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 김미화 기자] 그리스와 아이슬란드. 두 나라는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의 여파로 한순간에 경제 위기를 맞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두 나라의 대처 방식은 달랐다.

그리스는 파산 위기에 처한 은행과 대기업을 살리기 위해 남아 있던 재정 여력을 모조리 쏟았다. 그 결과 국가재정이 극도로 악화돼 부도 위기에 몰렸다. 현재 그리스의 공공부채는 GDP의 180%에 해당하는 약 3200억 유로에 달하며, 길거리에는 실업자가 넘치고 있다. 반면 가장 먼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아이슬란드의 경제는 되살아났다.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어떻게 경제 위기를 극복했을까.

2008년 11월 아이슬란드 국민들이 정부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모습. <사진출처=구글>

북대서양 북서쪽 약 33만명의 인구로 구성된 섬나라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는 1990년대 들어서면서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환율 제도를 자유변동환율제로 바꾸는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하면서 공격적인 금융정책을 펼쳤다. 1997년에는 정부 소유 상업은행들을 민영화했다.

정부의 이런 조치에 힘입어 아이슬란드는 ‘유럽의 금융허브’를 지향한다. 여기에는 ‘먹거리’를 노린 글로벌 투자 은행의 역할도 한몫 했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이 아이슬란드 은행에 접근해 레버리지 차입, 인수·합병, 파생상품 등 다양한 금융기법을 전수한 것. 이에 혹한 아이슬란드 은행들은 높은 이자 내걸고 해외 자본을 유치했다. 그러자 어부들이 살던 겨울왕국에 돈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부의 나라에 몰려든 투기성 자본

2003년 아이슬란드 3대 은행의 자산은 통틀어 수조원 정도였다. 3년 뒤 3대 은행의 자산은 150조원을 돌파했다. 총 자산의 3분의 2가 투기성 해외자본이었다.

넘치는 유동성 덕에 아이슬란드의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장은 전례 없는 성장세를 기록했다.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빚을 내 집을 사고 차도 샀다. 돈이 넘치다 보니 인도의 발전소를 사들이고, 네덜란드 신문사와 영국 축구팀을 인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업 외에 별다른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아이슬란드에서 금융만 비대해진 경제는 오래가지 못했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미국 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외국 투자자들이 아이슬란드에 투자한 돈을 회수하기 시작한 것.

갑작스러운 자금 회수에 아이슬란드는 속수무책이었다. 국채 발행 금리가 상승하고, 부동산 가치가 폭락했다. 이때까지도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위기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다. 경고음이 울리기 무섭게 이번엔 아이슬란드 3대 은행이 파산을 선언했다. 이어 아이슬란드 화폐인 크로나의 가치가 폭락했고 국민들은 빚더미에 올랐다. 결국 아이슬란드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아이슬란드 몰락의 원인을 공신력 있는 기관은 어떻게 진단할까. 먼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진단을 살펴보자. 연구원 관계자는 “아이슬란드 금융 위기는 실물경제의 뒷받침 없이 금융 산업이 경제규모에 비해 비대하게 커진데서 비롯됐다. 더욱이 아이슬란드는 경상수지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외화차입에 의존하는 등 근원적인 개선 노력을 등한시했다. 정부 및 금융당국의 사전 감독 및 통제가 이뤄지지 않은 점도 문제였다”고 진단했다.

뉴욕타임즈는 “아이슬란드 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은 국제 금융 경험이 부족한데다 규제의 틀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슬란드 은행들이 국제 금융 비즈니스에 뛰어든 때문이었다”고 진단했다. 뉴욕타임즈는 또 “아이슬란드의 이자율이 높았기 때문에 투기성 자본이 많이 흘러들어온 것도 문제를 악화시켰다. 아이슬란드의 경제가 붕괴하던 시점에 트레이더들이 투자한 돈은 GDP의 41%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고 진단했다.

이런 진단은 아이슬란드 의회도 같았다. 아이슬란드 의회는 2010년 진상조사보고서를 통해 “재정위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게이르 하이데 당시 총리를 비롯해 전 재무장관, 데이비드 오드손 중앙은행 총재 등 7명이 직무를 제대로 하지 않고 극도로 부주의했다”고 지적했다.

그리스 정부와 다른 해법으로 위기 극복

아이슬란드는 2008년 금융위기 속에서 국가 부도 직전까지 몰렸다. 금융위기 직후 아이슬란드 3대 은행의 부채 규모는2000억 달러(약 230조원)가 넘었다. 이는 당시 아이슬란드 GDP의 10배에 달하는 규모였다.

이에 아이슬란드 정부는 대규모 국채 발행을 통해 공적자금을 조성, 부실화된 은행을 살리겠다며 국민들에게 고통 분담을 호소했다.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정부의 계획에 분노했다. 아이슬란드의 시민들은 집에서 가지고 나온 냄비와 솥을 두드리며 시위를 벌였다. 현지 언론들은 이를 '주방용품 혁명(Kitchenware Revolution)'이라고 불렀다.

아이슬란드 시민들은 민간 은행이나 기업들이 위험한 투기를 벌이다 생긴 부채는 그들 스스로 책임지도록 하라고 성토했다. 국채를 발행해 조성한 공적자금을 부실은행에 투입하면 미래세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성난 민심에 밀려 게이르 하르데 총리는 사퇴했고, 은행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결정했다. 민심의 추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이슬란드에 금융위기를 일으켰거나 대처를 못한정치인 관료 금융인 90여명이 무더기로 기소됐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 다음 선택이다.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경제 위기에도 교육과 복지를 대폭 확대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선택을 했다. 당시 IMF는 아이슬란드의 경제 위기 대책으로 재정지출 삭감을 요구했다. 긴축정책을 통해 각종 연금과 수당을 줄이고 국립병원을 폐쇄하는 등 복지예산 축소를 제시한 것.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IMF의 요구에 따르지 않았다. 금융위기 이듬해인 2009년 아이슬란드의 복지 지출은 금융위기 이전보다 36% 증가했다. 투입된 돈의 대부분은 법인세와 부유층 증세로 마련했다.

아이슬란드는 실업자가 급증하자 생계를 위해 실업급여 지급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렸다. 이밖에 건강보험 예산을 늘리고, 양육비 보조금을 늘렸다. 유망 중소기업의 경우 부채를 탕감해 주기도 했다.

이렇게 강화된 사회안전망 덕에 아이슬란드 청년들은 누구나 직업훈련을 받고 재취업할 수 있게 됐다. 재기에 성공한 청년들은 무너져가던 아이슬란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아이슬란드의 GDP 성장률을 살펴보면 2008년 3/4분기부터 10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나 2011년 1/4분기 플러스로 전환된 이후 성장세를 이어갔다. 2013년 아이슬란드는 유럽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3.5%대의 경제 성장률을 이뤄냈다. 실업률은 유럽 평균의 절반에 못 미치는 4.9%를 기록했다. 그 효과는 지금까지 이어진다. 물가도 비싸고 세율도 높지만, 아이슬란드는 유럽 내에서도 소득과 교육, 복지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행복지수도 OECD 국가 중 2위다.

아이슬란드 정부의 위기 극복 비결에 대해 한국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아이슬란드 정부 당국은 부도위기에 직면한 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해 회생시키는 대신 은행에 투자한 채권자에게 책임을 분담하도록 했다. 저소득층에 복지 혜택을 강화해 충격을 최소화한 것도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됐다”고 해석했다.

전문가들은 아이슬란드가 독자적 통화정책을 펼친 것도 경제회복을 앞당겼다고 진단한다. 아이슬란드가 자국 통화인 크로나를 절반 가까이 평가절하시켜 무역수지를 흑자 전환한 때문. 아이슬란드가 유로화를 사용했다면 환율하락이 어려웠을 것이고 경제 회복도 그만큼 더디어졌을 거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 한국금융연구원 관계자는 “금융 위기로 인해 크로나화 통화가치가 급락한 것이 주력산업인 어업 등의 수출경쟁력 강화로 귀결됐다. 또한 통화가치 절하가 수입 물가를 상승시키고 해외소비를 제한하는 역할을 해 국내 소비 촉진에 기여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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