정자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유치송 총재와 인연이 있었던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된 이듬해인 1998년 유 의원에게 조세연구원장 직책을 맡겼다. 선대의 인연이 입신양명을 위한 날개를 달아 준 셈이다.

   
▲ 18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회의에서 나란히 앉아있는 당시 박근혜 의원과 유일호 의원. <사진제공=뉴시스>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도 남달라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 또한 남다르다. 제18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활동할 당시 유 의원의 자리는 박근혜 의원 바로 옆자리였다. 이런 연유로 자주 대화를 나누며 친분을 쌓게 되었고, 의원회관에서도 같은 층 건넛방을 쓰며 자주 접하게 된다. 이때 박근혜 의원은 유 의원의 성실함에 높은 점수를 줬다고 한다.

2012년 대선 당시 유 의원은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아 박근혜 후보의 수도권 승리에 힘을 보탰다는 평가다. 대선 직후에는 당선인 비서실장으로 발탁돼 2개월간 박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유 의원이 항상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다. 정계 입문 뒤 비교적 평탄한 길을 걸어왔으나 19대 총선과정에서 위기를 맞았다. 당시 유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송파을에 재도전한 상황. 초선이지만 대통령의 신뢰를 받고 있는 유 의원과 강남 공략을 위해 전략 공천된 천정배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의 대결이었다. 개표 결과, 유 의원이 49.9%를 획득, 천 후보(46%)를 3919표차로 제치고 승리했다. 강남갑(4만1073표차)이나 강남을(2만4927표차) 등과 비교하면 진땀 흘린 표차다.

 

야당의원과 원만한 관계 장점

유 의원은 박근혜 정부 경제 사령탑으로 현오석, 최경환에 이어 세 번째 수장에 올랐다. 발탁배경으로 여러 해석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온화한 품성 덕분이라는 견해가 많다. 국토부 장관으로 발탁됐을 때 윤두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은 “조세연구원장 시절 2년 연속 경영평가 1위를 받는 등 조직 관리능력과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 주변 신망이 두터워 주거 안정과 건설경기 활성화를 이룰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유 내정자는 야당의원들과도 두루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인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조세연구원장을 지냈기 때문에 일찍부터 야당의원과 교류가 깊었고 노무현 정권에서 대통령 자문 조세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것도 대야관계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해석된다.

여권 관계자는 “합리적인 성격에 원만한 대인관계를 돋보이는 유 의원이어서 대야관계도 원만하게 풀어나갈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경환 부총리의 경우, 국정감사를 비롯해 여러 경제 현안을 놓고 야당과 날선 공방을 세우는 모습이 자주 연출됐다.

국토부 장관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며 인사 검증을 한차례 거친 것도 유 내정자에겐 플러스 요인이다.

 

박대통령 러브콜 세 차례 받아

유 의원은 현역 의원(서울 송파을)이다. 그의 지역구는 '강남3구(강남-서초-송파)'로 구분되는 새누리당 텃밭. 새누리당은 지금까지 주로 정치 신인들에게 주로 이 지역에 공천을 줘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유 의원 역시 이러한 당 관례의 수혜자였다.

19대 총선을 보면 이 지역구 출신 의원들은 대거 공천에 낙선했다. 18대 비례대표들 역시 강남3구를 제외한 곳에 공천신청을 해야만 했다. 이러한 가운데 ‘친박’인 유 의원은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을 장악하고 있던 상황에서 현역 의원 중 유일하게 공천을 받아 재선에 성공했다. 국토부 장관 퇴임 후 유 의원은 사석에서 “송파에서 3선을 하겠다”며 출마 의사를 확고히 했다는 후문이다.

그가 지역구 사수 의사를 저버린 것은 박대통령의 러브콜 때문이다. 유 의원이 총선에 불출마하면 당의 부담을 덜어 줄 수 있을 거라는 청와대의 현실적인 고려도 깔려 있다. 하지만 유 내정자가 박 대통령 임기 말까지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가계부채를 비롯해 저성장 늪에 허덕이는 한국 경제의 불안한 현실이 그의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일까. 유 내정자는 개각 발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중책을 맡아 정말 어깨가 무겁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면서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도 있겠지만 경제 정책은 일관된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구축해 놓은 경제 정책을 이어 나갈 뜻을 내비친 것.

일각에서는 조세·재정 전문가인 유 내정자가 거시·외환·금융 등의 분야를 다뤄본 경험이 적다는 것을 약점으로 든다.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당시 조세 ·재정 분야 외에는 뚜렷한 의정활동 성과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행정 경험의 부족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8개월 동안 국토부 장관을 지냈지만 행정 경험을 쌓기에는 짧은 시간이라는 지적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기획재정부는 예산편성, 조세정책, 경제부처 조정, 경제정책 수립, 외환시장 관리 등 정부 주요 경제정책과 관련된 분야가 10개 가까이 된다. 여기에 정책 조정 능력까지 겸해야 해 유 내정자가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저서로 본 유일호 경제철학의 핵심

경제 수장으로서 유일호 내정자의 경제철학도 궁금한 대목이다.

유 내정자의 경제 철학을 이해하려면 그의 저서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 내정자는 2011년 12월 저서 '건강한 복지를 꿈꾼다'를 펴냈다. 이 시기는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놓고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논란이 거세게 일던 때였다.

유 내정자는 이 책을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당시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과 공동으로 펴냈다.

저서에서 유 내정자는 “저출산·고령화와 양극화, 불안정한 경기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복지재정 확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부족한 재원은 불필요한 예산 삭감과 조세 시스템 개혁을 통해 마련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유 내정자가 말하는 조세 시스템 개혁은 증세가 아닌 ▲비과세 감면 축소 ▲세금 징수체계 개선 ▲체납세액 축소 등의 방식을 뜻한다.

유 내정자는 스스로 시장주의자라고 내세운다. 유 내정자는 "고용없는 성장의 문제는 구조개혁으로 해결해야 한다. 민간 경제활동이 더 자유롭도록 규제를 풀고 조세·금융정책이 제조업을 중심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한편 무상복지에 대해서는 "재원은 없고 구호만 있다"며 강하게 비판한다. 저서에서 그는 "복지국가의 이상이 저성장이라는 벽에 부딪히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미 국민연금, 건강보험을 비롯한 사회보험과 기초생활보장제도로 대표되는 공적부조, 근로장려세제 등 복지제도의 큰 틀이 갖춰졌기 때문에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보다는 기존 제도를 내실화하는 데 우리 복지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내정자의 이런 경제철학으로 미루어 박근혜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기조는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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