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외교사 첫 '한국계' 성김 주한미국 대사 내정자

한미 외교사가 새로 쓰여지게 됐다. 미국 정부가 주한 대사에 ‘한국계’ 인물을 내정한 것이다. 그간 북핵 문제로 동분서주했던 성김 북핵 6자 회담 특사가 현 캐슬린 스티븐슨 대사의 뒤를 이어,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전초기지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성김 내정자는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드물게 관료로 성공한 몇 안되는 한국인이다. 그의 아버지가 지난 70년대 주일 공사를 지낼 만큼, 탄탄한 외교가로 알려졌으며, 미국에서도 소문난 ‘북한통’으로 평가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내정 소식이 전해질 당시, 이일로 그는 전직 대통령의 재야 시절 납치 사건 논란이 야기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 외교가는 기대감으로 다소 들뜬 분위기다. 아직은 두고 볼 일이긴 하지만, 향후 한미 관계에 긍정적 영향이 미쳐질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1백년이 넘는 한미 외교에 한국계 주한 대사를 맞게된 외교가의 분위기를 살피고, 김 내정자의 면면도 알아본다.

▲ 성김 내정자
지난 2008년 북한의 핵 문제가 세계적인 관심거리로 떠오른 시기, 북한은 세계가 보는 앞에서 대규모 이벤트를 진행했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중국을 포함한 일본 등 주변국의 우려를 자아내게 했던 핵 시설을 자진해서 폭파하기로 한 것이다. 말 많던 영변 핵 시설의 냉각탑이 일순간에 해체되는 장관이 연출됐다.

한국 대사 맡은 ‘한국계’
당시 이 자리에는 북한의 당국자는 물론이고 북한과 핵문제를 두고 지루한 공방을 벌여온 미국도 정부 대표단과 방송팀을 급파해 이 장면을 전 세계에 전했다. 이때, 한국인들에겐 눈에 띄는 한 인물이 카메라에 잡혔다.

하지만 북핵 문제로 종종 얼굴을 내비친 덕에 익히 낯익어 그가 누구인가는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북핵 문제 해결의 일단락으로 여져진 초유의 이벤트에 초대된 한국인, 그러나 그의 신분은 엄연한 미국 대표부 소속. 바로 미국 국무부에서 한국문제를 전담했던 성김 당시 한국과장이다. 그는 이일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의 열쇠를 쥔 북핵 관련 6자 회담의 특사로 임명돼 국민들에겐 더욱 친숙한 인물이 됐다.

그랬던 그에게 최근 다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될 만한 일이 벌어졌다. 2008년 주한대사로 부임했던 캐슬린 스티븐슨 미 대사가 임기를 다하면서 그 후임으로 성김 특사가 내정된 것. 한국과 미국의 외교사를 통틀어 ‘기억할 만한 일’이라는 게 일각의 평가다.

미국 정부의 성김 특사 내정을 바라보는 국내 시각도 흥미롭다. 특히 현행 스티븐슨 대사가 75년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을 방문한 전력을 들어 그를 ‘환대’했던 사례에 비춰 본다면, 성김 특사가 이른바 ‘한국계’라는 점에서 한미 외교의 틀이 크게 바뀔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는 주로 그의 성장 배경과 관련된 지적으로 그가 재미교포 2, 3세도 아닌 국내에서 초등교육을 받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누구보다 한국을 잘 이해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마저 들게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성김 내정자의 본명(한국이름)은 김성용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은석초등학교를 3학년까지 다니다 전직 외교관이던 아버지(김재권)를 따라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어 80년 이곳에서 그는 정식으로 시민권을 얻어 미국 시민으로 새 삶을 시작했으며 명문 펜실베이니아대와 로욜라 로스쿨, 런던 정경대를 거쳐 로스앤젤레스카운티에서 검사로 일한 전력이 있다.

북핵 해결 나섰던 ‘북한통’
그러다 외교관으로 전격 변신한 김 내정자는 이후 참여정부 때이던 지난 2003년에는 주한 미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근무,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가기 시작한다. 김 내정자가 본격적으로 한국민들에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06년, 미 국무부 한국과장으로 발탁돼 북한 문제를 도맡아 처리하면서부터다.

그는 이를 통해 북한 10여 차례이상 방문하는 한편, 북핵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내 언론에도 종종 얼굴을 비추는 등 비교적 대중적 인물로 부각되기에 이른다. 특히 이는 미국이 북한 문제와 관련해 소위 ‘벽안의 인물’을 내세웠던 종전의 사례와도 크게 대비됐던 것으로, 미국과 북한간 한반도 문제가 ‘동질감’을 자극해야 할 만큼 그간 얼마나 첨예하게 얽혀 있었나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도 꼽힌다.

미국이 성김 내정자를 국무부 과장에서 북핵 특사로, 이번엔 주한 미국 대사로까지 임명한 배경에도 바로 이런 맥락이 존재한다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미국이 한반도 정책에 무게를 더하는 대신, 실효성에도 적지 않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과 식견도 이번 발탁의 배경이라는 관측이다. 국무부 근무 당시 김 내정자는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특별대표와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 등과 같은 사무실을 사용해 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 역시, 대북정책 과정에서 그에게 많은 의견을 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에서 초등교육을 받은 만큼, 한국어에 능통하다는 점도 한반도 정세를 풀어 가는데 장점이 될 것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다. 따라서 김 내정자가 한국 대사로 부임할 경우, 그의 주된 업무가 북한 문제에 맞춰 질 것으로 외교가는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주한 미국 대사에 낙점된 이후 한국에서 출생한 이민자로, 미국에서도 주류로 성공한 몇 안 되는 인물로 평가된 김 내정자지만, 온전한 기대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친 전력, 동생의 열창 ‘유명세’
오히려 일부에서는 김 내정자의 전력을 들어 다소 우려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 그의 전력이란 주로 외교관이던 아버지와 관련된 것. 그의 아버지인 김재권씨가 73년 일본에서 벌어진 ‘김대중 납치사건’ 당시, 주일공사로 재직하며 이 사건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있어왔다는 점이다.

한때 논란이 불거지자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를 전하며 “납치 당시는 성김이 태어나기 전이거나 아주 어렸을 때라 본인은 모를 것이고 관계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계’가 주한 대사로 내정돼 한미 관계에 한국 정부 목소리가 커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에도 대해서도 일각에서 오히려 경계심을 드러낸다. 자유선진당은 최근 논평을 통해 “성김 미국대사 내정자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우려는 버려야 한다”며 “그는 한국계지만 엄연히 미국시민이며 미국 고위공무원이다. 국익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미국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처지고 입장이다”며 “한국사회에 대한 그의 남다른 이해는 도움은 되겠지만 결정적일 수는 없다”고 말해 ‘지나친’ 기대에 제동을 걸었다. 반면 이들은 김재권 전 공사와 관련, “잘못된 연좌제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개인으로서 성김은 성김일 뿐이다”며 자칫 불거질수도 있는 전력 시비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한편 그가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만큼, 국내 인물들과의 인연도 화제다. 특히 청와대 정진석 정무수석과의 친분은 말할 것도 없고, 가수 임재범과는 고종 사촌지간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또 다른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미국 정부의 이번 김 내정자 임명으로 향후 한미 관계와 한반도 정세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성김 대사 내정자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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