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사업가 “세상에 없는 옷 개발” 의지 불태워

[월요신문 김미화 기자] 최근 한국경제의 저상장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기업가 정신'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기업가정신은 도전, 혁신, 미래를 보는 안목, 사회적 책임 등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투자가 확대되고 생산과 고용이 늘 수 있기 때문. 즉, 기업가정신이 회복되면 경기도 회복되고 기업가정신이 쇠퇴하면 경기도 위축될 수밖에 없게 되는 셈이다.

<월요신문>은 기업가정신과 한 나라의 경제수준이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고 '열정을 꿈으로 만든 글로벌 CEO 이야기를 연재한다. 열두 번째 순서로 일본의 사업가 '야나이 다다시(68)'의 기업가 정신을 살펴봤다.

야나이 다다시. <사진출처=뉴시스>

"실패할 거라면 빨리 경험하는 편이 낫습니다. 빨리 실패하고, 빨리 깨닫고, 빨리 수습하는 것이 성공 비결입니다"

세계적 브랜드 '유니클로'로 잘 알려져 있는 일본 최대 의류 소매 업체 패스트 리테일링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의 말이다. 그는 옷 장사 하나로 아시아 의류업계 정상에 올라선 인물로,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으로 위기를 극복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야나이 회장의 자산은 209억달러(24조5888억원)으로, 일본 내 1위 부호이자 전 세계 41위 부자다. 야나이는 지난 2012년 블룸버그마켓매거진이 선정하는 영향력 있는 인물 50인에 이름을 올렸으며, 지난 2010년 미국 소매협회가 수여하는 '올해의 세계소매업자' 상을 일본인으로는 네 번째로 수여했다.

거품 경제 속 틈새시장 공략

야나이 다다시의 성공 신화는 야마구치현(山口縣) 소도시의 작은 양복점에서부터 시작됐다. 일본 명문대인 와세다대학을 졸업했던 야나이는 대기업에 들어가는 대신 2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았다.

이후 야나이 다다시는 1982년 일본 히로시마에 자신의 의류 브랜드인 '유니클로'를 개설하게 된다. 당시 유니클로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유니클로는 소비자 가격을 낮추기 위해 중국에서 원자재를 수입해 옷을 제작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당시만 해도 일본 소비자들의 관심은 유명 브랜드에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저렴한 옷’에 중점을 둔 그의 방식은 먹히지 않았다.

1991년 그는 사명을 ‘오고리상사’에서 ‘패스트리테일링’으로 바꾼다. 이후 고군분투하던 그에게 기회는 찾아온다.

1990년대 초 일본 경제는 거품이 꺼지면서 장기 불황에 접어들었다. 파산하는 기업이 잇따랐고, 소비심리는 극도로 위축됐다. 야나이 다다시의 숨겨진 본능이 이때 작렬한다. 지금이 유니클로가 주목받을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한 것. 야나이 다다시는 곧바로 불황 속 틈새시장 공략에 들어갔다. 뿐만 아니라 매장 분위기도 고객 취향을 최대한 반영했다. 영업 시간도 기존 업체와 달리 파격적인 시간대를 도입했다. 출근이나 등교 시간을 고려해 개장 시간을 오전 6시로 앞당긴 것.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를 계기로 유니클로는 일본 내 매장 수를 22개로 늘리며 일본의 중심인 도쿄에 입성하게 된다.

발열 소재 개발해 공전의 히트 쳐

“의류는 디자인·색상·무늬·소재·부속품·봉제·염색·천의 품질 등의 요소를 모두 감안해야 한다. 모든 게 다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소재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모 소재가 강화된 겨울용 의류 ‘후리스’다. 야나이 다다시는 불황 탓에 소비자들이 난방비를 아낄 목적으로 가볍고 따뜻한 겨울용 의류를 많이 구입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 판단은 적중했다. 후리스는 1998년 200만장, 1999년 850만장, 2000년에 2600만장이 팔리면서 공전의 히트를 쳤다.

하지만 유니클로가 탄탄대로를 걸었던 것은 아니다. 수년간 이어지던 후리스의 인기가 사그라지면서 직격탄을 맞은 것. 야나이 다다시는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새 시장 개척에 나선다. 야나이 회장은 2002년 섬유화학 업체인 도레이를 직접 찾아가 ‘세상에 없는 혁신적인 옷’의 개발을 의뢰했다.

도레이는 제안을 거절했지만 야나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끈질긴 설득 끝에 마에다 카츠유키 도레이 회장은 유니클로를 돕는데 발벗고 나선다. 이후 유니클로는 제품 개발과 생산은 도레이에게 맡기고, 기획과 판매에 역량을 집중했다. 대형 섬유업체와의 장기 협업 체계를 통해 최장 7단계에 이르는 의류 유통단계를 2단계(직거래)로 압축한 것. 이런 시도는 가격 인하로 이어졌다. 여러 도·소매상이 끼어들어 거품이 낀 옷값을 파격적으로 낮춘 것. 유니클로의 이런 시도는 일본 내 의류유통 구조를 혁신하는 결과를 낳았다.

야나이와 도레이의 협업은 또 다른 성공을 낳았다. 1만 벌이 넘는 샘플을 만들고 찢기를 반복한 끝에 세계 최초로 발열 소재 개발에 성공한 것. 발열 소재 원리는 인체에서 발생하는 땀을 열에너지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발열 속옷 ‘히트텍’은 전 세계에 1억장이 넘게 팔리나갔다. 이밖에 유니클로는 냉감 속옷 ‘에어리즘’(2008년), 초경량 패딩 ‘울트라 라이트 다운’(2009년), ‘UV-CUT’ 콜렉션(2011년) 등 기능성을 강조한 의류를 잇달아 내놓았다.

세계 의류 시장 제패가 목표

야나이 다다시의 목표는 세계 1위 패션 소매업체로 발돋움하는 것이다. 아시아 1위는 이미 달성했고 남은 건 세계 의류시장 제패다. 월스트리트저널과의 회견에서 그는 “2020년까지 이 목표를 이루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현재 유니클로는 한국을 비롯해 영국·중국·홍콩·미국·프랑스·독일·호주 등 전 세계 16개국에서 1600개 이상의 매장을 소유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스페인의 인디텍스, 스웨덴의 헤리스앤모리츠(H&M), 미국 갭에 이어 세계 4위 의류업체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유니클로 본사인 일본 패스트리테일링은 연평균 30%씩 성장해 지난해 매출 1조6817억엔(약 15조8000억원), 영업이익 1644억엔(약 1조5500억원)을 기록했다. 야나이 회장은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패스트리테일링의 매출을 2020년까지 500억달러로 끌어올리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야나이 회장은 ‘과거의 성공’에 집착하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다음은 야나이 다다시의 기업가 정신을 가늠하는 말이다.

“성공의 기억은 그날 즉시 지워라. 도전 없는 안정은 없다. 안정을 생각하는 순간부터 쇠퇴한다” “회사를 성장 발전시키려고 한다면 현상유지로는 어림도 없다. 개혁을 못하는 회사는 한 줌 재가 돼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