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 되란 말인가. 정부는 뭘 하나요”

[월요신문 김미화 기자]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미편성에 따른 보육기관 지원금 중단 사태가 현실화됐다. 예산을 받지 못한 서울, 경기, 전남, 광주 지역의 대다수 유치원은 교사 월급 지급이 중단된 상황이다. 누리과정 예산편성을 둘러싸고 중앙정부와 교육청간 갈등은 있었지만 교사 월급이 끊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상 초유의 보육대란 사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직격탄을 맞은 유치원 교사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교육재정확대국민운동본부와 교육재정확대지역운동본부 회원들이 26일 오전 서울 청운동 주민센터앞에서 보육대란 책임 회피 박근혜 정권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뉴시스>

경기도 광명시 한 사립 유치원에 근무하고 있는 정모씨는 “규모가 큰 유치원은 상황이 다를지 몰라도 나와 내 주변의 유치원 교사들은 모두 이번 달 월급을 받지 못했다. 보육대란 문제가 불거졌을 때부터 걱정을 했었는데 막상 현실로 나타나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씨와 같은 유치원에서 근무하는 동료 교사 이씨는“두 달 전부터 교사지원금이 밀리기 시작하더니 이번달부터 뚝 끊겼다. 누리과정 예산이 나와야 교사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원장 탓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라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사립 유치원에서 4년째 근무하고 있는 김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요즘 유치원 교사 동료들과 카카오톡만 하면 나오는 얘기가 누리과정 예산인데 다들 불안해 하고 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월급의 절반만 받은 교사도 있고 30%만 받은 분도 있는데 한푼도 받지 못한 분들은 당장 생활비 문제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번 달 월급으로 절반 못되게 받았는데 추후 지급 일정에 대해 언급이 없어 걱정이다”고 호소했다.

광주시 소재 유치원 교사 원씨는 “주변 유치원 이야기를 들어보면 교사지원금이 안 나오면 일을 하지 않겠다는 교사들이 많다. 내 생각도 같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사명감도 중요하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가정이 있는 유치원 교사의 경우, 타격은 더 크다.

경기도 부천의 한 유치원에서 15년째 근무 중인 박씨는 “지금 이 사태는 유치원 선생들에게 빚쟁이가 되라는 것 밖에 안 된다. 나만 해도 유치원에서 일하면서 자식들을 키우고 있는데 당장 나가야할 생활비, 카드 값들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 월급이 계속 끊기면 신용불량자가 될 수밖에 없는데 그땐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라고 성토했다.

인천 송도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는 백씨는 “불안한 마음에 매일 아침 신문 기사부터 검색하는게 습관이 됐다. 누리과정 예산에 대한 새로운 내용이 나온 게 있는지 샅샅이 살펴보는데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답답한 나머지 인터넷을 통해 정부에 건의를 했는데 기대보다 실망이 크다”고 한탄했다.

유치원생을 둔 학부모들의 혼란도 가중되고 있다. 누리과정 예산이 끊기면 ‘원아 1인당 지원금’도 받을 수 없어 학부모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실제 예산 지원을 받지 못한 일부 사립 유치원은 학부모에게 유치원비 인상을 예고하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서울 관악구에서 유치원을 운영하는 최씨는 “유치원의 경우, 원아 1인당 지원금이 사립은 22만원이고, 국공립은 6만원이다. 누리과정 예산으로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당연히 그 비용은 학부모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이어 “현재 학부모들 문의 전화가 수시로 걸려오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다. 누리 예산이 안 나오면 유치원을 그만두겠다는 내용부터, 신입생들은 입학금을 낸 상태인데 그 돈을 돌려줄 수 있냐는 내용까지 용건이 다양하다”며 “학부모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생각지 않던 돈이 갑자기 최대 30만원까지 나간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히지 않겠나.”라고 전했다.

상황이 이처럼 혼란스러운데도 일부 유치원에서는 학부모들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의 공문을 학부모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 소재 한 유치원 원장 김씨는 “교육청에서 ‘누리과정 예산이 나오지 않을 일은 없다. 걱정 말아 달라’ 라는 내용을 학부모들한테 전달하라는 공문이 내려와, 어쩔수 없이 지난주 금요일(22일) 학부모들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교육청의 조치에 대해 “립 서비스에 불과하다. 유치원 운영도 어렵고 학부모들 입장에서도 현실적으로 도움이 안되는 소리다”라고 비판했다.

서울시의 경우 시의회의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 2개월치 편성’ 논의가 무산되면서 보육대란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유치원 교사 윤씨는 “일단 교사들에게 줄 인건비가 부족하니까 두 달 치 지원금을 준다는 건데 이게 과연 장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인지 모르겠다”며 “사립유치원 교원 인건비 조기 집행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보육 대란의 여파를 겪기는 어린이집도 마찬가지다.

서울 관악구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5년째 근무 중인 오씨는 “어제(25일) 월급이 들어오긴 했는데 기본급과 처우개선비를 제외한 누리수당이 나오지 않아 당혹스러웠다. 게다가 사전 통보도 받지 못해 불쾌했다.”라며 “국공립어린이집은 올해부터 월급이 3% 인상됐다. 중요한 것은 3% 월급 인상이 아니라 제대로 된 누리과정 예산 편성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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