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 김미화 기자] 아베 정권의 핵심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의 동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아베노믹스가 작동한지 3년, 초반에는 일본경제는 살아나는 모양새를 보였으나 최근 들어 각종 경제지표들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등 부정적인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아베노믹스 추락’의 원인은 무엇일까.

아베노믹스 작동 3년 후 일본경제 변화 내용 <자료제공=현대경제연구원>

2012년 12월 출범한 아베 신조 내각은 디플레이션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아베 정권은 ▲금융완화 ▲재정확대 ▲구조개혁 등 ‘3개의 화살’을 축으로 한 아베노믹스를 추진했다.

3년 2개월이 지난 지금 일본 정부가 발표한 경제 성적표는 초라하다. 15일 일본 내각부는 “지난해 4분기 실질 GDP가 전분기 대비 0.4%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연율 기준 성장률은 -1.4%로, 일본경제연구소센터가 지난주 조사한 시장 추정치 평균(-0.7%)에 못 미친 수치다.

아베노믹스 3년간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0.6% 성장에 그쳤다.

비정규적 증가 현상은 한국과 유사

가장 큰 이유는 개인 소비의 부진에 있다. 지난해 4분기 개인 소비는 304조엔으로, 3년 전보다 1.2% 줄었다. 임금 총액인 고용자 보수는 3년 전과 비교해 0.9% 증가해 사실상 보합 상태다. 소비종합지수도 2014년 4월 소비세 인상을 기점으로 급락한 뒤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아베 정권에 우호적인 요미우리신문도 “성장세가 부진한 최대 원인은 GDP의 약 60%를 차지하는 개인 소비 부진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민간 경제전문가들도 아베노믹스가 개인 소비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준코 니시오카 스미모토미츠이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개인 소비가 힘을 잃어 경제가 거의 정지 상태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소비 부진의 주된 원인은 양질의 정규직은 감소한 반면 비정규직이 증가한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단카이세대)는 퇴직하는 반면 이를 대신할 양질의 일자리는 줄었다. 일본 후생노동성 발표에 따르면 2005년도에 비해 지난해 비정규직은 10년 만에 30% 늘었다. 일본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현상은 한국과 매우 흡사하다. 사내 유보금을 많이 쌓아놓고 투자를 꺼리는 것도 한국 기업과 닮은 꼴이다.

일본 기업은 아베노믹스에 따른 엔화 약세로 이익을 많이 봤다. 하지만 유보금만 쌓고 고용 창출로 이어지지 않았다. 일본 기업들의 경상이익은 2015년 3/4분기 누적 63조 엔으로 역대 최고 수준에 달했지만 고용 부문은 질적으로 하락했다.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야 소득이 발생하고 소비로 이어지는데 여기서 제동이 걸린 것이다.

아베노믹스가 실패한 세가지 이유

국내외 연구기관과 언론은 ‘아베노믹스 3년’을 어떻게 평가할까.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일본경제, 무엇이 달라졌나’ 제하의 보고서에서 ‘아베노믹스 3년간 일본 경제 변화’에 대해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첫째, 금융 통화부문의 양적 질적 완화는 엔저 기조 정착과 플러스 물가 상승률 달성이라는 성과가 있었지만, 대외 거래 실적은 악화됐다.

둘째, 재정 확대는 경기 하방 압력을 완화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나, 재정 건전성은 지속적으로 악화됐다. 아베내각은 총 4차례 경기부양대책을 통해 약 20조 엔의 추경을 투입했다. 하지만 세입 증가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세출이 이어지면서 GDP 대비 국가부채 비중이 약 246%(2015년 기준) 증가했다.

셋째, 성장 전략 측면에서는 기업에서 가계로의 경제 선순환 고리 형성이 지연되면서 경제 성장과 물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임금 수준도 2015년 들어 전년동기 대비 상승세이나, 매우 미약한 수준이다.

결론은 아베노믹스가 경제 주체들의 심리에는 긍정적 영향을 끼쳤으나 당초 목표에는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경제학자, 경제평론가들도 ‘아베노믹스의 3년’에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동아시아 전문가인 윌리엄 페섹 (베런스 아시아 편집장)은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은 실체를 본 적이 없는 허울뿐인 캠페인이다. 돈을 푸는 정책만으로 일본이 실질적인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라고 꼬집었다.

우려의 시선은 일본 내에서도 존재한다.

일본의 대표적 국제금융 전문가 인시노하라 나오유키 도쿄대 교수는 “아베노믹스의 첫 번째 화살인 대규모 금융 완화는 나름 효과가 있었다. 엔저 효과로 기업 실적이 좋아졌다. 두 번째 화살도 일시적인 부양효과를 냈다. 하지만 세 번째 화살인 성장전략은 기대만큼 성과를 못 내고 있다. 노동시장 개혁과 규제 완화 등 ‘통증을 수반한 개혁’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잘 안 되고 있다”며 “‘돈풀기’에만 의지하고 있을 뿐 구조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일본 경제 회복세가 언제든 다시 꺾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경제연구센터 또한 보고서를 통해 “정부에 의한 금융정책이나 재정정책은 제한적으로 추진돼야 하며, ‘민간에 의한 시장창조’가 일본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에만 의존하는 아베노믹스의 전략적 변경을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밖에 골드만삭스 수석연구원인 나오히코 바바는 “해외투자자들도 아베노믹스에 대해 실망감을 느끼고 있다”고 경고했다.

WSJ "아베노믹스 궁지 몰려 "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아베노믹스가 궁지에 몰렸다”고 진단했다.

WSJ는 그 이유로 “아베노믹스의 두 번째 화살인 정부지출 확대는 국가 채무 압박을 가중시켜 지속될 수 없었고 세 번째 화살인 구조개혁은 장기적 계획이라는 점에서 즉각적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즈는 “아베 신조 총리가 3년 전 아베노믹스를 들고 나왔을 때 의지했던 전략은 엔화를 약화시킨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 전략이 먹혀들어 주식시장이 폭등하고 기업 이익이 늘었다. 하지만 이제 그 무기는 수명을 다했다”고 낙제점을 줬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한 ‘아베 경제 성적표’는 더 구체적이다.

지난해 8월 FT는 아베노믹스의 농업 정책에 대해 “진부한 내용이긴 하지만 농업협동조합을 개혁한 것은 아베 총리의 가장 큰 성공이었다”고 평가했다.

아베노믹스의 여성인재 정책도 B+로 호평받았다. 아베 총리는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진출을 유도했으며 일본 여성의 고용률은 역대 최고인 65%에 달했다.

반면 노동시장 개혁에 대해서는 D 평점을 매기며 악평을 아끼지 않았다. FT는 “아베 총리는 다른 영역에 비해 노동시장에 대해서는 작은 야망을 보여줬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지만, 아베 총리는 노동시간 규제에 있어서 ‘화이트 칼라(사무직) 적용 면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매우 잘못된 결정이었다.”라고 비판했다.

아베정권은 국내외 비판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아베노믹스’를 계속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일본 경제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현 시점에서 이를 규정하기는 시기상조다. 경제 전문가들은 “아베노믹스의 성공 여부는 구조 개혁에 달려 있다. 구조개혁에 성공하면 일본 경제는 장기 불황에서 벗어날 것이지만 실패로 귀결되면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30년’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한국 뿐 아니라 세계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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